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치워버렸다.

장애물 제거

by 책라윤

결혼 14년 차. 거실에서 존재감이 가장 컸던 우리의 첫 TV가 수명을 다했다.

살 때도 최신형이 아니었고 이사를 많이 다녔던 것을 생각해 보면 오래 버텼지 싶었다. 아쉽지는 않았다. 툭하면 소파에 죽 치고 앉아 TV에 혼을 빼고 있는 초등학생 아들내미 때문이다. 오히려 잘됐다 싶은 마음이 컸다.

잠시 TV 없는 거실을 꿈꿨다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꿈이라고 빠르게 결론지었다. 내가 결혼한 남자 또한 TV를 매우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pixabay

'알아서 사든지 말든지~'

TV 없는 거실이 좋았던 나는 당연히 새 TV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걸 사야 되나, 저걸 사야 되나 혼잣말을 하던 남편은 그러다 소파에 드러누워 잠들곤 했다. 어차피 결론은 소파에서 잠드는 것인데 TV를 왜 사야 하는 걸까... TV를 보다가 잠드는 게 그렇게 꿀 맛이라나 뭐라나... 욕구는 강하나 게으른 남편 덕분에 한동안 우리 집은 TV 없는 집이 되었다.


장난감도 별로 없고 게임기도 없는 우리 집. TV까지 망가지고 나니 아들은 "심심해~"를 연발했다. "엄마~ 심심해!"가 귀에 딱지로 앉을만큼. 하지만 내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심심하면 책 봐~~~"




사진 출처 : pixabay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정말 책을 보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글밥이 조금만 많아도 한숨을 쉬고, 혼신을 다한 연기력으로 책을 읽어줘도 딴짓을 하는 아이였다. 스스로 책을 꺼내 읽다니 아들의 성장기에 길이 남을 만한 사건이었다.

책 좀 보라고 TV 받침대를 책장으로 바꿨을 때도, TV 보는 시간을 조절했을 때도 책은 늘 TV를 이기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다. TV가 떠나고 나서야 책은 아들의 눈에 들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독서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책, 저 책을 꺼내서 들춰보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희망의 빛이 보였다.


책은 절대 TV를 이길 수 없어.


'역시 자극이 센 장애물이 제거돼야 책을 볼 수 있구나!'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가슴 깊이 새겼다. 나는 급기야 'TV 없는 거실'을 선포했다. 예상대로 남편은 강하게 저항했다. 남편은 영화 관람, 스포츠 관람 등 아들에게 TV가 필요한 나름의 이유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간절했다. 하지만 '아들의 독서 교육'을 앞세운 내게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남편은 대형 TV를 샀지만 TV는 얼마 되지 않아 좁은 아들 방으로 쫓겨났다. 아들이 방방 뛰어서 다 터진 가죽 소파 또한 TV와 함께 아들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은 내가 꿈꾸던 대로 책을 볼 수 있는 넓은 테이블과 책장, 아들의 책상이 함께 있는 도서관스러운 공간이 되었다. 결국 TV를 샀지만 이 정도면 꽤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자평했다.




우울하게도 달라진 건 없었다.

아빠와 아들은 늘 그렇듯이 소파에 파묻혀 TV를 봤고 나 홀로 넓은 거실 테이블에서 책을 읽었다. 바뀐 거라면 가끔 아들이 거실로 나와 "엄마, 이번엔 무슨 책 읽어?"라고 관심 한 스푼을 주고는 방으로 사라지는 것 정도였다. 아들에게 같이 책을 읽자고 말하면 여전히 한숨을 쉬고 하품을 했다.


'TV를 사는 게 아니었어.'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 TV 소리가 커지면 한 번씩 소리 줄이라고 화풀이겸 잔소리를 하고는 다시 나만의 독서에 빠져들었다.


사진 출처 : pixabay


TV를 없앨 수 없다면 제대로 관리해 드리지!


TV 시청 시간을 제한하다가 TV로는 영화와 스포츠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최종 조율을 했다. TV와 유튜브를 계속 보면 뇌에 좋지 않다고 반복해서 설명하며 아들의 결단을 유도했다. TV 보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다행인지 남편은 평일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고 겁이 많은 아들은 홀로 영화를 보다가도 무서워서 자꾸 거실에 나왔다. 그렇게 TV 보는 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거실을 기웃기웃하다가 책을 꺼내서 뒤적이기도 하던 아들은 가끔씩 책을 보기 시작했다. 거실에는 책 밖에 없으니까. 안 보는 척, 읽고 있는 책에 눈길을 주면서 아들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던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오케이! 희미해지던 희망이 조금씩 또렷해졌다. 아들과 함께 독서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어느덧 초등학생!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어! 그다음 전략이 필요해!

나는 교보문고 앱을 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조사한 <2021 국민 독서 실태 조사>를 보면 학생의 독서 장애 요인은 다음과 같다.

-스마트폰, 텔레비전, 인터넷, 게임 등을 이용해서(23.7%)

-교과 공부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21.2%)

-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19.1%)

-책 읽기가 싫어서(16.2%)

-읽을 만한 책이 없어서(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