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0세에 한국을 떠난 인물, 공수신
“큰 빚을 떠안았어. 지금까지 열심히 모은 것들, 돈이 될만한 것들, 그야말로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재산을 전부 꺼내 팔아도 답이 없었어. 매달 월급을 쏟아부어도 대출 이자를 겨우 막을 수 있는 수준의 대단한 빚을 짊어지게 되었어. 해결 방안도 보이지 않았고, 빛이 보이지 않았어.” 아무튼 그에게는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수신은 30대 초반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신문광고의 경제경영서 한 권 때문에 이 사달이 벌어졌을 줄이야. IMF 구제 금융 시절에 도산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게 거리가 느껴지는 소식들이었다. 대부분 사업을 하다가 거래처 어음을 막지 못했거나 융통이 되지 않는 자금 때문에 직원들 월급이 밀리며 경제적 압박을 받았다고 생각을 해왔는데..’ 국가의 부도는 수많은 개인을 무너뜨렸다. 대비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후 국가경제는 다시 상승했을지 모르나 이때 쓰러진 개인들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마음이 건강해 보이기만 하는 그에게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나오니 나도 말이 안 나왔다. 회사에서 늘 온유한 모습으로 보이는 수신 선배, 그가 화내거나 고집을 부리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자기 땅을 떠나 해외에 정착하며 이상한 방식으로 완고 해지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에게서 나온 스토리가 예견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느꼈다. 큰일을 대체 어떻게 수습했을까. 한순간 억대의 빚을 지고 그는 무엇을 했을까.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런데 그의 마음은 나의 상상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그는 매일 아내와 함께 손을 잡고 기도를 한다. 우리가 지금 젊고, 아프지 않은 게 감사하다고. 살아있어서 감사하다고.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으니 감사하자고.
그를 바라보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고무인형인가? 상황이 이토록 절망적인데 감사의 기도를 했다니..’ 나는 그의 이야기를 지금껏 듣는 것만으로도 여러 번 한숨이 쉬어졌다. 그는 이런 표현을 했다. “애리 씨, 상황이 절망적일수록 기도는 더 절실해.” 나도 겪어 봤다. 저절로 기도가 나오는 그 처절한 상황을. 물론 나의 기도 내용은 감사의 기도와는 판이하게 달랐지만.
인터뷰를 청하고 계속 그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잠시 펜을 내려놓고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뭔가 이상했다. 그의 이야기에는 뭔가 빠진 게 있었다. 뭐가 빠졌을까. 나는 노트를 한 장 넘겼다. 다시 이전 페이지로 한 장을 더 넘겼다. 알 것 같았다. 수신은 무언가 건너뛰었다. 서술의 한 축이 실종 중이었다. 아, 어쩌면 이게 수신 선배의 강점이었나 보다.
가족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느라 혼자만이 남겨졌던 자신의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는 본인에게 주어진 결핍의 상황을 처절하게 기억하지 않았다. 그는 타인과 구별되는 ‘다른 기억법’을 갖고 있는 걸까. 그때로부터 20년이 지나 어마어마한 빚을 짊어지게 된 처지에서, 앞으로의 길이 캄캄하게 어두워 빛이 들어올 틈조차 감지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의 이야기에는 한 가지 소거된 게 있었다. 그에게는 ‘나르시시즘’이 없다. ‘가여운 나, 불행한 나’와 같은 ‘자기 연민’ 말이다. ‘자기 연민’에 깊게 천착할 때 자칫 ‘자기 비하’로 빠질 가능성을 보는 것은 순식간이다.
