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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Mar 08. 2017

가녀린 눈발로도 세상은 하얗게 변한다

금요일 탄핵심판 선고를 기다리며

가랑비에 옷이 젖고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하였다


눈소식이 전해진다. 제아무리 핀란드라 하여도 3월은 3월인지라 겨우내 몰아쳤던 눈폭풍은 아니겠거니 짐작만 했더랬다.


아이들 등교를 위해 현관을 여는 순간, 밤사이 눈은 이렇게 내려와 앉았구나 바쁜 등굣길도 잊고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뒤따라 나오던 아이가 말을 건넨다.


슈가 파우더 뿌린 것 같네!


멀리 창밖으로 보아도 목화뭉치마냥 덩어리진 눈송이가 뚝뚝 떨어지던 겨울의 눈과는 사뭇 다르다. 아이의 말처럼 슈가 파우더마냥 가녀리고 고운 눈송이가 밤사이 살포시 내려앉은 것이다. 가랑눈이라고 해야 할까? powdery snow지만 들판을 덮고 지붕을 덮고 길목을 덮어 온 마을을 하얗게 덮었다.


네가 비록 작고 여려도 밤사이 내리고 보니 너로 인해 세상이 희구나


촛불 하나 하나의 불빛은
비록 작았는지 모르겠으나
너의 힘은 화산이 되어 용솟음치려나..


목요일 밤, 나는 잠들 수 있을까? 내가 잠든 사이 세상이 바뀌어 나만 두고 천지가 요동을 칠 것만 같다. 내가 잠든 이곳의 깊은 밤은 새 역사의 대한민국의 아침이다.


뽀얗게 뿌려진 눈길이 곱고도 고와 차마 함부로 밟기 어려워 차가 있는 자리까지 내달렸다. 그럼에도 선명하게 새겨진 발자욱들, 나의 발자욱, 딸들의 발자욱


밤사이 내린 눈이 곱고도 고왔듯이 밤사이 대한민국에서는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기를, 곱고도 고운  그러나 벅찬 함성이 멀리 이곳까지 전해지기를


감사합니다. 당신들의 발자욱이 촛불이 되어 조금 도 아름다운 대한민국으로 향하겠지요. 촛불을 밝혀 든 당신들의 손매가 곱습니다.




핑크핑크 크림치즈를 얹어 먹고도 여전히 남아 있는 식빵에 버터를 얇게 바른 뒤 노릇노릇 구웠다. 오늘은 담백하게 슈거파우더만을 곱게 뿌려본다.


밤사이 내린 눈처럼 마을을 뒤덮고

작은 촛불의 소망이 세상을 바꾸고

솔솔 뿌린 슈거파우더는

특별할 것 없는 식빵의 맛을 바꿔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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