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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Apr 01. 2017

세상 쉬운 아침식사

야근이라는 말을 따로 사용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남편은 매일 야근을 했다. 게다가 흔히 야근했다 이야기하는 10시 무렵 퇴근하는 남편에게 "오늘은 일찍 왔네요, 이런 날이라도 빨리 잠자리에 들어요"라고 할 만큼 저녁은 커녕 밤시간조차 함께 하지 못하는 십여년의 삶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입에 풀칠하기 위해 피눈물흘리며 일하는 야근이 아니었고 악덕고용주의 고혈을 짜내는 착취의 결과로서의 야근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가족중심의 사회를 보장하지 않는 사회적 착취라면 착취겠지만...


우선 야근수당, 휴일수당이 지급되었고 업무의 양과 완성도사이에서 남편이 선택하고 걸어 온 길이다. 그 길을 나는 집안사를 오로지 내몫으로 해내는 것으로 지지하고 도왔다. 한때는 적지않은 급여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한달 급여만큼의 시간외 근무수당이 나오는 달도 부지기수였다.


이런 남편이 집에서 저녁식사를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날들을 자정넘겨 돌아오니 가족과의 저녁식사는 커녕 깨어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힘든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남편이 집에서 먹는 유일한 식사는 아침식사뿐이었다. 바쁘기로 유명한 연구소에서도 제일 일을 많이 하는 사람 중 하나였던 남편과 그만큼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바쁘고 일이 많았던 같은 직장의 나는 결혼을 하면서 회사 바로앞에 둥지를 틀었다. 출근에 필요한 시간, 도보 3분


그덕분에 우리는 조급하나마 가족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집에서 먹는 한끼를 건너뛰거나 대충 차려주는 것이 성미에 안맞았던 나는 다른 집의 저녁식사이상으로 아침상을 차려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잠들고 남편은 퇴근하기 전의 밤시간에 대구지리를 끓이고 생굴을 잔뜩 넣은 굴국밥을 준비하는 등 내가 서있는 밤의 부엌은 늘 분주했다.


이런 습관이 남아 아이들은 아무리 등교가 급해도 아침식사를 제대로 먹고 나서야 집을 나설 수 있고 빵이나 씨리얼처럼 간단한 식사로 대체할 수도 없었다. 아주 오랫동안...


테일러오브파나마의 한 장면, 네이버 이미지에서 가져왔습니다
미국영화를 보다 보면 바쁜 아침시간의 간단한 아침식사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준비하는 데에 3분도 안걸리겠네. 세상 쉬운 아침식사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핀란드에 와서 근무하는 동안 남편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고 그와 반대로 아침식사의 특별함은 점차 줄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수고로움과 아침식사의 특별함 사이에서 적당한 타협을 했다. 이제는 나도 휴일 아침만큼은 세상쉬운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거나 빵을 구워두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크로와샹을 사다가 봉지에서 꺼내 내어주기만 하는 날도 있다. 오늘 아침이 바로 그런 날이다. 대신 키위와 복숭아, 딸기를 잘게 자른 뒤 요거트와 버무린 과일범벅을 함께 내주었다. 비타민은 중요하니까!


3분도 안걸렸다! 세상 쉬운 아침 식사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것들이 변해간다. 불과 몇달 전만 해도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될 줄 염원은 했을지언정 장담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불안불안한 나날들을 보내고 세상쉬운 아침식사와 함께 구치소 독방앞에서 한참을 울었다는 그녀의 기사를 읽었다. 그녀의 아침으로는 식빵이 제공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아침은 어땠을까? 나는 세상쉽고 좋은 아침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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