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영화관에는 없는 것
티비를 전혀 보지 않는 나는 한국의 소식을 접하기 위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접속하는 일이 잦다. 뉴스를 읽다 보면 기사인지 개인 포스팅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페이지에 연결되기도 하는데 내가 살고 있는 핀란드의 이야기가 소재인 듯 보여지면 클릭을 하여 읽어보게 된다.
어느날, 핀란드의 영화관에는 팝콘이 없고 대신 사탕이나 젤리 등 달달한 것을 판다고 소개하는 글을 보았다.
어? 이 사람 핀란드영화관을 못가본 사람이구나...
단번에 알아차렸다. 핀란드 영화관에는 분명 팝콘도 탄산음료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소개글에서 말한 달달한 것들을 팔기는 한다. 그런데 이 달달이들은 극장뿐만 아니라 주부들이 장을 보는 마트에도 갖추어져 있는 코너이고 달달이들만 모아 두고 파는 작은 가게들도 꽤 많은 편이기 때문에 영화관의 특징이라기 보다 그저 '핀란드에서는 달달이를 담아 고른만큼 무게를 달아 지불하는 가게가 많다' 정도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팝콘을 팔고 있고 사람들도 팝콘을 사들고 극장에 들어가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니까 말이다.
마트에서 파는 젤리나 초콜렛도 있고 작은 봉지에 원하는 것을 조금씩 담아 저울에 달아 구매하는 달달이들도 있고 통통하고 긴 빨대같은 것에 색색 설탕가루를 담아 먹는 이름모를 달달이도 있다. 작은 봉지에 젤리 등을 담아 무게를 달아 고른만큼 금액을 지불하는 저 가게는 같은 이름의 가게는 아니겠지만 한국에서도 몇 번 본 것 같다. 비슷한 시스템의 달달이 가게는 세계어디에나 있으니까...
핀란드 극장의 팝콘은 한국의 극장에서 보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예매한 극장표를 찾거나 현장에 여유있게 도착하여 표를 구매한 뒤 상영시작전까지의 시간을 이용하여 팝콘과 몇몇 간식거리를 사서 기다리는 방식이었다. 물론 아이들에게 팝콘을 사주지는 않았지만 커다란 팝콘통에서 휘휘 저으며 팝콘을 퍼담아 주는 극장직원들 손길따라 코끝을 옮겨가며 그 달콤하고 고소한 향해 넋을 잃곤 했다.
도시의 규모와 극장의 위치 등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지만 핀란드의 팝콘은 편의점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들고 계산대로 향하듯 이미 담겨진 채 진열되어 있다. 사이즈와 무슨 맛으로 먹을지 물어보고 팝콘 퍼주는 언니가 없다. 진열되어 있는 팝콘들 중에서 원하는 사이즈를 골라 들고 계산대로 알아서 가면 된다. 작은 봉지에 담은 달달이도, 이름모를 설탕가루왕빨대도, 극장에서 판매하는 온갖 먹거리를 필요한 만큼 골라들고 상영관과 매점사이에 지하철 개찰구마냥 늘어선 계산대로 간 뒤 영화제목과 상영시간, 필요한 티켓수를 직원에게 말한다.
영화 볼 자리를 모니터를 통해 확인한 뒤 티켓가격과 먹거리의 가격을 함께 계산하고 지나가면 상영관이 나온다. 계산을 두 번 하지 않아서 편하고 직원은 한 곳에만 있으면 되니 인건비가 비싼 이곳에서는 보다 효율적인 시스템일 것이다. 물론 이곳을 지나치지 않고 다른 방향의 통로로 그냥 지나가도 상영관쪽으로 이어진다. 아이들만 영화를 관람하더라도 부모가 상영관입구까지 데리고 가서 안내해 주기 용이하다.
앞서 이야기한 소개글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핀란드 극장에는 없는 것들이 있다.
일반티켓 12유로정도로 티켓값이 제법 비싼데다 우리 도시 극장에는 해당 건물의 전용주차장이 없어서 대략 15유로에서 20유로 정도의 주차비를 지불해야 한다. (무료주차장이 딸린 대형쇼핑몰안에 극장이 있는 경우에는 그냥 이용할 수 있지만... 우리 도시에는 이런 위치의 극장이 없다. 광장 부근에 위치한 Finnkino Turku가 우리 도시 유일한 상영관이다. 시골이라서가 아니라 인구가 적어서이다. 수도 헬싱키에도 인근도시 반타나 에스푸 등을 합쳐 상영관 수가 다섯개를 넘지 않는 것으로 안다.)
결국 내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평균 30유로 정도가 필요하다. 물론 간식이나 식사를 하지 않고 온전히 영화만을 위한 금액이다. 딸들만 극장에 데려다 주면 나의 티켓비용은 물론이고 진심으로 억울한 주차비가 절약되기 때문에 나는 주로 딸들만 혹은 딸아이와 친구들만 들여 보내고 전용주차장이 있는 대형쇼핑몰이라던가 짐에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극장안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몇 번 상영관안으로 들어가 관람을 했던 경험으로는 상영중 통화를 한다거나 문자를 주고받는 사람은 커냥 스마트폰을 꺼내어 극장안을 널리 비추는 발광장면조차 없었다. 내가 상영관에 있는 동안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난 여름 한국에 방문했을 때 서너 번,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갑자기 스마트폰을 켜서 주변을 밝히는 등대가 되어 준 사람뿐 아니라 전화기를 들고 온갖 볼일을 다 보고 심지어 통화하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상영관 내에서 매너를 지키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지 진심으로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지난 여름 이후 많은 변화가 이루어져 '이젠 이런 사람들 한국극장에도 없어요'라는 댓글이 달린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한국에서 극장을 찾을 때는 아이의 앞자리에 성인남자가 앉게 될까봐 늘 염려가 되었다. 성인남성이 앞자리에 앉을 경우 작지 않은 키의 나도 화면을 온전히 볼 수 없어 이리저리 머리들 사이로 기웃거려야 하는데 키가 작은 딸아이는 오죽할까 싶어서이다. 내가 기웃거리는 타이밍에 맞추어 나의 뒷자리 관람객도 내 머리를 피해 기웃거릴 것을 생각하면 뒤통수가 뜨겁고 마음은 불편해 진다.
