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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Feb 05. 2017

유럽에 비가 내리면

핀란드의 저녁, Di Trevi

잠시 들렀던 남편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떠났다. 재잘거리는 딸들도 조금은 철없을런지 모르겠지만 뜨끈하게 구수하게 때론 얼큰하게 속을 풀어주는 무쇠솥녀 아내의 집밥도 또다시 작별이다. 다음달엔 올 수 있으려나, 그 다음달부터는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해져갈까, 오히려 더욱 그리워질까?


주말이면 남편은 심혈을 기울여 고기를 고르고 아이들을 위해 고기를 구워주곤 했다. 한참 크는 아이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아빠가 구워주는 고기를 참도 맛있게 먹는 딸들의 마음을 아는 까닭이다. 맛있는 고기를 고르고 맛있게 적당하게 고기를 잘 굽는 남편덕분에 고기를 고르고 사는 일도 굽는 일도 남편의 몫이다. 부엌에서 내가 남편의 움직임을 지켜볼 수 있는 유일한 작업


남편이 떠난 주말

아이들에게 고기를 먹이고 싶었다. 고기를 먹이지 않으면 아빠가 떠나고 안계시다는 사실이 너무 확실해질까봐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Di Trevi


우리 도시에서 스테이크가 맛있기로 유명한 Di Trevi에 예약을 하고 채비를 한다. 내 이름을 말하고 예약인원 세 사람이라 예약 내용을 확인한다.


세 사람...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숫자다.


봄이 왔다고 이곳의 친구들이 호들갑일 정도로 최근에는 날씨가 포근했다. 포근한 날씨덕분에 눈이 아닌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주말 저녁이다. 북유럽의 여름은 천국의 모습마냥 아름답지만 하얗게 눈이 쌓인 모습도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음습한 날도 저마다의 운치가 있고 아름답다. 이곳의 음울한 겨울에 어느새 익숙해진 모양이다.


모퉁이를 돌면 얼어붙은 Aura강이 내려다 보인다. 그 너머로 투르크 대성당이 보이고 이 도시의 유명한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식당이름에 걸맞게 이태리의 명소들을 찍은 사진이 액자에 담겨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 사이로 북유럽 디자인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길게 드리워진 전등불이 사진 속의 장소들을 은은하게 비춰준다. 음식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 까지 대략 30분, 사진 속의 장소들을 따라 지난 여행을 추억한다.



아이 둘과 나, 셋이서만 온 자리지만 우리 가족 모두 함께 온듯이 한 상 가득 주문을 한다.


빈 자리는 아직 어색하다.




Di Trevi


Address : Aurakatu 1, 20100 Turku, 핀란드


핀란드의 주요 도시에서는 해마다 가장 유명한 식당을 선정하여 Food Walk를 진행한다. Di Trevi는 이탈리아식 Tapas가 일품이며 Turku Food Walk행사에 매번 이름을 올리는 유명 식당이다. 다양한 와인을 즐길 수 있으며 밤 늦은 시각까지도 bar에서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물론 핀란드 기준으로 북적인다. 우리 나라의 북적이는 식당이나 펍에 비하면 매우 한적하다. 비내리는 유럽의 그윽함처럼...


Di Trevi 홈페이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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