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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속도가 왜 늘 그 모양이에요?

우리는 늘 이런 고충을 겪었고, 앞으로도 겪을 것이다.

by 이영균

"균삼씨, 그렇게 달려서 따라올 수 있겠어요?"


가끔 우스갯소리로 듣는 말이다.


유난히 추웠던 19년도 11월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어느덧, 지금까지 꾸준히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혼자 외로이 달렸던 지난날과 다르게 지금 내 곁엔 여러 명의 러너가 있다. 그들 모두 저마다 그토록 재미없어 보이고,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달리기를 하게 된 이유가 있다. 비록, 그들 모두의 이유는 모르지만, 거의 매일 같이 달리는 이들을 볼 때면, 존경의 마음이 우러러 나옴과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이 동시에 몰려온다. "나도 달리기 해야 하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달리고 있는데..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거지?"라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자책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나의 달리기는 매일매일 달리는 것이 아닌데, 매일매일을 달리는 그들을 보며 그리고 나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이들을 보며,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나 스스로를 질책한다. 스스로 독약을 먹기를 택한 것 마냥,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나를 미워했다.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닌, 상대방을 보고 나를 본다. 그리고 그의 모습과 나의 모습을 비교한다. 그렇게 좌절 벽 뒤에 숨어 그림자가 되기를 택한다. 빛이 들어와 스스로를 환하게 바라보는 일을 망설인다.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승리할 수 있다던데, 나를 아는 일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아무래도 부족하고, 개선해야 할 점이 눈에 훤히 보이기 때문이겠지. 결국,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일이지만, 못 본 척하면 속이 편하니까.


시간은 약이라는 말처럼, 천천히 나를 하나씩 돌아본다. 과거부터 현재를 그리고 앞으로까지 하나하나 천천히 돌아본다. 나는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내 곁엔 누가 있고, 내가 지켜야 할 이들과 신념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하나하나 되짚어 본다.


천천히 아주 세밀히 나를 바라보니, 전에는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게 보였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는 심리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정신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무래도 군대 경험이 크지 않나 싶다. 몸이 힘든 곳은 부대원끼리 사이가 좋고, 몸이 비교적 덜 힘든 곳에는 부조리가 많은 군대처럼.


무작정 밖을 달렸다. 몸을 가장 빠르고, 힘들게 만들 수 있는 운동은 달리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몸이 힘들 정도로 매일같이 달리다 보니, 생각이 멈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장 먼저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생각은 정리되고, 중요한 것들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달리기를 하며 닥친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달리기는 내게 힐링이자, 생각하는 시간 그리고 즐거움을 얻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


나의 달리기는 '끝까지 달리는 것'이다. 아무리 먼 거리라도 마음먹었다면, 그 속도가 느리던 빠르던,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리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달리기를 하길 원한다. "이만하면 됐다 하는 그런 마음, 빨리 후딱 하고 가서 쉬자, 저 사람보다 빠르게 도착하자" 이런 마음과 먼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자신의 속도를 알고, 그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그리고 오래 달리는 것, 그것이 나의 달리기다.


만약, 누군가가 빠르게 달리지 못해서 그렇게 하지 못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당신이 맞습니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빠르게 달릴 수 있지만, 빠르게 달리고 싶지 않다. 물론, 당신처럼 빠르게 달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 엔진도 꽤 쓸만하다.



지금까지 나는 늘 빠르게 달려왔다. 그리고 달리는 내내 옆을 바라보지 않았다. 고속도로 위에 총알처럼 지나가는 한 대의 페라리처럼 운전대를 꽉 잡고, 앞만 보며 달렸다. 그러다 보니, 늘 과속을 빈번하게 하곤 했다. 늘 앞선 마음에 따라가지 못하는 몸으로 넘어지는 일을 수없이 겪었다. 또 넘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중독적으로 앞만 보며 달렸다.


그렇다고, 엄청 빠르게 도착한 것도 아닌데, 겨우 10분, 20분 정도 차이겠지.


그렇게 달리는 내내 놓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이 사실을 하루라도 빠르게 알았다는 게 참 감사하다. 하루라도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말하고, 경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목적지에 조금 늦게 도착할지언정 정속 주행하기로 했다. 무작정 천천히 오래오래 서행하는 것이 아닌, 나의 속도를 알고 그대로 멀리 달리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빠르지 않더라도 하나라도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으로 향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세상 일의 대부분은 교환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달리면 분명, 목적지에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 보다 많은 휴식과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빠르게 달린만큼 관절과 근육에 무리가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모든 사람이 스스로에게 무리가지 않는 적합한 자세를 잘 알고, 그 자세로 달리지 않는다. 분명, 빠르게 달려서 얻게 되는 기쁨만큼, 빠르게 잃게 되는 것도 있겠지. 그것이 건강이라면, 선택할 이유가 없다.


정속 주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속으로 달린다면, "관리가 잘 된 자동차처럼 오래도록 빛나게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간 그 자동차는 뻔한 디자인, 남들이 쳐다보지 않는 허름한 자동차가 될지도 모르지만, 꾸준한 관리가 이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 자동차가 다시 재조명되고, 오마주 되어 새로운 디자인의 자동차가 탄생하는 것처럼 그 어떤 것보다 힙한 것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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