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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쵸 Jan 05. 2023

우당탕탕 대환장 유기견 입양기 4

마귀견 둘째 입양기

  <포인핸드 죽순이의 최후>

  나쵸를 데려오고 나서 나는 포인핸드를 계속 들락거렸다. 세상에 불쌍한 개들이 너무 많고 사연 없는 개가 없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당시 나는 백수였고, 나쵸도 치료 중이었기에 둘째를 데려올 상황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 애들을 입양해주기를 바랐지만 유기된 품종견도 꺼리는 마당에 똥개들은 말해 뭐 하겠는가. 대부분이 어리고 특출 나게 예쁘지 않은 이상 '안락사'나 '자연사'로 종결됐다. 키우지도 못하는 거 봐서 뭐 하나 싶어 포인핸드를 지웠다가 다시 깔기를 반복하던 중 나쵸와 똑 닮은 새까만 개를 발견했다.

  계속 그 개 생각이 났다. 세나개 마니아로서 많은 문제견들과 다견가정의 고충을 봤지만 그때는 전혀 생각이 안었다. 나쵸랑 닮았으니까 성격도 나쵸처럼 순할 거라는 생각만 들었다. 이성과 망상이 내적갈등을 벌였고, 늘 그렇듯 이성은 패배했다. 구경만 하러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보호소에 전화를 걸었다. 5시까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멀고 교통도 불편했지만 일단 집을 나섰다. 광역버스와 전철, 그리고 택시를 타고 허허벌판에 내렸다. 이미 시간은 5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대서 혼이 멀리 달아났다. 얼핏 새까만 마귀를 본 것 같았지만 '설마, 쟤는 아닐 거야...'라며 스스로를 속였다. 보호소에는 소장과 직원이 있었는데 직원이 속사포처럼 랩을 했다. 얘가 비쩍 마르긴 했는데 밥을 거의 안 먹어서 그런 거다, 심장사상충 검사를 했는데 음성이 나왔지만 혹시 몰라 한 번 더 했고 최종적으로 음성을 확인했다, 원래 얘를 신고자가 입양한다고 해서 입양 문의도 다 거절했는데 신고자가 변심을 하는 바람에 입양자도 없는 상태로 공고 기간이 다 됐다, 목숨이 달려있는데 이렇게 무책임하게 변심을 해버리면 어쩌자는 건지, 소장님이 업무차 어디를 가야 하는데 얘 누가 데려가는지 보려고 안 가고 한 시간을 기다렸다...

  솔직히 이동장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입양할 생각은 없었다. 느낌이 오면 데려올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왔지만, 마귀처럼 짖어대는 까만 개를 보고 입양 생각은 이미 사라졌다. 사진에서는 작고 불쌍해 보이던 개가 실제로는 너무 무서워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보러 온 건데요라고 하면 쓰레기 직행 열차에 오를 게 분명해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심지어 개가 많이 짖네요라고 했다가 '짖으면 안 돼요?' 하며 회초리질을 했기에 더더욱 할 말이 없었다. 소장은 일을 하러 가야 하고 직원은 퇴근을 해야 한다며 서둘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개와 함께 흙먼지가 뽀얗게 날리는 허허벌판에 서있었다. 택시를 기다리며 이동장 안을 봤는데 흥분했는지 성기가 튀어나와 있었다. 너무 징그럽고 무서워서 더 볼 수가 없었다.

  내게 있어 개란 나쵸였다. 짖지 않고 얌전하고, 간식을 좋아하지만 뺏는다고 이를 드러내지는 않는 순한 개. 세상에는 행동 교정이 필요한 개들이 많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초면인 까만 개 앞에 산산이 깨졌다. 개는 오는 내내 택시에서 짖는 걸로 모자라 이동장에 오줌을 잔뜩 싸놨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무 데나 배설을 했다. 밤에 잘 자나 쳐다보니 이를 드러냈고, 간식을 먹을 때 근처에 가기만 해도 죽일 듯 달려들었다. 페퍼라고 이름을 지어주기는 했지만 얘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초보 견주인 나, 입양 초기 페퍼, 나쵸를 치료 중이던 상황까지. 총체적 난국이었다. 당시 골머리를 앓았던 것들과 해결법을 소개해보겠다.

