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나누어주는 사람 H 씨
“우리 할머니는 중국에서 출발한 큰 배를 타고 말레이시아 항구에 도착했어. 그때는 말레이시아가 말레이아라고 불리던 때였지. 우리 가족이 이곳에 정착하게 된 순간이었어. 내 양친의 할머니께서는 두 분 모두 중국에서 오신 분들이야. 나는 이민 3세대인 거지.”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본토를 떠나 바다의 풍파와 역사의 물결을 타고 미지의 땅에 도착한 여성들은 그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경제활동을 했다. H는 나의 첫 질문을 듣고 그의 할머니로 시작되는 가족의 출발 지점을 말했다. 이민자들의 고생담은 말도 못했다. 손이 깨끗할 날이 없었다. 광산 산업에 종사하며 험지에서 살림을 꾸려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H와의 인터뷰에서 조심스럽게 그의 뿌리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소위 말해 ‘화교’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고 분명 이는 그의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화교의 문화는 본국을 떠난 중국인들의 핏줄을 통한 강력한 연결고리로 이루어진 문화적, 경제적 공동체이며 정착지에서 막강한 파워를 만들어내고 있는 그룹이기 때문이다. 내 예상은 빗나갔다.
“내게 있어서 중국과의 연결고리는 크지 않아. 그렇다고 말레이시아와의 정서적인 결속이 강하다고 보기도 힘들지. 우리 가족이 현재 물리적으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여길 뿐, 그저 그 이상되는 의미는 없어.”
H의 설명은 의외였다. 왜일까.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의 속마음이 조금씩 풀려나오기를 기다려보았다. 곧이어 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항상 긴장감이 있었어. 좁힐 수 없는 사회적 갈등이 있었다는 의미로. 말레이시아는 인구의 60%가 무슬림이고 우리는 늘 말레이시아에서 마이너리티에 속했으니까. 국민의 20% 정도를 차지하는 ‘화교’ 인구는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기도 했고 동시에 희생량이 되기도 했어. 그런 사회에서 커나간다는 건 편치만은 않은 환경이었지.”
이들의 강한 경제력에 비해 정치력은 크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치인들은 이 갈등을 여론 조성에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했다. 인종 간의 충돌을 부추기고, 이슈화했다. 종교적 갈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화교들과 말레이들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 대적해야 했고 정부를 움직이는 손은 그 긴장감을 노골적으로 유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꽤 손쉬운 지배 수단을 포기할 리가 없는 지도층은 시민들의 약점을 그대로 유지시켰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H가 갖고 있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은 어느 날 별안간 근거 없이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그가 말했다. “나의 홈(home)은 내가 몸을 누이는 곳(where I sleep).”이라고.
언젠가 그의 말을 농담으로 흘려들은 적이 있다. 중동 지역에 전쟁이 시작되려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해외의 젊은이들이 저마다 본국으로 들어가 군대에 자원입대해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고 하는 ‘애국적인’ 움직임을 미디어에서 보여줄 때 그는 내게 물은 적이 있었다. 두 조각으로 나뉘어있는 너희 나라 대한민국에 전쟁의 긴장이 커질 때 너는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나는 내가 존재하는 이 위치에서 내 나라에 도움이 될만한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무척이나 포괄적이고 고루한 대답을 했다. H는 생각이 달랐다.
“나는 말이야, 평화로운 중립국인 스위스에서 조용히 은신하겠어. 가긴 어딜 가. 전쟁은 우리가 결정하지도, 선택하지도 않았잖아. 우리 아파트 지하에는 벙커도 있거든. 어지간히 넓고 쾌적해. 유럽은 세계대전을 두 번이라 겪었기 때문에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려는 전쟁 대비가 되어 있어. 너희 아파트에도 벙커 있을걸?”
나는 그의 말을 우스갯소리로 넘겼다. 그동안 남자들의 군대 얘기라면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로 자기들만의 군대스리가 무용담을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지 이런 심드렁한 태도가 신선해 보이기는 했었다. 고국의 영광이나 민족주의에서 벗어난 H의 태도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고민해볼 만한 신기한 지점이 분명히 있었다.
오늘 H와의 인터뷰를 시작하며 그의 이야기는 할머니의 스토리로 시작했고 이러한 흐름은 ‘가부장의 역사’와는 거리가 있는 게 분명했다. 말레이시아에 존재하는 주변인으로 지내며 그는 자신들의 존재가 조금은 기이하고도 특별하다고 여겼다. 대학에 진학하고 다시 2년 동안의 영국 유학 생활을 거치면서 그는 가족을 떠나 독립적인 삶을 조금씩 꾸리게 되었다.
