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소수종족 친구들의 시엠립 상경: 앙코르와트, 톤레삽
캄보디아 친구들이 가장 기다렸던 날이라고 한다. 캄보디아 소수종족 마을에서 한 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는 친구들. 수도인 프놈펜과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립은 일생을 살면서도 한 번 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선교사님은 이들에게 견문을 넓혀주고자 여행을 계획하고 계셨고 마침 우리가 왔을 때 함께 가는 것이 추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일정을 사전에 조율했다.
첫 목적지는 시엠립. 라따나끼리에서 차로 약 7시간 거리다. 친구들이 장거리를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멀미를 방지하기 위해 아이들은 일부러 앞에 앉게 했다. 프놈펜에서 라따나끼리까지 오는데도 9시간이 걸렸는데, 또다시 7시간의 거리를 달려야 한다니. 이젠 캄보디아 친구들과 함께하다 보니 이들의 컨디션을 살피느라 유독 가는 길이 더욱 길게 느껴졌다. 어느덧 익숙해진 풍경에서 벗어나 문명의 손길을 탄 풍경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지쳐있던 친구들은 창문 밖 풍경을 하나 둘 신기하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시엠립 중심에 들어오니 시골에선 흔히 볼 수 없는 교통체증도 시작된다. 막힌 길이 뚫리길 기다리며 자심감 있는 친구들은 마이크를 잡으며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유독 끼가 있는 한 친구는 소수종족 마을의 전통 춤도 기꺼이 보여준다.
도착하자마자 시엠림 숙소에 짐을 풀었다. 먼저 친구들을 엘리베이터에 태워 보내려는데 좀처럼 올라가질 않는다. 아차! 이들은 일생에 처음 엘리베이터를 타보는 것.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법을 몰랐을 것이다. 금세 눈치를 채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었다. 엘리베이터 사건으로 아차 싶어서 방 안내도 해주었다. 숙소키를 꼽는 법, 에어컨을 키는 법 등을 알려주었다. 나 또한 시골에서 자라 처음 서울에 갔던 때를 잊지 못한다. 모든 게 낯설고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 이 낯섦이 두려움이 아닌 설렘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길 기대해 본다.
저녁엔 야시장으로 향했다. 우리 조는 각종 다양한 요리를 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친구들에게 메뉴를 고르라 하니 한참을 망설인다. 몇십 분이 흘렀을까. 그럼에도 잘 고르지 못하는 친구들을 위해 몇 가지 요리를 주문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일괄 동일한 메뉴가 지급되는 학사 생활을 하다 보니, 메뉴 선택의 기회를 가져보지 않아 아마 주문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다. 도란도란 함께 외식을 하니 마치 한 '식구'가 된 느낌이 들었다.
시엠립에서의 둘째 날. 숙소 로비에서 친구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자친구들이 대변신을 한 것. 다들 맞춰 입었는지 흰 롱치마를 펄럭이며 나타났다. 평소보다 헤어도, 스타일도 한 껏 꾸몄다. 앙코르와트에 가니 더 난리가 났다. 한국인만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줄 았는데 이들을 못 이긴다. 인생샷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서로를 찍어주며 까르르 숨넘어가듯 웃는다. 나 또한 후회가 없을 정도로 친구들과 많이 사진을 찍었다. 이때 찍은 사진은 나의 보물이 되었다. 함께하신 가이드님이 중간중간 앙코르와트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 몇몇의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살펴본다. 한 때 인도차이나 반도를 호령했던 크메르 왕조. 이들은 앙코르왓트를 건설하며 그들의 찬란한 문명을 뽐냈다. 그 문명은 아스라이 역사 속에 묻히고 킬링필드 등 아픈 역사를 거치며 동남아에서도 힘을 잃게 된다. 이 아픈 역사를 이 친구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화려한 역사와 대비되는 현실을 바라보니 씁쓸함이 든다.
앙코르와트를 뒤로하고 동남아시아 최대 호수 톤레삽으로 향했다. 모터보트를 타고 호수를 가로지르니 어마어마한 크기가 가늠되지 않는다. 갈색 흙탕물의 톤레삽 위로 마치 우리를 반겨주듯 푸른 하늘과 구름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그림 아래엔 치열한 삶의 현장이 열거되어 있다. 거대한 호수 위에 이동식 집을 지으며 생계를 이어간다. 밀림에서 온 우리 친구들과, 물과 조우하는 삶을 사는 톤레삽의 주민들. 캄보디아라는 하늘 아래 형형색색의 다양한 삶이 펼쳐져 있다.
관광객을 위한 악어 농장이자 휴게소에 잠깐 들렀다. 난 갇혀 있는 이 악어들이 불쌍한데 친구들은 신기하게 한참을 바라본다. 휴게소에 판매용으로 걸려있는 앙코르왓트 그림을 보면서 '싸앗(예쁘다)'를 남발한다. 세상 모든 것 하나하나 설렘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친구들과 함께하니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간 듯했다.
오늘의 하루가 친구들에겐 어떤 그림으로 남아 있을까. 앙코르와트의 찬란한 문명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톤레삽이. 이들에게 자부심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또다시 밀림 속의 시골로 돌아가겠지만 오늘 보았던 큰 세계가 증발되지 않고 마음 한편에 남아 있길. 하하 호호 함께 웃었던 순간들이 힘들 때 떠올리며 피식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되길. 이들의 일생일대 큰 축제인 수학여행에 감히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