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에서 자란 아이, 프랜시스 (3)
원시적인 삶의 형식은 종교에 귀의하기로 선택한 어른들의 미션이었을 뿐인데 어린아이는 그 방식을 덮어쓰고 마치 본인의 숙명인 듯 적응해야 했다. 편향적인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세상으로 빠져나왔다. 그 누구도 아닌 본인의 선택으로. 타인이 만들어 놓은 삶의 영역을 자신의 걸음으로 덤덤하게 걸어 나왔다. 그것이 부모가 만들어 놓은 담장이었을지라도 말이다. 지금까지 그의 이야기를 불편한 자세로 듣던 나는 이제야 의자에 등을 기댔다. 한숨 돌리고 싶었다.
18살, 독립한 후의 삶은 그에게 심리적 탄력감을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조금씩 회복력을 돌려받을 수 있었어."
새로운 터전에서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과의 풍족한 교류를 마음껏 누리며 프랜시스는 즐거운 일상을 구축해 나갔다. 명징하고도 어두운 종교적, 정서적 배경을 뒤로하고 그는 그렇게 부모의 영향권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사회적 인간으로서 편안함을 느끼는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갔다.
"벽돌을 하나씩 쌓듯 삶을 다시 건축한 거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어." 나는 두 손을 꼭 잡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오래전에 벌어진 일에 대해 다시 응원을 받는다는 사실이 재밌다 생각했는지 그는 눈에 띄게 웃으며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런데 말이야, 그전에 내가 할 수 있는 한 위험한 짓은 다 하고 다녔어. 타고 있던 말이 몸부림을 쳐서 나를 떨어뜨릴 정도로 몰아붙였고, 비탈을 기어올랐어. 하여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 죽기 직전의 찰나까지 갈 수 있는 만큼. 당장 삶을 끝낼 것처럼 행동했지. 그 모습을 보고 부모님이 놀라서 달려온 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나중에 심리학을 공부해 보니 그랬어. 그건 포스트 트라우마틱 증상이었던 거야."
아마도 그는 하늘에 있는 신과 씨름을 한 것 같다. 지붕 위에 서있던 어린아이가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았던 한 시절 동안 그에게는 오히려 내면의 힘이 축적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절벽 앞으로 한 걸음을 더 옮겼을 때 과연 죽는지 안 죽는지 어디 한번 봐라, 하는 심경으로 매일을 지속했으니.
그는 수십 년간 같은 공상에 빠졌다. 어쩔 수 없이 반복되었다. 매일같이 그 장면으로 돌아갔다. 사고가 나던 그 날, 그 시간, 그 장소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다시 돌이킬 수 있다면 나는 그때 뭘 해야 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마침내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이 이루어졌다지만 여전히 장애를 갖고 사는 삶이었다. 하루도 통증이 없는 날이 없었고 안구 주변에는 압박이 있었기에 그 고통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다. 프랜시스는 대신 무언가에 몰두했다.
"내가 좋아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매일같이 세 시간씩 했어."
"세 시간씩이나?"
"술도 많이 마셨어. 정확히 중독이 되지 않을 만큼만. 아마 마약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면 마약을 복용했을 거야. 하하.”
그가 농담 인척 말하는 모든 내용은 진담일 때가 대부분이다.
몇 년 전 “요즘 내가 말이야. 술이 엄청 늘었어.. 매일 마셔서 이렇게 됐어. 집에는 와인 병이 가득해.” 하며 근심이 가득한 고백을 했을 때 그의 대답이 기억난다. ‘그게 뭐 어때서?’ 하는 표정을 지으며 “술 좋지. 시름을 잊고 싶을 때엔 술만 한 게 없어.” 하는 반응을 보여 나를 일단 안심시켰다.
인류가 고통을 덜어주는 물질에 기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이라고도 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구심을 표시하는 나를 향해 그는 덧붙였다. "단, 중독되어 끌려다니지 않을 만큼만."
컴퓨터는 그에게 세상으로부터 탈출하는 문이 되어 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는 어쩌면 다각적인 탈출을 오랫동안 염원했는지 모르겠다고. '괜히 윈도(window 창문)가 아니네..'
"매일 그만큼 열심히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했으니 실력이 늘 수밖에 없었어. 좋아서 하는 거니까." 그는 별안간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중독이라 부르는 단계는 그걸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랐을 때 대면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영혼이 묶이지 않을 만큼만 즐거워하고 손을 떼야한다고. 술이든 마약이든, 그 무엇이든 중독물이 사람을 제어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자신이 지배권을 완벽하게 잃었을 때의 일이고 그때는 당신 머리에 올라 타 일상을 통제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동의가 되었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다가 내 삶의 방향을 잃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해줄지 그렇게 집착적으로 타인의 평가와 처분을 기다리며 나의 영혼이 상했고 비위가 뒤틀려갔다. 내 인생의 지배자는 내가 아니었다. 겪어보지 않으면 의미를 모를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스물세 살, 자신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그 모든 것이 사람에게 늘 안식만을 주는 법은 없다. 여전히 울퉁불퉁한 삶을 이끌어야 하지 않겠나. 어려움과 두려움은 도처에 있었다. 프랜시스가 컴퓨터공학 전공으로 대학을 마치고 취업이 어려워 졸업 후 6개월을 손을 놓은 채 폐인처럼 지내고 있을 때 어머니는 그에게 공부를 더 해보라고 제안을 한다. '심리학 공부'였다.