이것은 유독 내 앞자리에는 머리크고 상체가 긴 사람이 찾아와 앉아서가 아니라 극장설계의 문제라고 본다. 극장내 좌석을 배치할 때 뒷좌석 관람객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경사면을 고려하여 좌석을 배치하면 흔들흔들 춤추는 모습들은 사라질텐데 말이다.
핀란드극장의 상영관 내 경사는 조금 가파르다. 아마도 시야확보를 위한 설계를 하다 보니 그러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평균신장이 훨씬 큰 이곳 어른이 앞자리에 앉는다 하여도 나는 물론 딸아이와 140센티 조금 넘는 딸아이의 친구마저도 편안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그보다 더 작은 아이와는 동행해보지 않아 모르겠으나 대형점보의자같은 높이조절도구가 입구에 잔뜩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작은 아이들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앉아있다 보면 미끄럽고 불편해서 잘 안보이더라도 빼내고 싶어지는 불친절한 방석이 아니라 엉덩이의 인체공학을 고려한 의자형태의 도구다.(사진을 찍어둔 것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딸들이 이것을 사용할 나이가 아니라 그냥 지나치다 보니...)
광고가 나오는 동안 입장하는 모습입니다.
앞자리 어른들도 머리의 극히 일부만이
의자위로 올라와서 나의 시야는 거의 완벽하게
확보됩니다.
앞자리에 성인남성이 앉을 것이 두렵다면 뒷자리에는 꼬마손님이 앉을 것이 두렵다. 꼬마손님의 달랑달랑 귀여운 다리는 발끝에 무엇이 달렸는지 끊임없이 나의 의자 뒤편에 노크를 하니 말이다. 게다가 궁금한 것이 많은 나이라 그런지 쉬지 않고 엄마에게 말을 건다. 운이 좋아 아이보다 공공매너를 생각하는 엄마가 동행했다면 아이에게 주의를 주고 함께 대화를 하는 일은 없겠지만 많은 엄마들은 내 아이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혹은 무언가를 가르치겠다는 사명에 묻지도 않는 부분을 미리 말해주고 질문던지고 교육의 장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시끄럽고 거슬린다.
앗! 핀란드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평균키가 크다는데, 다리는 압도적으로 길텐데 뒷자리에 어른이 앉아도 톡톡톡우려가 높은 것 아닐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No
좌석간 배열이 무척 여유롭게 되어 있어서 평균여성신장보다 훨씬 큰 내가 엉덩이를 붙이고 바로 앉을 경우에는 무릎과 앞좌석사이의 간격이 대략 두뼘이상이다. 비스듬히 다리를 꼬고 앉아도 발끝이 앞좌석에 닿지 않는다. 왼다리 오른다리 바꿔 꼬아 보아도 앞좌석에 노크할 일이 없다. 키가 아주 큰 성인남성이라 하더라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있는듯 없는듯 앉아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키가 크다 해도 그 분의 허벅지가 내 허벅지길이보다 30센티이상 길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렇다면 허벅지귀신
앉아서 팔을 뻗어 보았어요.안 닿아요.
광고중, 불이 꺼지기 전에 찍었습니다. 오해마셔요
두툼한 허벅지는 못본척해주세요
관람석 몇 줄 더 배치해서 얼마나 부자가 되려고 그리 빽빽하게 상영관을 설계했는지 모를 일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고개를 조금 숙이고 지나가면 괜찮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온 몸으로 열연하는 그림자 몇 개가 스크린에 너울거린다. 낯설지 않다. 뭐하다가 이제 왔니... 교통지옥 서울이니까 이해해야 할까?
이 도시는 교통체증이 없는 곳이어서일까?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불이 꺼지면 아무도 새로이 입장하지 않고 좀더 좋겠다 싶은 빈 자리로 이동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내 옆자리 핀란드 아주머니는 커다란 팝콘박스를 들고 아삭아삭 팝콘을 드시며 영화를 보셨지만 그녀의 아삭거림에 신경이 곤두서지 않는다. 핀란드극장에는 없는 여러가지가 이미 나를 여유롭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역도선수가 무거운 역기를 들고 있는데 깃털 하나가 역기에 내려앉는 순간 선수는 역기를 떨어뜨리고 무너져 앉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 내 옆자리 아주머니의 팝콘씹는 소리는 역기위에 내려앉은 깃털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역기를 들고 있지 않은 나에게 깃털은 문제되지 않는다
스마트폰 발광족이 상영관을 비추고 뒷자리에서는 끊임없이 내게 인사를 건네고 건너편 누군가가 영화끝나면 어디에 갈지 내귀에도 전달되고 열혈엄마의 교육현장에서 함께 배우고 있는 처지라면 옆자리에서 끊임없이 바스락거리는 팝콘따위 쏟아붓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