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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Apr 04. 2016

핀란드의 휴일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한국에서 생활하다가 외국에서 살면서 생긴 근본적인 변화는 아빠의 저녁시간 또는 휴일


한국에서는 일년이 365일이라면 360일은 집밖에서 저녁을 먹었고 가족들이 잠들기 전에 퇴근하는 날은 350일쯤 되지 않았을까 싶게 남편은 일만 하고 살았다. 미국에서야 학생이었고, 게다가 남들보다 길게 공부해 이미 전공분야 박사과정을 공부한 사람이 회사의 포상차원의 학위파견으로 MBA 석사과정을 한 번 더 하는 처지로 공부 열심히 할 필요가 별로 없는 학생이었다. 과정을 마치기만 하면 될뿐 성적이 중요하지도 않고 돌아갈 직장도 있는 남편은 그 시절을 달리기만 했던 본인 인생의 휴식기로 삼은 듯 보였다.


물론 시험기간에야 밤샘 공부도 하고 발표준비로 휴일에 팀원들과 미팅도 했지만 365일중 350일은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엄청난 변화였다. 깜깜한 밤이 아닌 초저녁에 남편이 집에 있는 모습이 어색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지금은 일을 하고 있고 핀란드사람들에 비해 많은 양의 일을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에서처럼 일할 여건이 아니다. 회사구조적으로 그렇다. 그래서 남편은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이 대부분이고 휴일의 대부분을 집에서 쉴 수도 있다. 물론 저녁을 먹고 집에서 새벽까지 일을 하는 날도 많지만 내 기준에 남편의 변화는 집에서 저녁을 먹느냐 아니냐이기 때문에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이번 주는 재외국민 부재자 투표가 있다. 한국대사관이 있는 헬싱키까지 약 한시간 사십분... 휴일을 맞이하여 남편과 함께 투표를 하러 다녀왔다.아이들은 숙제하고 영화보며 집에 있겠다기에 둘이서만 집을 나서 투표를 한 뒤 근처에서 점심을 사먹고 돌아왔다.


아이들이 조금 크니 부부가 둘이서 다닐 기회가 제법 많아진다. 앞으로는 이런 시간들이 더욱 많아질텐데 둘이서 재미있게 잘 지낼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부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찾아가는 것이 나의 버킷리스트에 들어있는데 아직 못찾았다.

같이 배드민턴도 치고 테니스도 치지만 평생 둘이서 즐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무래도 나랑 치면 남편은 재미가 없다. 체스를 두기도 하지만 내가 자꾸 져서 싫다. 그냥 좀 져주기도 하면 좋겠지만 마누라 기분 생각해서 그런 융통부려주는 사람은 아니다. 누구처럼 둘이서 살사댄스라도 배워볼까?


날씨가 화창했더라면 좋았으련만 아직은 쌀쌀하고 부슬부슬 빗방울도 좀 뿌린다. 광장을 좀 거닐다 올까 했지만 날씨탓을 하며 집으로 향한다. 엄마없이 점심을 먹어야 하니 간단하게 챙겨먹을 수 있는 카레를 해두고 왔다. 간식으로는 참치마요샌드위치를 준비해 뒀다. 잘 챙겨먹었는지 궁금해 전화를 걸어보지만 두 녀석 다 받질 않는다. 불과 얼마전만 해도 엄마가 외출하면 귀가때까지 수차례 전화하고 문자보내던 작은 딸도 왠일인지 신호음만 울리다 만다.


다컸네....


아이들만 두고 나가 별다른 것을 하고 온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원해서 우리만 간 것인데도 자꾸 마음이 쓰인다. 스케이트 보드 타러 나갈까? 집에 돌아와 잠시 쉬다 말고 아이들에게 묻는다. 어제 배드민턴을 치고 쇼핑몰에 들렀다가 스포츠용품점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하나씩 사주었는데 연습도 할 겸 나가보자 한 것이다. 아침에 숙제하던 작은 아이가 스케이트보드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책상아래 두고 발로 굴려가며 숙제를 하던 모습이 떠올라서다.

스케이트보드는 사실 아빠가 사고 싶었던 것 같다.미국에서 학교다닐때 체육시간애 스케이트보드타는 법을 배웠던 아이들은 매장 트랙에서 타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데 뜻하지 않게 아빠가 두개를 덥석 사버린 것이다. 물론 50프로 세일중이었고 한국과 미국의 판매가를 검색해 보고 난 뒤의 구매지만 뜻밖의 선물에 아이들이 신이 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나는????

뭐라할지 궁금해서 일부러 묻는다.


자, 당신은 이거...

영수증을 조용히 손에 쥐어준다.

아이들은 한참동안 스케이트 보드를 탔다. 문을 나서면 산책로가 따로 있어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동안 부부는 동네 한바퀴 산책을 한다. 어라! 봄이랍시고 꽃망울이 피어올랐다.


여기도 꽃이 피긴 피는갑소?

그런갑소? 봄이 오긴 하는갑소~

말장난을 치며 꽃망울로 다가간다.

어찌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인데 한국을 떠나니 누리게 된 일상인지라 우리 가족에게는 매우 특별한 하루하루다.


그런 의미에서 밀루아 한 잔 부탁해야 겠다.


여보!!!! 밀루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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