  1. 마귀견

  페퍼는 조금만 신경이 거슬리면 입질을 했다. 특히 밤에 더 공격성이 심해졌는데 쳐다만 봐도 어둠 속에서 으르렁 소리가 들렸다. 생닭을 먹으라고 줬는데 누가 훔쳐갈까 꿀꺽 삼키고서 몇 시간을 고생한 적도 있었다. (결국 몇 시간 뒤에 통뼈를 토했다.) 페퍼가 화내는 대부분의 순간들은 개연성이 없어서 왜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마귀가 들렸다는 생각만 들었다. 고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배를 드러낸 자세로 다리 사이에 끼워 서열을 확인시켜 주기, 입질하면 똑같이 물기 등... 모두 허사였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약이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유대가 쌓일수록 쟤는 대체 왜 저러나 싶던 행동들이 이해가 갔다. 미운 짓을 해도 귀엽다며 웃어넘길 수 있게 됐다.

  한 번은 몇 시간 집을 비웠다가 들어가니 페퍼가 드러누워 오줌을 싼 적 있다. 자기 몸 위로 후드득 떨어지는 오줌을 맞으며 페퍼는 계속 브레이크 댄스를 췄었다. 산책을 데리고 가는데 너무 신이 나서 유리문에 그대로 머리를 박은 적도 있다. 이런 바보 같은 면을 발견할 때마다 천성이 나쁜 개는 아니구나 싶었다. 페퍼를 처음 봤을 때 개집에 묶어둘 법한 두꺼운 목줄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 짧은 줄에 매여 관심도 못 받고 지내왔던 건 아닐까? 제대로 소통하는 법을 몰라서 공격적이었던 건 아닐까? 확실한 건 페퍼도 조금씩 양보하고 맞춰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하루에도 몇 번씩 마귀견이 되지만 물지는 않는다. 무는 시늉만 하거나, 아주 약하게 문다. 이 닦기나 스케일링 같은 의무들 앞에서는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 자신의 의무를 다 끝내고 나서야 온갖 성질을 낸다. 그간 페퍼의 성질머리가 순화됐듯이 나의 순발력도 발전했기에 물리기 전에 잘 피하고 있다.

많이 순해진 페퍼

  2. 나쵸 VS페퍼

  다견가정의 문제 중 가장 흔한 것이 둘 사이의 관계다. 하지만 나쵸와 페퍼는 처음부터 데면데면했다. 페퍼가 관심을 보이면 나쵸가 이를 드러내긴 했지만 크게 싸운 적은 드물었다. 나중에는 간식 먹을 때 건드리지 않는 등 싸움이 날 여지를 알아서 피했다. 그래서 비록 친하지는 않더라도 서로 간의 암묵적인 규칙을 지내며 적당히 지내게 됐다.

  진짜 문제는 나쵸가 중성화를 안 했기에 임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페퍼를 데려왔을 때 나쵸는 생리 중이었다. 개들은 생리 기간에 교미를 한다.) 플라스틱 가림막으로 둘을 분리해놨지만 너무 허접해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페퍼가 울타리를 부시고 나왔을 때, 빨리 중성화를 시켜야겠다는 조급함이 들었다. 하지만 페퍼는 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말랐기에 바로 수술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나쵸가 페퍼를 싫어했기에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페퍼는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어서 금방 살이 붙었다. 얼마지 않아 페퍼는 중성화 수술을 했고, 그제야 나는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3. 실외배변견, 실내배변견으로 고치기

  개들끼리는 서로 모방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페퍼가 실외배변을 습득했다. 처음에는 벽지고 제습기고 상관 않고 영역 표시를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 용변을 보지 않았다. 덕분에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태풍이 불어도 하루에 3번씩 산책을 가야 했다. 출근 전, 퇴근 후, 자기 전. 약속이 있는 날에는 집에 들러 간단하게라도 산책을 해야 했고, 약속 장소에 있으면서도 애들이 화장실 못 간지 얼마나 지났나 자꾸만 계산을 하게 됐다. 여행이라도 갈 때면 친구에게 알바비를 주고 산책을 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하루종일 집에 드러누워 우울에 젖어있던 내가 부지런한 인간이 됐다. 분명 전보다 내 삶은 건강해졌지만 정신적 피로도가 너무 컸다. 나는 개들이 실내배변을 하게 만들기로 결심했다.

