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계획에 없었던 해외봉사는 인생의 넛지라고 할 만큼 내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누군가는 그저 일주일간의 봉사로 너스레를 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의 인생 또한 단 한 번의 해외봉사로 눈에 띄게 변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나의 시야와 생각엔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시간의 길이는 짧았지만 시간의 밀도만큼은 진했던 경험이었다.
'나'를 넘어 '우리'를 살피는 삶
약 8년간 직장 생활을 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커리어였다. 한해 한해 더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느낌은 더욱 앞으로 달리게 했던 것 같다. 일하면서 느끼는 성취감도 중독이 있었다. 업무를 통한 성과나 인정은 더 앞으로 나아가고자 다짐한 원동력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의 커리어를 디벨롭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은 더욱더 오로지 '나'만 생각하게 만들었다. HRD를 업으로 하다 보니 직원들에게도 늘 '성장'을 외쳤다.
두 부부 선교사님의 삶은 '집-회사를 오가는 나의 삶'에서, '휴가 때 떠나는 여행지'에서 결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번 해외 봉사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된 선교사님의 삶. 나에겐 매우 새롭고 강하게 표현하자면 충격적인 삶의 모양이었다. 접근하기 힘든 오지에서 소외된 이들을 보살피는 삶. 그 삶에는 '사람을 남기는' 열매가 있었다. 십여 년 세월을 그곳에서 헌신하며 많은 학생들과 마을 주민들이 키워졌다. 언젠가 세상을 떠날 날이 있을 때 나의 업적과 성취가 남는 것과 사람들이 남는 것 중 어떤 게 더 의미 있을까라는 질문이 나에게 훅 들어왔다.
봉사, 공동체, 헌신 이런 유의 단어가 '인류애'라는 거시적 담론 안에 너무 진부하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요즘 같은 먹고살기 바쁜 세상에선 말이다.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이런 단어들을 직접 눈으로 보니, 직접 살아내고 있는 사람을 통해 보니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거시적인 담론이 아닌 실제 살아낼 수 있는 것이라는 걸 피부로 느꼈다. 이미 그 삶을 살아내고 있는 어른들을 눈으로 보니 분명 실체 있는 가치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결국엔 남는 건 사람
단기봉사가 끝나고 남는 건 뒤돌아 보니 결국 사람밖에 없었다. 몇 개월을 준비하고 그곳에서 행했던 여러 봉사활동들은 시간 속에 잊혀 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만났던 캄보디아 친구들과 주민들은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연약한 인간의 기억력을 믿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잊힐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기억력이 붙잡고 있는 한 이들을 위해 멀리 서라도 기도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요즘도 종종 안부를 주고받곤 한다. 며칠 전, 캄보디아 친구들이 보내온 영상편지를 받았다. 우리와 함께 한 시간들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말에 울컥했다. 우리의 기억력이 버텨주는 한 서로를 마음껏 그리워하며 서로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자!
회사 안의 크고 작은 일들에 목메지 말자
일하다 보면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기기 마련하고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때론 동료와 회사는 왜 이러냐며 푹푹 한숨을 쉬기도 한다. 하지만 봉사를 다녀온 후 조금 더 일과 삶을 분리하는 게 수월해졌다. 지금의 크고 작은 이슈들이 내 삶을 갉아먹지 않도록 조금은 멀리서 떨어져서 사안들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회사가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와는 다른 의미다). 왜 해외봉사를 통해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논리적인 연계성은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스트레스들이 밖에 나와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일하며 달녀온 지난 8년에 이어 앞으로의 나날도 건강하게 일하려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나에겐 해외봉사가 진정한 안식(安息) 휴가였다.
시간과 돈이 허락한다면, 그리고 나에게 그분이 기회를 주신다면... 앞으로는 매년 해외봉사를 나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어떤 여행지도 줄 수 없는 기쁨이 그곳에 있었다. 모든 직장인들에게 어쩌다 한 번의 휴가를, 나도 모른척하며 해외봉사에 사용해 보길 조심스레 추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