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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19th

실현되지 못한 서사에 대한 중독

by Someone

스무살의 나를 정말 예뻤다고, 그래서 반했었다고 얘기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취기가 오른 채로 쓸쓸한 미소를 보였다. 익숙한 표정이다. 함께 하는 자리에서 문득문득 놓치지 않고 보아 온 표정이다.


스무살의 나는 그가 나를 보고 반했는지 몰랐고 내가 너무 보고싶어서 무작정 나를 태우고 떠나던 그 버스에올라 한참을 내생각만 했다는 걸 삼십년이 지나서야 그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스물여섯인지 일곱인지 여덟인지 아홉인지도 모르게 헤아리기 어려운 그 시간동안 그는 친구와 연인의 중간쯤으로 내 곁을 지켰다. 흔한 말, 친구로라도 곁에 있고 싶어서, 친구로조차도 볼 수 없어질까봐 그는 적당한 거리에서 나를 아껴주었다.


그리고 어느날 말없이 용기낸 그를 밀어냈다. 아무말 없었기때문에 말을 기다린 것이었지만 그는 거절로 여겼다. 그렇게 그는 나를 보냈고 나 역시 그를 보냈다. 그렇게 진심을 알지 못한 채 어긋난 세월동안에 그는 늘 그렇게 쓸쓸한 미소를 보였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친구로라도 남아서 이렇게 오래오래 지켜볼 수 있고 서로의 행복을 응원해 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는 정해진 결말대로 흘러갈 줄 알았다. 그가 무너지듯 내뱉은 한 마디, 이십여년 전 내가 기다렸던 한 마디가 내 귓가에 전해지기 전까지는 그렇게 우린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기억해 주는 추억으로 존재할 것이라 믿었다.


실현되지 못한 서사에 대한 중독으로

매일 아파하게 될 줄, 그도 나도 알지 못했다.


다 가질 수 없는 것이 삶이건만 다 가지고 싶은데 다 갖지 못해 아픈 것은 사랑일 수도 있었던 어떤 것에 대한 깊은 애도이자 후회라는 그림자로 존재한다.


우리 이야기의 결말을 그도 나도 모르는 채로

감정의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과거를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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