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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May 24. 2017

취미가 뭐에요?

2009년 김연아선수가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이듬해 밴쿠버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 전 국민이 김연아선수의 스케이트날에 무한한 사랑의 시선을 보내던 시절, 딸들은 피겨 스케이트를 꼭 배워보고 싶다며 오랜 기간 엄마에게 부탁을 했다.


직장에 다니느라 엄마의 퇴근시각까지 어린이집에서 머물러야 하는 딸들이 안타까워 어린이집 건물 맞은편 태권도장을 찾았었다. 그렇게 딸아이는 다섯시 무렵 사범님이 어린이집으로 찾아와 손을 잡고 도장으로 데리고 가셨고 한바탕 운동을 하고 나면 헐레벌떡 달려온 엄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 한 명 더 받는 것이 얼마나 큰 돈이 된다고 모른척해도 그만일 나의 사정을 배려해 주신 관장님과 사범님이 지금도 몹시 감사하다.


덕분에 딸은 어린 나이에 태권도를 시작했고 김연아선수와 피겨스케이트에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한 무렵에는 이미 국기원에도 다녀와 품증을 받은 뒤였다. 태권도를 계속 시킬 것인지 다른 운동을 하게 할 것인지 고민하던 차 딸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아이들은 피겨스케이트를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피겨스케이트를 배우기 까지, 또 배우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우선 아이스링크가 많지 않아 그나마 가까운 과천까지 차로 달려가야 했고 아이들이 강습을 받는 동안 한참을 기다린 뒤 다시 태워와야 했다. 단체강습프로그램은 대기자가 너무 많아 언제 시작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어 개인레슨상담을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개인레슨이라 부르며 고가의 레슨비를 요구하는데 네명까지는 한그룹으로 묶어 수업을 한다 하였다. 왜 소그룹레슨이 아니라 개인레슨이라 부르는지 의문이었고 왜 4명 모두가 각각의 개인레슨비를 내야 하는지도 의문이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어 그 선택지를 골랐다.


스케이트와 방수가 되는 피겨바지 등 새로 사야할 것도 무척 많아 비용이 부담스러웠고 이 지출이 필요하다는 것을 과연 남편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 여유 시간에 강의를 나가 받은 강사료를 모아두었던 비상금으로 충당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두 딸의 터울이 적어 한 그룹에 넣을 수 있었고 두아이를 위해 각각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리고 아이들이 너무나 즐겁게 배우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엄마의 비상금과 노력을 바탕으로 행복한 시간을 즐기다가 미국으로 이사했고 지금 이곳에 머물고 있다.


해외살이가 팍팍하지만 그래도 얻는 것이 무엇일까 꼽는다면 딸들이 계속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당시 딸들과 함께 스케이트를 타던 아이들, 혹은 그 이후에 시작한 아이들은 열이면 열, 모두 스케이트를 그만 두었다. 아이를 태우고 아이스링크를 오가던 엄마의 에너지가 다했거나 지갑이 비었거나 혹은 영수학원의 스케줄틈에 스케이크가 설 자리를 잃었거나 이유는 명확하다.


이 작은 도시에도 전용 아이스링크가 여러 개 있고 강습이 있는 시간 외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이곳, 클럽제로 운영되어 해당클럽출신 선배언니들이 코치로 활동하는 탓에 저렴한 강습비로 운동할 수 있는 곳이다.


다양한 클럽이 있기에 크고 작은 대화나 행사가 자주 열려 기술연마나 급수인증으로만 꾸려지던 한국에서의 스케이트와는 달리 하나의 취미로, 생활속의 기쁨으로 스케이트가 자리잡을 수 있었다.


시즌마다 다양한 테마로 아이스쇼를 펼친 딸들은 벌써 몇회의 아이스쇼 무대에 섰으며 하늘하늘 피겨드레스를 입고 개인프로그램도 소화했다. 어제는 이번 시즌을 마무리하며 바베큐파티를 했다. 같은 클럽이지만 실력에 따라 팀을 나누어 운동하기 때문에 처음 보는 얼굴들도 많았지만 같은 소속이라는 동질감때문인지 스스럼없이 잘 어울린다. 이번 시즌은 한 해의 마지막 시즌으로 클럽활동을 고려해 성실히 운동한 친구에게 메달과 트로피가 주어진다. 팀별로 주어지는 최우수트로피를 받게 된 큰 아이는 한국으로 이사갈 때 꼭 이 트로피도 가져가고 싶다며 애착을 보인다.




스케이트를 갈아신으며 함께 나눈 이야기들, 스케이트를 타며 함께 한 시간들이 딸들의 가슴속에 소중한 추억으로 새겨져 있겠지, 그리고 훗날 누군가가 취미가 무어냐 물으면 스케이트라고 말할 수 있을런지도...

이것저것 배워보기도 많이 하고 즐기기도 많이 해 본 나지만 누군가가 취미가 무어냐 물으면 뭐라 대답할지 망설이게 된다. 비단 나만이 아닌 많은 한국인들이 느끼는 이 망설임은 집단중심,성과중심의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시간과 행복을 고려하는 취미라는것이 과연 어떤 위치에 있는가와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이다.



딸들은, 그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저마다의 취미로 개인의 시간을 운용하고 개인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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