"엄마가 조언하신 거였구나!"
프랜시스와 오랜 애증 관계에 놓여있던 어머니는 그를 어쩌면 제일 잘 알고 있는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권유대로 심리학 석사 공부를 시작하고 자신이 지금까지 겪은 수많은 일들을 관조하며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가 내게 말한 표현이 이제야 와 닿기 시작했다. '안정감이 있는 내면'을 유지한다는 것은 일상의 안팎에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고. 늘 무언가 소용돌이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조화를 찾는 것이라는. 나로서는 한 호흡에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었다.
‘말이 쉽지. 그 발란스를 어떻게 찾아?’ 그는 나의 표정을 읽어냈다, 드러내지 않는 비동의를. 그리고는 정언처럼 말했다. 평화로운 일상은 허수일뿐 실재일 때가 없다고. 감각(feeling)과 감정(emotion)은 두 가지의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감정’은 네가 받아들이는 ‘마음’이고 ‘정서’이고 ‘해석’이기 때문에 너의 통제권 안에 있다는 얘기였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내가 회사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그가 표현해준 수많은 문장들이 떠올랐다.
"애리, 넌 지금 유리한 고지에 있어." 한없이 무력감과 패배감을 겪고 있는 내게 그는 말했다. 나는 그의 말들이 한참이나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는데? 나한테는 아무 힘도 없다고.”
그는 매일같이 내 생각을 바꿔주려고 자극했다. 해석을 달리 하라고. 타인의 처분을 기다리지 말고 네가 안고 있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그네에 앉아 양손으로 줄을 꼭 잡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뒤에서 등을 밀어주는 사람이다. 나는 그의 도움으로 어쩌면 내가 쥐고 있던 모든 걸 잃을 수도 있었던 힘든 협상에 비로소 등판했다. 조금씩 그네 위에서 발을 굴렀다. 그네가 높이 차올랐다.
당시에 그는 내가 겪는 패배감을 ‘좋은 스트레스’로 바꾸어주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 선한 스트레스는 자극이 되고 너처럼 발전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성장 동력이 되기도 한다고. 그러면 어두운 감정이라는 괴물에 잡혀먹지 않을 수 있다고. 매번 그는 내게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 했다.
돌아보면 신비한 일이기도 하다. 그는 훨씬 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내가 회사에서 갈등 상황을 겪고 있으면서도 입을 꼭 다물고, 사무실 문을 더욱 굳게 닫고 아무에게 발설하지 않으려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그는 한참 전에 발견했다. 이제야 뒤돌아보니 그랬다. '너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여기 있으니 터놓고 말하고 싶을 때는 나를 찾아오라.' 프랜시스는 내게 비스듬히 신호를 주고 있었다.
그때 내가 끙끙 앓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도대체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나로서는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대체 어떻게 알았어?" 묻는 나를 향해 그가 살며시 웃었다. "나는 관찰을 해. 내 유년 시절을 봐. 나는 아픈 사람들과 수많은 동물들 사이에서 그들을 돌보면서 자랐어."
프랑스의 외딴 시골 마을에서 자라나 주변을 통찰하는 예리함을 누적했고, 수십 년이 지난 오늘 그는 최대한 조용하게 숨어서 홀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나를 빈틈없이 발견한 것이다. 말없이 아픈 생명을. 그의 도움으로 나는 생각의 힘을 기르고, 조금씩 사소하게 이기는 연습을 했다.
오늘 나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미술관 카페에서 나오는 길, 그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옆에서 걷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누군가 내 얘기를 글로 적어주어서 정말 마음이 놓여."
의아해하는 내 표정을 확인하고는 목소리를 조용히 깔고 비밀 이야기를 하듯 속사포로 말했다.
"십수 년 전, 어머니가 자서전을 출간했는데 나는 그 책을 읽고 최대한 저 멀리 던져놓았어. 나를 아는 그 누구도 절대 그 책을 발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어머니는 온통 자신의 시선으로 모든 스토리를 마음대로 적어놓았더군. 객관적인 이야기를 적은 건 딱 세 페이지뿐이었어. 사고가 난 날 나를 발견했던 그 장면. 왜냐면 그게 자기가 직접 겪은 게 아니라서 유일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단 한 씬이었던 거지.”
프랜시스는 이제 자신의 진짜 이야기가 꺼내졌다는 사실에 흐뭇해했다. 내 글이 번역이 되면 좋겠다는 코멘트도 덧붙였다. 나는 조금 웃었다.
그의 구술이 온전하게 담겨있는 인터뷰 노트를 소중하게 가슴에 안고 미술관 정원을 걸어 내려오며 나는 다짐했다. 그의 스토리를 최대한 원형의 것으로 잘 풀어보리라.
초원에서 자라난 아이 프랜시스, 장애를 얻고 이후 수많은 갈등을 거쳐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관계도를 다시 형성한 한 인간은 그동안 축적한 내면의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막막한 마음에 지지 않고 스스로의 내면에 몰입하는 방식을 찾은 사람. 이제는 내가 프랜시스의 사연을 풀어내고 그 내면의 힘을 구경하고 나서 이 스토리를 타인에게 건넨다. 지금의 인터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