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나타났다

by 재쵸

형형하게 빛나는 안광에 발이 묶였다. 떨림이 아스팔트를 타고 전해질 것 같았다. 여느 일요일 아침처럼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는데 호랑이를 보게 되다니. 그것도 평범한 주택가 골목에서. 호랑이는 고양이 자세를 하고 있었지만 위압감은 고양이와 천지차이였다. 강렬한 시선에 사로잡혀 어느 집 창문 열리는 소리에 무게 중심을 잃었다. 팔을 크게 휘둘렀지만 엉덩방아를 찧었다. 들고 있던 쓰레기봉투는 자로 잰 것처럼 정확히 호랑이와 나의 중간 지점에 떨어졌다. 배가 불러 나른한 상태라면 무시할 테고, 그렇지 않다면 신경이 거슬리기 충분한 거리였다. 쉽사리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았다. 진짜라기에는 이질적이고, 가짜라기에는 생생한 저것이 진짜일 일말의 가능성 때문에.

동물원에서 코끼리가 탈출했다는 뉴스를 본 적 있다. 달력이 벽에 걸려 있음에도 휴대폰을 들어 날짜를 확인했다. 지난 만우절과 다가올 만우절의 중간 달이어서 앞으로도 뒤로도 달력을 한참 넘겨야 했다. 비장한 목소리의 기자는 코끼리가 도심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삼겹살 가게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잊고 지내던 기자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재생됐다.

'오늘 정오, 동물원을 탈출한 호랑이가 인근 주택가 골목에서 시민 A씨를 공격했습니다. A씨는 쓰레기를 버리러 골목에 나왔다 이와 같은 참변을 당한 것으로 보이며...'

굳은 손을 움직이기 위해 애썼다. 새끼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이자 가위에서 풀리듯 팔이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왜 이리 떨리고 난리람. 금단 증상이라도 온 듯 떨리는 한쪽 팔을 다른 팔로 잡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오른쪽 호주머니에는 언제 갔던 건지 모를 카페의 냅킨이 들어 있었다. 이제 두 배로 떨리기 시작한 손을 겨우 왼쪽 주머니로 가져갔다. 아무 것도 없었다.

#호기롭게_했던_결심 #휴대폰은_서랍에 #함께일_때_몰랐던_소중함

왜 하필 어젯밤 SNS 중독을 고치기로 결심했을까?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다 삶이 수몰될까 내린 결정이었다. 그런데 그 결심 때문에 지금 앞은 호랑이요, 뒤는 삼도천이다. 휴대폰 속 세상에서 나와 진짜 내 삶을 살기로 한 첫날 호랑이 밥이 되는 게 내 운명이라니.



⬇'석류가 쏟아지는 방'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뒷 이야기는 밀리의 서재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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