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봉사의 가장 중요한 소임 중 하나는 14명의 학사 친구들과의 교제였다. 14명의 학사 친구들은 선교사님과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이다. 대부분 중고생들이며 한창 학업에 전념할 때다. 이 친구들 또한 캄보디아 소수종족으로 마을에 학교가 없다 보니 교육 접근성이 어렵다.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농업을 생계로 하는 부모님의 일손을 돈아 학업을 쉽게 포기하기도 한다. 선교사님 부부는 이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돕는다.
한국팀 2명과 캄보디아팀 3-4명 정도로 조를 구성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의 첫 만남은 저녁식사였다. 오랜만에 하는 좌식의 식사가 꽤 불편했다. 한 손으론 접시를 잡고, 한 손으론 젓가락질을 하는 게 영 부자연스럽다. 동작도 어설픈데 이 첫 만남의 어색함은 어떻게 깰 수 있을지. 가장 큰 장벽은 언어였다. 친구들은 아직 영어 구사가 어렵다. 오로지 번역기에 의존해야 했다. 번역기를 통해 오고 가는 대화 속에 시간의 텀이 꽤 존재했다. 나도 모르게 중간중간 영어와 한국어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가까워지고 싶은 다급한 마음과 다르게 서로의 표정에선 어색함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식사 전 감도는 이 어색함...
코리안 바베큐와 함께한 너무 맛있었던 첫 날 저녁식사
이 친구들과 부쩍 가까워진 계기는 공식적인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저녁식사 후 잠깐의 쉬는 시간. 우리와 함께 했던 저녁식사가 어색했는지 다들 쪼르르 마당으로 나가 그제야 편하게 놀기 시작한다. 한쪽에선 음악 소리와 함께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린다. 여자 친구들이 모여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고 있었던 것. 자연스레 이 사랑스러운 친구들의 무리에 합류했다. 언어가 안되니 내 몸이라도 한번 써보자며 미친 척 함께 음악에 몸을 맡겨본다. 그런데 웬걸. 이 친구들 율동을 멈추지 않는다. 한바탕 함께 웃으며 율동을 하다 보니 땀과 함께 어색함이 한가득 흘러 내려갔다. 남자 친구들은 세워진 오토바이에 앉아 부끄러운 듯 웃는다. 마침 노을이 지고 있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분홍빛 노을이 여백을 드리웠다. 캄보디아 단기봉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분홍빛 노을이 지는 해 질 녘 무렵, 아이들과 함께 까르르 놀았던 찰나의 순간 말이다. 학창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분홍빛 노을이 반겨주던 친구들과의 순간들
달빛 아래 기타치며 노래하던 사랑스러운 친구들의 모습
저녁 식사 후엔 이 14명의 학사 친구들과의 교제 시간이 이어졌다. 하루 동안의 모든 봉사가 마무리되면, 저녁엔 온전히 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우린 주로 서로의 꿈과 기도 제목을 나누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의 기도제목은 '가족'과 '학업'이었다. 이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학교에 다니고, 공부를 한다는 것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언어의 장벽은 있었지만 함께 노래하고 율동하면 그 장벽이 와르르 무너짐을 느낀다. 마무리는 서로를 위한 축복송이다. 축복송을 부를 때 위기가 찾아왔다. 우리 팀의 한 친구가 나를 바라보며 축복송을 부르는데, 그 큰 눈 안에 별이라도 박힌 듯 눈물을 글썽인다. 글썽이는 눈물은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뚝뚝 떨어지는데 어떻게 나도 안 울 수가 있을까. 라고 눈믈의 핑계를 대본다. 서로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마음과 마음이 통했던 순간이었다.
어색함과 뻘쭘함은 어디로...? 다들 흥부자였잖아?
매일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다.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주면 떨어지질 않는다. 짧은 거리의 숙소고, 우린 또 내일 볼 건데 왜 이렇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던지. 친구들은 매일 같이 우리의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을 힘차게 흔들어줬다. 벌써부터 이들과 어떻게 헤어질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리에겐 내일이라는 시간이 있으니. 마치 연인과의 데이트를 기다리듯 이 친구들을 만날 내일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