H는 쿠알라 룸푸르의 회사에 입사했고 우연한 기회로 만난 동료가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한 국제기구에서 H의 포트폴리오에 꼭 맞는 사람을 리크루트 한다는 소식을 알려주자 주저 없이 곧바로 지원서를 보냈다. 기대도 않고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H 씨, 아직 이 자리에 관심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네, 네, 물론이죠. 여전히 관심이 많습니다.”라며 짧은 대화를 했는데 그게 전화 인터뷰였다는 것을 이후에 알게 되었다. 곧 합격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와, 좋은 시절이었네! 요즘은 그렇게 쉽게 입사하는 법이 없어. 얼마나 까다로운데. 단계마다 긴장의 연속이야. 심층 면접도 여러 번이나 보고. 막판에 결과가 뒤짚히고 엄청 아슬아슬해.”
“맞아, 나는 박사 학위도 없고, 그렇다고 필기시험을 패스한 것도 아니고,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이 자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로비를 한 것도 아니었어. 매우 순탄하게 합격서를 받았어.”
그의 나이 25살이었다.
그와 알고 지낸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내가 비정규직으로 회사에 들어왔을 때 그는 이미 우리 기구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고 근무하는 건물이 아예 다른 타 부서에서 일하며 조직 안의 정치와 인맥 등, 국제기구라는 이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치를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일하는 분야와 동선이 겹치는 법이 없었지만 회사에는 워낙 동양인이 없어서 서로 안면을 트고 지내는 게 어렵지 않았다.
나는 가끔씩 만나는 그와 함께 초밥을 사 먹거나 맥주를 마시며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고 여행 정보를 나누었다. 그저 사는 얘기를 하며 가벼운 대화를 나눴던 그동안의 시간을 회상하며 가만히 계산해보았다. 그의 속 얘기를 내가 오늘처럼 이만큼 오랫동안 들어주었던 적이 있던가. 주로 그는 내가 겪는 좌충우돌 무용담을 공감해주는 사람이었고 고충을 말하면 지혜를 나누어주는 친구였다.
“아시아 여성들은 외국 어디를 가나 인기가 많잖아? 눈에 띄고. 똑똑하고 이국적인 외모 때문에 다들 좋아해. 하지만 난 뭐야, 정반대야. 아시아 남자들은 매력적으로 안 봐.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구.”
“하하하, 그러게 H 너도 주특기를 키워야지. 매력은 가꾸어야 하는 거야. 혹시라도 측은지심이 많은 심성이 유난히 착한 이타적인 여성이 너를 좋아해 줄지 누가 알어. 희망을 버리지 마.”
“내가 이번에 싱가포르 출장 다녀오면서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탔거든. 라운지에서 내다보기만 했는데도 아주 놀라웠어. 한국 여자들은 다 연예인이더라. 10년 전의 너처럼.”
“죽을래? (멱살 잡는 시늉)”
H와 나누는 실없는 농담은 서로에게 일절 무해하기 때문에 여느 어른들 사이에 등장하는 일종의 냉소랄까, 바닥에 깔려있는 긴장감이 필요 없는 시간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이따금씩 매우 염려스러운 얼굴을 하고 내게 말하기도 했다. “애리, 너 자신에게 조금 쉴 틈을 줘.” 그의 말을 당시 나는 이해할 여력도 받아들일 준비도 되지 않아 흘려버리고 말았다. 나는 목표한 일에 도달하지 못해서 꽤나 애를 태우고 있었고 회사와의 계약 상황이 몇 년째 안정화되지 않아서 사력을 다해 일에 집중하고 있었을 시절이었다. 때때로 만나는 그는 내가 자신의 앞에서 한숨을 푹푹 쉬며 무겁고 커다란 돌덩이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면 여러 방향으로 회전시켜보고 이리저리 뜯어보고 살펴보며 곧이어 고민의 무게를 반의 반쯤 가볍게 만들어서 내게 다시 돌려주었다. 그의 직관은 늘 도움이 되었다.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 오랜 시절 내 고충을 그렇게 쏟아놓느라 나는 그의 촘촘한 속마음과 그간의 사정을 이제야 듣게 되었으니. ‘그랬었구나..’ 지금껏 까마득히 몰랐다. 그가 어린 나이에 이혼을 했던 일과, 어쩔 수 없이 꽤 오랫동안 별거 생활을 유지해야 했던 사정과, 몇 년 전 걷잡을 수 없는 심리적 위기감을 겪는 동안 광장 공포를 겪었다는 이야기를.
나는 그의 어려움을 왜 이제야 질문했을까. 자책감이 들어 펜을 잡고 그의 이야기를 부지런히 받아 적던 오른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려 바지에 손바닥을 닦았다. 갑자기 땀이 났다. 테이블 아래로 두 손을 맞잡고 힘주어 깍지를 끼며 어쩔 줄 모르는 이 죄책감을 숨겨야 했다. H와 그동안 시시때때로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처럼 내가 긴장감에 목이 탄 적은 처음이다. ‘집중하자.’ 속으로 자세를 다잡았다. 그가 지금 풀어놓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는 전심으로 듣고 오롯이 기록하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아 있으니 말이다.
나는 곧 그의 에너지가 향하는 방향을 따라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