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랑 같이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다. 먹으면서 돼지를, 한때 살아있었을 돼지의 모습을 상상했다.
밥을 먹을 때마다 하진 못해도, 난 종종 식사에 앞서 식탁에 오기 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한때는 우리처럼 생명을 가진 존재였을 그들을 생각한다. 내 그릇 속의 밥도 본래는 벼였겠지.' '접시 속의 나물도 여기 오기 전엔 생생하게 살아있었겠지' '오늘 먹은 돼지도 한때는 꿀꿀하고 울었겠지.'
자연 속의 동물들은 자기의 먹이가 된 동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고 토끼에 대해 생각하거나,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고 쥐에 대해 생각하진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동물이 아닌가 보다. 옛날 몽골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양을 잡는 모습이나, 옛날 우리 조상님들이 소를 잡을 때 고사를 지냈던 걸 보면 그런 것 같다.
동물로 태어난 이상, 채식을 하든 육식을 하든, 남의 살을 먹고살아야 함은 우리의 숙명이다. 그것을 동학에서는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는 뜻이다. 나는 이 말을 두고, 밥을 먹을 때도 밥을 하늘처럼 공경하며 먹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채소도 하늘처럼, 돼지고기도 하늘처럼.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실제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사냥한 짐승을 먹기 전에 반드시 먼저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끼니마다는 아니지만 그런 마음으로 밥을 먹는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2017/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