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집어 든 시 모음집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에서 눈에 들어온 시 전문을 필사했다. 릴케의 시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릴케라는 이름을 어디서 처음 들었더라. ⠀ 생각해봤더니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실린 '별 헤는 밤'에 그 이름이 나왔었다. 10대 시절에 만난, 내 인생의 첫 시집. 내 인생의 첫 시인은 윤동주였지. ⠀ 물론 그의 시집에 실린 작품들을 모두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나는 그를 좋아했다. 내가 그 이름을 처음 인지한 날을 기억한다. ⠀ 초등학교 5학년, 내가 12살이었을 때, 담임 선생님은 우리 반 모든 아이들에게 시 한 편을 외우고 집에 가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그때 외운 시가 윤동주 시인의 '서시'였다. ⠀ 그 이후로 '서시'는 내 인생의 첫 시가 되었고, 나는 지금까지 22년 동안 단 한 번도 그 시를 잊어버린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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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릴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윤동주 시인 이야기로 빠져버렸다. 다시 본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릴케를 알게 된 건 앞서 말했듯이 '별 헤는 밤'에 그 이름이 있어서였다. ⠀ 하지만 말 그대로 이름만 알 뿐, 그의 시를 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비록 원문은 아니고 한글이긴 하지만. 일본 유학파 출신 윤동주 시인은 릴케의 시를 아마도 일본어로 접했겠지. ⠀ 마리아 릴케의 시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를 윤동주 시인도 읽었을까. 자신의 시에도 이름을 언급할 정도라면 그는 릴케를 좋아했겠지. 아마도 읽었을 가능성이 크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너무나 젊은 나이였던 윤동주는, 이 시를 어떻게 읽었을까. ⠀ 문득,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도깨비>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 '신은 그저 질문하는 자일뿐, 운명은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답은 그대들이 찾아라'. ⠀ 윤동주는 삶이 가져다준 해답을 찾았을까. 나는 여전히 답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릴케의 말처럼 지금 당장 해답을 구하려 들지 말자. ⠀ 나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지 않나. 인생에는 시간이 지나야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가만히 세월만 보낸다고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닐 테다. ⠀ 때로는 치열하게, 때로는 관조하듯, 삶을 여행하려 한다. 그러다 보면 나만의 해답을 찾을 수 있겠지. 못 찾아도 뭐 어떤가. 어쩌면, 그 과정 자체가 신이 던진 질문(문제)의 진짜 출제 의도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