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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티 Nov 29. 2020

폐허가 된 로테르담에서 창의성이 꽃피다.

현대 건축의 장, 로테르담을 거닐다. 

새로운 네덜란드를 보았다. 암스테르담과는 완전 다른 도시의 모습에 압도됐다. 어느 하나 똑같지 않은 독특한 건축물들이 마치 서로의 매력을 뽐내듯 말을 건넸다. 로테르담은 유럽에서도 보기 힘든 도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난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가 완전히 새로 세워졌다. 세련되고 모던한 자태 뒤에는 큰 아픔이 있었다.


한순간에 잿더미가 된 도시는 '살 수 있는 곳'으로 '다시' 만들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로테르담은 독일군의 폭격을 맞아 완전 폐허가 됐다. 시청과 우체국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됐다. 한순간에 잿더미가 된 도시는 '살 수 있는 곳'으로 '다시' 만들어야 했다. 폐허 전의 모습을 복원하려 했던 기존의 계획은 건축 재료를 구하기 어려워 한계가 있었다. 도시를 완전히 새롭게 세워나가기 위해선 창의성이 필수였다. 그렇게 '지속 가능한 도시'를 상상해 나가며 공공성과 디자인을 살린 건축물들을 하나하나 세워 나갔다. 창의성은 꽃을 피워 지금의 로테르담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현대건축의 도시답게 로테르담의 첫인상은 강했다. 로테르담 중앙역을 빠져나오면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역의 모습에 뒷걸음질 치게 된다. 조금 더 뒷걸음질 하면, 엇비슷한 삼각형 모양의 중앙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쪽 지붕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다. 함께 시선을 따라 움직이면 시내 중심으로 향하게 된다. 중앙역 역시 늘어나는 승객들을 감당하기 힘들어 약 10년 간 리모델링의 공사 끝에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역을 나타내는 글자와 시계만은 바꾸지 않았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곳에서 로테르담의 여행을 시작했다. 


세상에서 제일 독특한 로테르담 센트럴 스테이션


로테르담에서는 프리워킹투어를 신청했다. 호스텔에서 팸플릿이 있어 참고하여 집합장소인 마켓홀로 향했다. 마켓홀은 로테르담의 랜드마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테르담 마켓홀은 네덜란드 건축가 MVRDV의 설계로 10여 년의 공사를 끝낸 후 2015년에 개장했다. 마켓홀은 자세히 말하면 '주상복합 전통시장'이라 할 수 있다. 120여 개의 점포뿐만 아니라 주거공간, 사무공간이 어우러져 있다. 지역 재개발 사업의 일환이었던 로테르담 마켓홀은 성공적이었다. 아치형의 독특한 건축물, 깔끔한 실내, 천장을 감싸는 그림,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점포 등은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로테르담 마켓홀은 이제 전 세계에서 전통시장의 새로운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다양한 나라의 음식이 많았던 로테르담 마켓홀
시장인가, 놀이공간인가

로테르담의 개신교 교회인 성 라우렌스(St.Laurens kerk) 교회는 특별하다. 현대적인 건축물로 다시 세워진 로테르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세 건축물이다. 공습으로 인해 반파되었으나 복구과정을 거쳐 모던한 로테르담에 고풍스러움을 더해준다. 라우렌스 교회 앞에는 로테르담 인문학자이자 종교개혁가인 에라스무스 동상이 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동상으로 무려 1622년에 세워졌다. 실제 에라스무스는 로테르담에서 겨우 4년을 살았다. 이후 유럽 곳곳을 떠돌았고 다시 이 곳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콘서트 장으로도 변하는 성 라우렌스 교회
로테르담 토박이와 함께 한 건축 투어 


그럼에도 로테르담에선 에라스무스를 향한 애정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에라스무스 다리'에서부터 '에라스무스 대학'까지. 에라스무스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본 '에라스무스 다리'는 백조 같았다. 우아한 날개를 보란 듯이 활짝 펼치고 있는 살아있는 백조를 봄직하다. 다리 밑엔 로테르담의 젖줄 마스 강이 흐른다. 한때 세계 무역의 중심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해 나갔던 네덜란드의 모습이 보인다. 상인들의 발걸음은 힘차고 도시는 활기가 넘쳤으리라. 호황의 시대를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해 본다.


시원하게 날개를 펼치고 있는 에라스무스 다리


로테르담의 또 다른 주상복합건축물 티메르하우스. 시청 사무실과 주거 공간 등으로 활용한다. 이 또한 로테르담 복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세워진 곳으로, 녹색 테라스가 눈에 띈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각각의 세대가 다 다르게 지어졌다고 한다. 단순히 동일한 층을 올려 쌓은 것이 아닌  조금씩 다른 모양의 공간을 조화롭게 결합한 것이다. 



큐브하우스는 로테르담 건축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건축물이 아닐까 싶다. 정육면체 큐브 38개를 붙여 만든 건축물. 상가, 호스텔, 주거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각각의 큐브를 하나의 나무로 보고, 나무가 옹기종기 모인 하나의 숲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각각의 입방체가 모인 위를 바라보면 아름다운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독특한 외관과 다르게 내부는 다소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받지만, 여전히 큐브하우스 내 호스텔은 로테르담에 왔다면 하루쯤 묵어야 하는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언젠가는 큐브하우스에서 하루 묵어보고 싶다.


시민의 약 절반이 이민자인 도시, 로테르담. 어쩌면 다양성을 수용할 줄 아는 포용성이 창의적인 도시를 피어나게 한 촉매제이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실험은 늘 어렵지만, 먼저 시작할 수 있게 한다. 잿더미 속에서 로테르담은 지속가능성을 실험했고, 이젠 미래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선구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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