아마도 하숙집에 함께 맡겨졌던 동생을 엄마가 찾아와 먼저 집에 데려갔을 때에도 혼자 남겨진 수신은 마찬가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어쩌면 구술하기 어려울 수 있을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이렇게 한 톨의 슬픔도, 서러움도 없이 꺼내져 나왔으니 말이다. 미화하지도 과장하지도 않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려운 현실에서 원망이 없이 내 앞의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이 가능한가. 순식간에 전재산을 잃고 빚을 지게 된 그가 원통하고 분한 마음을 세상을 향해 품지 않았다는 것이 나로서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큰 일을 겪고도 영혼이 손상되지 않았다니. 계속해서 그의 스토리를 들으며 나는 꼼꼼하게 관찰해야 했다. 긍정적인 성품은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리고 종교적인 바탕에서 나오는 감사하는 마음도 일부분 납득이 되었다. ‘범사에 감사’라는 표현은 마치 관용구 같아서 더 이상 피부에 생생하게 와 닿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긍정’과 ‘감사’라는 두 가지 사이에서 그가 분명히 갖고 있는 강점을 본다. ‘수용’이다. 던져진 상황을 단단한 마음으로 미련 없이 수용했기에 그는 다시 시작할 힘이 생긴 것 아닐까. 두 발로 섰을 때 자신이 서있는 자리가 어딘지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현실을 부정하다 보면 충돌을 겪는다. 마음을 추스를 수 없어서 회복이 느려진다. 현재 본인에게 펼쳐진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서 다시 일어나야 한다. 이것은 자신감이나 능력의 범주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이다. 수신은 그때 ‘감사하는 마음’을 선택했다.
모두 팔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을 지경까지 전부 비웠다. 수신과 아내에게 고된 시간들이었다. 겨우 숨쉬기 시작할 정도가 되기까지 도대체 몇 년이 걸렸는지 모른다. 그사이 검소한 삶의 방식이 온 가족에게 자연스럽게 몸에 체화되었다. 이야기를 하며 수신 선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랜 시간 동안 그와 그의 가족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헤아려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외식이란 걸 모르고 자랐다. 아내가 그만큼 가족을 위해 헌신해야 했다. 그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한 번도 흥분하지 않았다.
30대에 어마어마한 빚을 떠안고 막막한 상황에 처한 수신의 가족, 하지만 이것이 그가 한국을 떠난 이유는 아니다. 서사의 흐름은 엉뚱한 곳에서 스파크가 튄다.
어느 날 그는 아이가 학교에서 매일 꼴찌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국 학교에서 배운 대로 줄을 서서 조용히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을 뿐인데 아이는 매번 꼴찌가 되었다. 마음이 약한 아이는 친구들과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고 어깨를 들이밀지 못했다.
수신이 커리어 회복을 서서히 시작할 무렵이었다. 대기업에서 그를 스카우트했고, 많은 기회들이 주어졌다. 좋은 보스를 만나 지지와 보호를 받으며 능력을 입증해갔다. 그에게 대형 프로젝트가 주어졌고, 회사는 최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구성원에게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도약 지점에 서서 그는 능력을 충분히 발휘했다. 답답하고 어려웠던 이전 직장과는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
심플한 경영 철학으로 같이 힘을 내는 조직과 사람에 대한 신뢰가 만들어졌다. 집중할 수 있었다. 수신은 이곳에서 서로를 북돋아주고 아껴주는 경험을 한다. 회사에 대한 고마움과 즐거움을 만끽하며 이들의 유연한 사고를 배워갔다. 지위도 올랐고 권한도 생겼다. 국제협상 일을 맡았고, 엔지니어인 그에게 요직인 전략팀의 자리가 주어졌다. 성실하게 빚을 갚아 나가고 있었고, 그동안 많은 일들이 차분하게 안정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이에게 한 차례 소동이 벌어진다. 경제적 사정 때문에 두 아이들에게 음악수업 이외엔 어떤 사교육도 해주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아이가 과학에 큰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학교 선생님은 아이를 학교의 과학영재반에 데려간다.
KAIST에서 주최한 로봇 올림피아드 초등부 서울경기대표로 출전을 했던 날이었다. 아이는 예선 1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학부모들이 심사위원단에게 항의를 하고 2시간 동안 대회장은 혼란에 휩싸인다. 대회에 동석한 학부모들은 아이가 교육기관에서 배운 대로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았다고 결과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알고리즘을 파악해서 자기 나름의 프로그래밍을 완성했기 때문이었다.
이 방식도 맞다고 해명하는 심사위원의 설명도 소용이 없었다. 영재학원에 가본 적이 없는 아이가 공식을 따르지 않은 것은 결과적으로 부모에게 비수가 된다. 그날 대회에서 벌어진 소란을 전해 듣고 수신과 그의 아내는 자식에게 해 줄 말을 찾지 못한다. 한없이 심란했다. 이런 교육문화 속에서 어떻게 아이의 재능을 담을 수 있을까..
곧, 그는 이민을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