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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Feb 11. 2017

핀란드에서 정월 대보름 나물 반찬 해먹기

엄마! 보름달인가봐요!!!


어두운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느라 동그랗고 동그란 달을 보며 지친 몸을 애써 다잡는 딸아이에게 장단을 맞춰 주지 못했다.


목요일, 스케이트 연습이 끝나고 지상훈련까지 마치면 저녁식사시간이다. 학교 급식 상황이 좋지 않은데다 입맛에도 맞지 않아 점심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딸들은 아침에 챙겨 간 식은 샌드위치나 굳은 김밥류로 요기만 한 뒤 운동을 한다. 이렇게 길고 긴 목요일의 일과를 마치고 차에 오르면 피로와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모양이다.


특히 큰 아이는 한낮에도 초저녁에도 시시때때로 잠이 들고 학교를 오가는 짧은 사이에도 차에서 잠이 든다. 크느라 그렇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이렇게나 잠을 자는가 싶어 잠든 아이의 모습을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보게 된다. 잠이 들 법도 한데 보름달이라며 하늘을 바라보며 종알거린다.


한국에서라면 마트에 등장하는 부럼과 나물들이 '곧 대보름이요' 알려주겠지만 이곳에서는 일부러 확인하고 찾아보지 않는 한 알 길이 없다.딸아이가 보름달을 보며 종알거리던 일이 생각나 인터넷을 뒤져 본다.


 "내일이 대보름이네...."


부스럭 부스럭 말린 나물 몇 가지를 한 줌씩 꺼내 볼에 담고 물을 붓는다. 한국에서도 내가 명절음식을 챙겼던가? 모를 일이다. 먼 곳에서 한국의 명절과 정서에 나만 소외되고 싶지않아 쓸데없이 부지런을 떠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말린 호박, 가지, 고춧잎, 시래기를 한 줌씩,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사리는 한 줌 더 꺼낸다. 바짝 말린 것들이니 반나절은 충분히 불릴 요량으로 물에 담근 채 두고 집을 나섰다.


종일 불린 나물이 제법 통통해졌다.손가락으로 하나씩 집어 만져 본다.한 번 더 데칠 것은 데치고 뜨거운 물에 담궈 불릴 것은 따로 옮겨 뜨거운 물을 붓는다.고춧잎은 질긴 줄기 부분을 잘라 낸다. 거친 나물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한 입이라도 더 먹었으면 싶어 한 번씩 손길을 더 주는 것이다.


시래기를 삶는 동안 뜨거운 물에 불렸던 호박의 물기를 꼭 짠 뒤 들기름과 마늘을 넣고 달달 볶는다. 육수를 붓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 뒤 자글자글 끓인다. 호박이 머금었던 들기름의 향이 육수와 어우러지고 새우젓을 만난 육수가 호박에 스미는 상호작용을 유심히 살핀다. 너무 오래 끓여도 너무 일찍 마무리를 해도 맛이 변하니 별 수 없다. 대파와 채썬 당근 그리고 맛살 한 줄을 마지막에 넣고 한 번만 부르륵 끓여내면 호박은 완성


한 차례 삶은 시래기와 가지는 물기를 뺀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들기름에 볶아 준다. 결혼 전에는 들기름 특유의 향이 너무 강하다 여겨져 입맛에 맞지 않더니 들기름만 쓰시는 시어머니영향으로 들기름만의 매력을 알아버렸다. 나물엔 들기름이다.


육수를 부은 뒤 시래기는 된장으로 가지는 잘게 썬 고추를 우려 조금 매콤하게 맛을 낸 간장으로 간을 한다.가지와 굴소스는 제법 합이 좋아 마지막 단계에 굴소스 한 스푼을 작게 떠 담는다.



고춧잎은 된장과 고추장의 비율을 1:2로 하여 마늘과 송송 썬 파를 넣어 만든 양념장으로 조물조물 무쳐준다. 매실액기스 또로록 따라준다.


고사리는 한참을 삶아 아린 맛을 없앤 뒤 들기름에 살짝 볶아 육수를 흥건하게 붓고 또 한차례 끓인다. 푹 물러진 고사리를 좋아하는 딸들의 입맛을 위해서다. 국간장으로 간을 하고 마늘과 대파 들깻가루를 듬뿍 넣어 보글보글 끓여 주면 고사리까지 마무리되고 오늘의 나물반찬은 모두 완성



아휴, 우리 엄마, 멀리서도 우리 건강하라고 나물만드시고 우리 복받으라고 고생하시네...내가 보름달이라 그랬쟎아요...


종일 부엌에 서있는 내 곁을 지나다 말고 비슷해진 키만큼이나 엄마 마음을 잘 알아주는 큰 아이가 어깨를 감싸 안는다.


오후 내내 부엌에 서서 반찬을 만든 것 같은데 나물뿐이네... 소고기를 치대서 만든 떡갈비 두개를 구워 상에 올린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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