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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겐 집이 필요하다.

우리는 돌아갈 곳이 필요하다.

by 이영균

제주에서 정처 없는 여행. 아주 사소한 교통편이나 숙소조차 정해두지 않았다. 그저 순간에 나를 맡긴다. 이 여행은 꽤나 낭만적이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든 내 집이 될 수 있으니. 걸어서 천천히, 버스를 타고 주위를 둘러보며 주변을 자세히 돌아본다. 자동차를 타고 움직였다면, 분명 지나쳤을 아름다운 광경을 마주하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돋는다. '걷기'와 '달리기'의 공통점은 대상을 가장 자세히 보고, 음미하며 지나칠 수 있다는 사실이며, 다름은 오로지 속도뿐이다. 다만,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놓치는 것이 많다.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달리다 보면 못 보고 놓치는 순간처럼.


커다란 캐리어와 노트북이 든 배낭을 메고 제주도 곳곳을 자유로이 누빈다.

캐리어 그리고 노트북이 든 가방

.. 뚜벅뚜벅.., 특별한 계획 없는 뚜벅이 여행 10일 차, 슬슬 몸이 무겁고 피곤함이 몰려온다. 무거운 짐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던 탓이었을까? 몸은 민망하도록 솔직하게 반응한다.


아무래도 짐이 한가득 있다 보니, 어디론가 이동하기 전에 전략을 세워야 만한다. 하루 이상 머무를 곳이라면 짐을 그대로 두고 움직여도 괜찮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새로 숙소를 정하고, 짐을 미리 그곳에 맡겨두어야 한다. 숙소는 1박을 예약하고 다음 날도 머무를 수 있는지 허락을 구한다. 머무르기에 불편한 숙소라면, 단칼에 뛰쳐나와야 하니. 아쉽게도 마음에 쏙 들어온 숙소는 매번 연박이 어렵다고 한다. 오히려 연박이 안되니, 공간을 온전히 즐기려 노력해본다. 노력이 더해진 시간은 소중하게만 느껴진다.



계속되는 무계획과 변수의 발생으로 스트레스가 축적된다.


“.. 육지로 돌아갈까?”…, “… 집에 보일러가 동파되었을까? …음, 그러면 육지로 돌아가야 할까?… 고장 나면 안되잖아, 확인은 해야지..” 하고, 괜스레 핑계를 댄다.


매서운 바람에 맞서 싸워 돌담 쌓인 제주의 한적한 시골 동네를 걷다가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서울과 다르게 대부분이 전원주택이다. 높은 빌딩으로 멀리 볼 수 없는 게 아닌, 집집 사이 그리고 저 멀리 훤히 다 보인다. 하늘이 원래 이렇게 새 파란색이었던가? 집집마다 널찍한 천장으로 하늘을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집이 필요하다. 집을 사야겠다.

스스로 집은 꼭 필요하다고 느낀 적이 있던가?


왜 필요한지 이유는 모른 채, 세상의 움직임에 따라가기 위해 나도 집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부동산 투자가 부를 불러일으키기에 당연히 집은 필요하다고 믿었다. 스스로가 느끼고 깨달아서가 아닌,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고 느꼈던 걸까?


솔직한 마음으로 이전까지는 집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집이란 단순히 생활하는 공간이고, 언제든지 옮겨도 괜찮은 공간이었으니까. 굳이 무거운 짐을 등에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 여유가 된다면, 그저 ‘투자’ 목적으로 소유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만 갖고 있었을 뿐. ‘여유’가 된다면.


아무래도 집을 사야 할 이유를 찾았다.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고, 마음 놓을 수 있는 그런 집. 엄마 집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힘으로 일군 나의 집. 나의 취향이 묻어 있는 내 집. 어디든지 떠날 수 있는 '여행자의 삶'도 제법 멋지지만, 여행이 계속되기 위해선 다음을 기약하며 잠시 쉬어갈 그리고 평범한 나날을 보낼 수 있는 집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동안 단 한 번도 스스로 집을 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아무래도 나는 집을 사야만 한다.


마치 웅녀가 인간으로 변신하기 위해 마늘과 쑥을 100일 동안 먹은 '동굴'과 같은 나만의 장소가 필요하다. 단순한 안정감을 위해서가 아닌, 다음을 도모하고 기약하기 위한 변화를 준비하기 위한 그런 공간. 안정적인 삶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안정적인 삶이 좋지만, 인간은 변화하는 동물이다. 우리는 변화를 그리고 새로운 것을 사랑한다. 스스로 만족할만한 변화를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를 준비해할 집이 필요하다. 때로는, '잠만 자는 집, 밥만 먹는 집'일지라도 집은 우리에게 그 자체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여행은 나를 돌아보게 만들어주고, 움츠렸던 생각을 확장시킨다.


"당신은 집이 필요하다고 느끼는가? 만약 그렇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단순히 투자와 부를 위한 목적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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