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티 Apr 12. 2020

70만 평 국립공원에 안긴 반 고흐를 만나다.

반 고흐 찾아 삼만리

반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를 보러 가기엔 큰 결심이 서야 했다. 암스테르담에서 크뢸러 뮐러 미술관까지는 약 두 시간 반. 전날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았던 터라 '반 고흐 미술관에 갔으면 됐지 않아?'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에선 '고흐의 방', '노란 집', '꽃 피는 아몬드 나무' 등 반 고흐의 웬만한 유명 작품들은 다 볼 수 있다. 잠시 게을러진 몸을 스멀스멀 일으켰다. 이 번에 가지 않으면 왠지 영영 못 갈 것 같았다. 그렇게 반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를 찾아 떠났다.   


반 고흐의 작품이 두 번째로 많은 곳
크뢸러 뮐러 미술관
(Kröller-Müller Museum)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반 고흐 작품이 두 번째로 많은 곳이다. 특히 그 유명한 '밤의 카페테라스'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그 작품 하나를 보기 위해 이 곳을 찾는다. 크뢸러 미술관의 설립자는 미술 수집가였던 독일인 헬렌 크뢸러 뮐러다. 독일 기업가였던 그녀의 아버지 사업을 남편이 이어받기 시작했고 두 부부는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이후 사업을 위해 독일을 떠나 네덜란드에 정착하게 된 두 부부. 현대 미술에 대한 사랑이 넘쳤던 그녀는 이 곳에서 미술수업을 듣기 시작한다. 당시 미술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미술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헬렌 크뢸러 뮐러. 그녀가 예술을 보는 안목은 남달랐다. 당시 유명하지 않았던 반 고흐의 작품을 대량 구매하여 간간히 전시회를 열었다. 점차 수집한 작품이 많아지자 한계를 느낀 그녀는 크뢸러 뮐러 미술관 건립을 추진한다. 



70만 평의 국립공원에 안겨있는 미술관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70만 평의 드넓은 '호헤 벨루베 국립공원' 내에 위치해 있다. 이 국립공원은 헬렌 크뢸러 뮐러의 남편 안톤 크뢸러의 개인 사냥터였다. 두 부부는 추후 미술작품과 함께 이 땅도 네덜란드에 기증하게 된다. 이후 1938년,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 개관했다. 국립공원에 안겨있는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뛰어난 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예술공간이자, 네덜란드인들에게 쉼을 안겨 주는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도 찾아가는 미술관 


암스테르담에서 크뢸러 뮐러 미술관을 가려면 넉넉히 하루 일정을 잡고 하는 게 좋다. 암스테르담에서 약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오테를로에 위치한 곳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면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거리상으론 멀지 않지만 버스 배차 간격이 넓음) 가는 법은 암스테르담 센트럴 역에서 Ede-Wageningen역까지 간 후, 역에서 나와 G플랫폼에서 108번 버스를 탄다. 108번 버스를 탄 후 Otterlo Centrum역에서 다시 106번 버스를 갈아 탄 후, 크뢸러 뮐러 미술관까지 가면 된다.


밤의 카페 테라스 찾아 삼만리(feat. 기차, 버스, 버스, 자전거)


나는 크뢸러 뮐러 미술관까지 가지 않고, 호헤 벨루베 국립공원 매표소에서 내렸다. 그 이유는 미술관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기 위해서다. 매표소에서 '국립공원+미술관' 통합 티켓을 산 후, 무료 자전거를 타고 미술관까지 달렸다. 자전거를 탄 건 정말 잘한 선택. 면적을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국립공원을 달리는 기분이란! 국립공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예쁘게 정돈되지 않고 야생 그대로의 사파리 느낌이었다. 허허벌판 국립공원의 작은 점이 되어 앞으로 쌩쌩 나아갔다. 반 고흐를 만나러 말이다!  


자전거 타고 가는 미술관 

                                                  


뜻밖의 선물, 야외 조각공원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사랑스러웠다. 통유리로 된 외관과 큰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나에게 평화로움을 선물해줬다. 멀리 온 만큼 네덜란드의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미술관에 들어갔다. 미술관 입장문 옆에는 작은 출구가 하나 있었다. 바로 야외 조각공원으로 이어지는 곳. 오후 4시까지만 개방이기에 작품을 보기 전에 공원으로 먼저 향했다. 공원에는 수많은 조각상들이 있는데, 팸플릿에 위치와 설명이 모두 나와 있었다. 조각공원에서는 작품을 구경하기도 하지만, 푸르른 잔디밭에서 쉬거나 내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다양한 모양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이 곳이 준 선물을 맘껏 누렸다.


크뢸러뮐러 미술관이 준 뜻밖의 선물 '야외 조각공원'



유난히 조용한 미술관


통유리, 직선으로 뻗은 통로, 차분한 인테리어, 유리 밖의 자연,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가 주는 예술적 무게감이 있어서 그럴까. 미술관은 유난히도 조용했다. 오랜 시간 달려온 만큼 너무나도 소중한 곳을 힘껏 누리려는 사람들의 감정이 느껴졌다. 이 작은 공간에서 우리는 시간 여행을 하고 있었다.  


                 


밤의 카페테라스를 만나다.


그리고 밤의 카페테라스를 만났다. 이 작품을 만나러 여기까지 왔다. 한참을 그 앞에서 머물렀다. 검은색을 쓰지 않은 푸르른 하늘엔 '하늘의 꽃'이라고 했던 별들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푸른 밤, 카페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바로 이 곳에서 밤을 그리는 것은 나를 매우 놀라게 하지. 창백하리만치 옅은 하얀빛은 그저 그런 밤 풍격을 제거해 버리는 유일한 방법이지... 검은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을 사용했어. 그리고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밝은 노란색으로 그렸단다.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 - 여동생 빌라민에게 쓴 편지 中


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테라스] 1888


크뢸러 뮐러에서 만났던 반 고흐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대상들의 아름다움을 작품에서 마음껏 표출하고 있었다. 검은색을 사용하지 않고 하늘을 표현했을 때의 벅찬 기쁨이 '지금, 여기'까지 전달되고 있었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는 어련히 해야 된다고 강요받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30대로서. 여자로서. 직장인으로서. 잠시 잊고 있었던 나에게 부여되는 표준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무엇이 어찌 되었든 이 곳에서 만난 고흐처럼, 나만의 색깔대로 인생의 그림을 그려나가고 싶어 졌다. 그럼 나도 하늘의 작은 꽃 하나 정돈 찍을 수 있겠지.

이전 04화 바다보다 낮은 땅에 풍차를 세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