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이유
며칠 전, 친구 놈이 지방으로 배낭 하나 메고 떠났다. 그가 구상하고 있는 사업을 실행하기 위해 직접 몸으로 경험해봐야 한다고 느꼈는지, 그는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최근, 이 친구와 나의 교류는 점점 더 무르익기 시작했다. 서로 입장이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변화에 맞서 대응한다.
며칠 전, 친구와 카톡을 주고받았다. 당차게 서울을 떠나 경상도 고성으로 떠난 그는, 나에게 ‘곧 서울로 돌아갈지도 몰라.’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그의 막연한 두려움과 허탈함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불확신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원래 새로운 길을 찾는 건 어려워. 이걸 극복하고 이겨내야 네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지. 이겨내는 게 또 너 아니겠어?’라고 메시지를 남긴다. 사실, 내가 그로부터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그가 걱정되었다.
그리고 내가 제주도 여행에서 느꼈던 것처럼 그에게도 ‘쉼’을 권유했다. 무언가를 이루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바쁘게 나아가면 가끔 본질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물 웅덩이에 정신없이 발장구를 치면, 흙탕물이 되어 속이 보이지 않는다.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려고 손을 넣고 휘적거리면 흙탕물은 더 진해지기 때문에 시간을 흘려보내며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금세 물은 투명해지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제주 여행에서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고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닌, 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내며 느끼는 것들이 많았기에 경험한 사실을 토대로 그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하루를 그냥 날려 보내라고 권유했다. 그러다 보면, 지금 그가 찾고 있는 본질이 전보다 선명한 모양으로 보일지도 모르니.
사실, 연락을 주고받기 바로 전, 브런치로부터 작가 선정이 되었다는 안내를 받았다.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 그 친구의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부산으로 곧 떠날 것이라고 한다. 나도 그가 가는 부산으로 가기로 한다. 그에게는 현재 함께할 사람이 필요해 보였고, 비슷한 움직임으로 나아가고 있는 내가 지금 그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함께하면, 어떤 어려움도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거 아니겠나?
지금 이 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청춘은 짧아 수만 가지 색으로 환하게 빛난다고 한다. 그래서 종종 어른들은 자신의 청춘의 빛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온전히 그 빛을 맞이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한다. 퇴사를 하고, 새로운 움직임을 준비하는 이 순간이야 말로 나에게 주어진 한정적인 청춘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 빛을 온전히 맞아 보기로 한다.
어릴 적엔 친구와 만나는 게 참 쉬웠는데, 막상 어른이 되어보니 그렇지 않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바쁜 현대 사회. 개인의 휴식과 사랑하는 이와 보내는 시간. 가족과 보내는 시간. 핑계가 가득하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앞으로도 핑계는 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더 많은 이유가 생기기 전에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봄을 맞이하는 육지, 부산에서.
2022년 2월 10일 아침 6시 30분, 무궁화호를 타고 부산으로 떠난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하는 것은 또 처음이다. 이 글은 지금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쓰이고 있다.
"지금 당신의 청춘은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