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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티 Aug 13. 2024

오토바이 타고 캄보디아 밀림 숲을 지나며

캄보디아 라따나끼리 소수종족마을 가정 방문기

오늘은 다섯 가정을 방문하는 날이다. 우리를 위해 오토바이가 여러 대 준비되어 있었다. 운전자는 캄보디아 선생님들. 오토바이를 탄 다는 것은 먼 길을 간다는 의미다. 만반의 준비를 했다.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모자를 눌러썼다.

매점이자 오토바이 주유소

평소 오토바이를 탈 일이 없어 잔뜩 긴장을 했다. 운전자 선생님을 꽉 붙잡고 황톳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뿌연 흙먼지를 한참을 뒤짚어쓰다 보니 손 끝의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초록의 풀들과 파란 하늘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 달려보는 이 길과 이 길의 끝이 궁금해졌다. 오늘은 누구를 만나게 해 주실까.

끝없이 쭉 펼쳐진 황톳길을 달리다

황톳길을 지나 이제 숲 속길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라따나끼리 소수종족 사람들은 대부분 밀림 속에 거주하며 화전을 일구며 살아간다. 최근 들어 문명이 이곳에도 많이 들어섰지만, 이전엔 문명과 단절된 채 밀림 속에서 자신들만의 고유의 전통을 고수하며 살아갔다. 숲 속에 진입했을 땐 머리 위로 나뭇가지들이 걸치기 시작했다. 선교사님께서 당황하지 말고 나뭇가지들을 알아서 손으로 해치우며 지나가라 당부하셨었다. 수없이 뻗은 나뭇가지를 해치우고, 끝없는 숲 속 길을 달리고 달려도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깊숙한 곳에 마을이 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눈으로 보기 전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40분을 달렸을까, 저 멀리 오두막과 같은 첫 번째 가정집이 나타났다.

이 좁은 밀림 속을 지나면 또 하나의 소수종족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부부와 두 아들이 살고 있는 가정집이었다. 부부는 우리를 환히 반겨주었다. 딸도 한 명이 있는데, 딸은 학업을 위해 선교사님 부부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소수종족 전통가옥은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지며, 땅에서 일정 간격을 띄운 오두막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아래층에는 보통 부엌이 있고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잠을 자고 생활을 하는 공간이 나온다. 우리는 다 같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 두런두런 둘러앉았다. 사방이 뚫려있지만 집안 구석구석엔 생활 용품이 구비되어 있고 한편엔 액자도 걸려있다. 이들의 삶이 좀 더 가깝게 다가왔다.

라따나끼리 산악 소수종족 마을의 전통 가옥형태


부부의 기도 제목을 듣고 함께 기도를 해주었다. 여느 네의 부모님과 다를 바 없이, 이들 또한 아들들의 교육을 걱정한다. 밀림 깊은 곳에 있는 소수종족 마을의 아이들은 학교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학교가 위치한 주도까지 가기에도 꽤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온 거리보다 더 나가야 한다. 또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대부분 자급자족 농사를 일구는 부모님의 일손을 돕기 위해 중간에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교육보다 먹고사는 게 먼저라 부모 또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부모의 걱정과 다르게 아들들은 사방이 뻥 뚫린 집을 해맑게 뛰어다닌다. 허리를 깊게 숙여 밭의 수확물을 일구는 어머님을 뒤로하고 손을 흔들며 떠났다. 어머니의 환한 미소엔 자녀에 대한 희망이 서려있었다.


두 번째 가정집은 숲 속을 좀 더 깊숙이 들어가야 했다. 중간중간 계곡물 위에 간이로 세워놓은 나뭇길을 건너기도 했다. 혹여나 오토바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진 않을지 괜한 걱정이 앞선다. 두 번째 가정엔 아주 작은 아기와 젊은 부부가 거주하고 있었다. 선교사님과도 아주 깊은 친분이 있는 부부였다. 짚으로 엮은 지붕과 그 옆의 기다란 빨랫줄이 인상 깊었다. 짧은 시간 동안 함께 인사를 나누고 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를 했다. 이제 떠나려는 데 갑자기 젊은 아내분이 펑펑 울기 시작한다. 이 부부에겐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하는 어떤 삶의 어려움이 있었을까, 이 삶의 무게를 어떻게 견디며 살았을까. 잠깐 방문한 이방인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이방인에게 불과한 나는 이들의 사연을 잘 모른다. 우는 아내 분을 꼭 안아주는 것. 그것만이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세 번째 가정집에선 왠지 모르게 정겨운 할머니를 만났다. 호탕한 웃음소리에 우리를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마법. 할머니를 위한 1순위 기도는 역시 건강이다. 짧게 담소를 나누고 다음 가정으로 이동하려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내 뒤에 털썩 앉아 오토바이를 타신다. 이동 중엔 또 하하 호호 호탕한 웃음을 지으시며 한껏 기대에 부푼 게 꼭 소녀 같으셨다. 할머니와 함께 도착한 가정집. 이 가정의 이야기를 듣는 데 함께 따라오신 할머니도 쫑긋 귀를 기울이신다. 누구보다 성실한 가정이었다. 착실하게 일을 하여 더 튼튼한 집을 짓고, 아이들을 위해 책임감 있게 살아가고 있는 부부다. 알뜰살뜰 꾸려져 있는 살림을 보니, 한 가정을 가꾸고 지켜오는 것이 참 멋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가정은 아내분이 눈이 많이 좋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치료를 제때 받아야 하는데, 병원이 있는 프놈펜까지 가기도 쉽지 않다. 한 친구가 주머니에 있는 안약을 주섬주섬 꺼내서 건넨다. 크게 도움이 되진 않을지라도 그렇게라도 마음을 건넨 것이다.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자녀 걱정, 질병 등등 소수종족 마을의 사람들도 우리네의 고민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중요한 건 '희망이 보이느냐'일 것이다. 부디 오늘 만난 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기를 소망해 본다.  


다시 밀림과 흙길을 되돌아갈 채비를 했다. 저 멀리 먹구름 떼가 몰려오고 있었다. 운전자 선생님은 먹구름을 가리키며 오토바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돌아갈 땐 흙먼지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정확히 말하면 포기가 맞을 것이다. 피하기를 포기하니 그제서야 왠지 모를 해방감이 느껴진다. 돌아가는 길, 오늘 만난 인연들을 하나 둘 떠올려 보았다. 긴 인생 속에 짧게 스친 만남이지만 서로를 위해 기도했던 오늘이 힘들 때 꺼낼 볼 수 있는 추억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가정방문을 마치고 오토바이에서 내리자 거짓말처럼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오늘의 모든 임무를 잘 마쳤다고 큰 빗줄기가 등을 세게 토닥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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