  첫 번째 방법은 패드 위에 간식을 올려 패드와 친해지게 한 뒤, 배변을 하면 보상을 주는 것이다. 애들이 간식만 주워 먹고 오줌은 싸지 않아서 실패했다.

  두 번째 방법은 배변할 때까지 산책을 절대 가지 않는 것이다. 나의 의지가 약해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천연 잔디 배변판을 구매했다. 크기가 클수록 가격도 비싸졌는데, 무려 4만 원대 제품을 구매했다. 한 달 정도 사용하고 버려야 해서 비싼 감이 있었지만 실내배변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다행히 애들은 잔디밭에 거부감 없이 올라갔다. 엎드려 쉬고, 땅을 파고, 풀을 뜯어먹었다. 실내 배변만 빼고 다 했다.

  현재 나는 5년째 하루 3번 산책을 가는 노비 인생을 살고 있다.

  4. 빈 집에서 개들은 무얼 하나?

  애들을 데려온 지 몇 달 뒤, 나는 좇소라는 이름의 지옥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게다가 퇴근 후에는 개들이 이불을 다 뜯어놔 솜이 굴러다니는 꼴을 보기 일쑤였다. 결국 애들을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다.

  개라고는 서로 밖에 모르던 둘은 다른 개들에게 경계 태세를 취했다. 페퍼는 요란스럽게 짖어댔고, 나쵸는 누가 냄새만 맡아도 이를 드러냈다. 하지만 유치원에서 해주는 놀이와 훈련, 손님들에게 예쁨을 받고, 친구들을 사귀면서 애들은 유치원을 좋아하게 됐다. 토끼처럼 깡충대며 유치원 계단을 오르는 뒷모습을 본 뒤로는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이제 하루 절반을 회사 놈들과 부대끼는 내 걱정만 하면 됐다.)

  유치원에서 나쵸는 인기가 많았다. 항상 붙어 다니는 단짝 친구도 여러 명 생겼다. 페퍼는 별로 인기가 없었는데 본인 성격이 어느 정도 일조했다고 본다. (여기저기 참견하고, 반장이라도 된 양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한 개를 혼냈기 때문에...) 그래도 눈치가 없어서 본인이 왕따인 줄도 몰랐으니 다행이었다.

  퇴근을 하면 개들을 한 마리씩 찾아와 산책을 했다. 한 번은 나쵸 먼저 데려가 산책을 하고, 다시 페퍼를 데리러 갔는데 페퍼가 공을 물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나쵸만 데리고 사라져서 계속 나를 찾았다고 했다. 선생님이 페퍼에게 공을 던져주니 페퍼는 공을 물고 한참을 두리번 댔다고 했다. 공놀이는 하고 싶고, 나도 찾아야 하니까 말이다.

  지금은 이용하지 않지만 개들에게도 내게도 유치원은 꽤나 유용한 서비스였다. 마치 태권도 학원처럼 말이다. 태권도 학원에서 효와 예절을 배우는 어린이처럼, 당시 우리 개들도 세미 예절견이 됐었다. 무엇보다 개들이 빈 집에서 마냥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었다.


  <피의 햄버거 가문 재쵸 3세의 최후>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함께 캠핑도 가고, 여행도 갔다. 그리고 나쵸는 중성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심장 사상충이 완치가 된 후에 나쵸가 자궁 축농증에 걸리면 어쩌나, 불안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개복을 하니 자궁에 약간 이상이 있었기에 수술하기 잘 한 셈이었다. 개인적으로 개를 인형처럼 키우는 걸 좋아하지 않아 미용에 투자하는 대신 건강 관리만 열심히 해주고 있다. 여름에만 덥지 말라고 미용도 해주고, 음식도 셋이 나눠 먹는다. 어느 순간부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함께하는 것만으로 하루하루가 충만할 수 있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됐으니까. 그간 곡절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될 정도로 잘 해결되었다. 앞으로도 우리 셋 앞에 좋은 일만 있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 잘 헤쳐갈 수 있으리라.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시간이 만든 규칙이 있으니까, 그 시간 위에서 언제나 최고의 케미를 자랑하니까.



  나쵸와 페퍼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는 밀리의 서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많관부!⤵

  봐줘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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