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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뚜기 Mar 24. 2020

분가, 다시한번 다짐.

요 몇일 집안 행사들을 겪으면서, 시어른들과의 분가를 다시 한번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시어른들은 양반인 편이시다.

그래도 포용해주시고자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해주신다.

하물며, 그럼에도 요즘 같은 시대에 시집살이는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시누가 집 근처에서 사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내 삶의 휴직처인 집으로서 옳지 않다.

나도 나만의 인생 목표가 있고, 친정 부모님의 자랑스런 딸이다.

근대, 시집살이를 하다 보니 그들이 내게 바라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시누이, 본인들의 딸이란걸 느끼게 된다.

시누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다. 그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것들이 그들에게 부정당하는 것에 삶의 터전으로는 옳지 못하다고 느낄 뿐이다.

사소한 이벤트를 나열하자면, 

시누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좋겠다. 이런 엄마 둬서 ~ 우리 애는 자기 엄마가 ...' 뒷말이 없었다.

아이 돌로 우리 친정 부모님이 오셨는데 ' 우리 며느리가 사실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근대 무엇을 할려고는 해요' 이런말을 친정 부모님께 하면서, 정작 당신딸은 본인에게 보고 배운것이 있어서 시집가서 음식 잘한다고 소문이 났다는 말 등등.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나는 나의 정신을 붙잡고자 노력한다. 

감사한 일이 8가지 일이라도, 이런 결정적인 이유로 시어른들이 너무 싫어질때가 많다.


내 인생의 기준이 당신들의 평가가 아니라고,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자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 뿐이라고 다짐한다.

정말 '욱' 할때가 많다. 한번씩은 진짜 어이가 없어서 뛰쳐 나오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우리네 어머니들의 화병을 알것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지금 오늘 이순간 내가 지금 참는 이유는,

가족간의 의가 상하지 않도록 분가를 하길 바라고,

일상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내가 있다. 

그리고, 굳이 시집 식구들에게 솔직할 필요가 없다. 살면서 점점 마음의 문이 닫히게 된다. 

한아이의 엄마로써, 현재 나의 상황에 우선은 조금만 더 버텨 보자고 다짐을 한다.

결정적으로, 시누가 근처에 살면, 아무리 커리어가 중요해도 시집 식구들과 멀리 사는 것이 맞다.

'나에게는 당신들의 딸보다 제가 우선이고 중요합니다. 나는 당신들이 그렇게 단면적인 것만 보고 평가할 사람이 아닙니다' - 오늘도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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