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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티 5시간전

라따나끼리, 버스로 9시간이라고요?

프놈펜에서 라따나끼리 가는 길.

9시간의 버스행은 떠나기 전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다. 인천공항에서 프놈펜까지는 5시간 30분. 프놈펜에서 라따나끼리까지는 약 9시간이 소요된다. 비포장도로를 14시간 달려야 하는 예전보단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그 사이 도로가 포장되었고, 길이 좋아져 이동 시간도 조금은 단축되었다. 그렇다고 9시간 버스행이 수월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14시간의 비포장도로를 달려본 적이 없으니 나에겐 맷집이 없다. 모든 게 처음이고, 나의 체력이 받쳐줄지는 직접 부딪혀봐야 아는 터.


#쌀국수

다행히도 어젯밤 비행 피로로 인해 버스에서 바로 곯아떨어졌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나니 벌써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9시간에서 서너 시간을 빼본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삼분의 일을 잘 달려왔구나. 점심으로 쌀국수를 한 사발 먹으니 이제 드디어 캄보디아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습한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고, 손으론 분주하게 파리를 내쫓으며 진한 고수향의 국물을 후루룩 마셔본다. 마무리는 진한 다방커피 맛이 나는 블랙커피. 식당 앞 탁한 메콩강의 색깔과 어쩜 똑같다.


#메콩강, 탁하지만 넉넉한 품

8년 전 라오스에서 처음 마주한 메콩강을 잊지 못한다. 흙탕물의 메콩강에 처음 마음을 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라오스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다시 찾은 곳은 메콩강가였다. 거칠고 투박하나, 나를 그대로 안아주는 듯한 거대한 품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다시 마주한 메콩강은 여전히 탁했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떼 아래, 탁하디 탁한 메콩강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무심한 듯 유유하게 흐르는 메콩이라는 강의 품은 여전히 넉넉했다. 정말 캄보디아에 와 있구나. 실감이 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라따나끼리는 미지의 세계였다.


#가장 먼저 적응해야 할 것, 화장실

우리나라의 휴게소와 같은 곳은 대부분 주유소였다. 주유소 옆에 조그마한 화장실들이 있기 마련이다. 버스가 주유소 옆에서 잠깐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런데 웬 걸,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단다. 다시 버스에 발을 돌렸는데, 이내 밖으로 나온다. 긴 이동시간을 버티려면 할 수 있을 때 바깥바람을 쐬야지. 그런데 갑자기 저 멀리서 이리로 오라는 손짓을 다. 따라가 보니 무성한 풀들 사이로 화장실 한 칸이 마련되어 있다. 들어가기가 망설여지는 외관이었지만 화장실이 보이면 무조건 가라는 선교사님의 당부 말씀이 떠올라 용기 내어 문을 열었다. 몸을 쭈그려야 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수동으로 물을 내려야 하는 시스템에 적응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위생 따위는 빨리 포기해야 적응이 수월하다. 그런데 웬걸 화장실을 나오고 보니, 어느 가정집의 화장실이었다. 집주인 아이들이 여러 명의 외국인 손님들을 보고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손을 흔든다. 영문은 모르겠다. 왜 이 집의 화장실을 사용했는지. 사용해도 괜찮다고 이야기가 된 건지. 집주인에게 사용료를 주긴 했을지. 미스터리로 남겨둔 채, 일단 내 볼일을 봤으니 다시 긴 여정을 위해 버스로 올라타본다.


#지루한 시간이 필요했어요.

다시 한번 긴 이동이 이어졌지만, 끝나지 않는 길 위의 지루한 시간에 마음껏 나를 던져보았다. 직선이 아닌 원형으로 시간이 흐르는 듯한 느낌이랄까. 돌고 도는 쳇바퀴 속 시간 속에서 굳이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고 이어폰에선 똑같은 노래가 반복되었다. 끊임없는 걱정과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난 지가 참 오랜만이다. 생각이라는 것을 걷어내고 창 밖의 나무, 흙, 오두막집 등 풍경만 오롯이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런 지루한 시간이 나에게 필요했을지 모른다. 지루함에서 자유함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길고도 긴 여정, 라따나끼리 가는 길.


#라따나끼리

9시간을 달려 드디어 라따나끼리에 도착했다. 푸릇한 자연과 함께 도로 위를 달리다, 삶의 모습이 하나 둘 뚜렷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허름한 집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흙먼지를 뒤덮으며 서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시작한다. 도착하니 해가 저무는 시각이었다. 내일은 라따나끼리가 좀 더 또렷하게 보이겠지. 선교사님이 세우신 기숙사에 사는 아이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숙소에 돌아가는 길 우리를 향해 축복의 노래를 불러주는데 마음이 뭉클해졌다. 내가 사랑을 주려 왔는데 벌써 사랑을 한 스푼 받았다. 내일은 내가 좀 더 사랑을 줘봐야지. 마음속 소심한 다짐을 하며 긴 하루를 털어내었다.

라따나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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