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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티 Apr 26. 2020

스머프 집은 분명 히트호른이야.

네덜란드의 베니스 히트호른 유랑기


"그곳엔 아마 스머프가 살고 있을 거야!"


 SNS에서 본 사진 한 장. 히트호른(Giethoorn)을 보자마자 여긴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동화에서 봤던 스머프들이 살고 있을 것 같다. 수로를 따라 아기자기 모여있는 집들엔 감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림 같은 그곳엔 작은 스머트들이나 살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내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보물을 찾는 것은 늘 쉽지 않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 그랬다. 암스테르담에서 꼬박 두 시간 반을 걸려서 갔으니 말이다. 히트호른도 마찬가지다. 렌트를 한다면 가기 훨씬 수월하지만, 가난한 뚜벅이 여행자에겐 큰 맘을 먹고 가야 하는 곳이다. 또 한 번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히트호른을 찾아갔다. 암스테르담 센트럴 역에서 스테인베이크 역에 내려 20번 또는 270번 버스를 타고 블라우한트 역에 내리면 된다. 네덜란드의 진가를 알아버려서 이러한 수고도 이젠 아무렇지 않다.

히트호른으로 소풍가는 길 (기차타고 슝슝)


지중해 난민들의 치열한 삶의 터전


1200년 경 페스트와 종교적 박해로 이주해 온 지중해 난민들이 형성한 마을. 당시 이주민들은 네덜란드 대홍수 때 떠내려 온 대량의 염소 뿔을 발견하게 된다. 이름도 예쁜 히트호른(Giethoorn). 곧 '염소의 뿔'이라는 의미다. 웨이리번 위던 국립공원 가운데에 위치한 히트호른은 원래 숲과 습지대로 덮여있었다. 이주민들은 식물이 장기간 물속에 잠겨 생성된 '이탄(Peat)'이라는 석탄을 채굴해 먹고살았다. 채굴의 빈도가 높아지자 점점 습지대는 호수로 변해갔고 이들은 수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수로 위에 전통 배인 '푸터'를 몰며 이탄과 그 외의 생필품들을 옮겨 나갔다. 이 아기자기한 수로는 한 때 이주민들의 치열한 삶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수로가 전부인 마을. 보폭을 힘껏 크게 그려 보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을이 주는 평온함에 취한다. 자, 이젠 모든 사람들이 두 발로 염소의 뿔에 입장한다. 그 흔한 자동차는 들어설 수 없다. 도로는 없고 수로가 전부인 마을이기 때문이다. 오직 사람과 물, 보트, 집,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자전거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마음 놓고 걸어 본 적이 얼마 만인가. 온전히 사람이 우선인 곳. 보폭을 힘껏 크게 그려 보았다.



물 위에는 보트들이 옹기종기 떠있다. 직접 대여하여 운전을 할 수 있는데 일행이 없었던 나는 아쉬운 마음 한 가득 안고 관광용 보트에 앉았다.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보트란다. 창가에 냉큼 자리를 잡았다. 보트 두대 간신히 들어갈만한 좁은 수로 위에서 작은 보트는 앞으로 나아갔다. 건초와 갈대를 엮은 지붕의 전통가옥들이 보이자 절로 탄성이 나왔다. 동화 속 그림 같은 이 작은 집엔 스머프들이 살 게 분명했다. 수로를 잇는 작은 다리는 약 170개. 건너편 이웃집을 방문하려면 이 작은 다리를 살포시 건너면 된다. 너무 귀엽지 않은가.



히트호른의 전통가옥. 건초와 갈대로 지붕을 엮었다.
히트호른엔 수로를 잇는 170여개의 다리가 있다.


거대한 호수, 찰나의 자유함을 선물해주다.


몇 개의 작은 다리를 다 지났을까. 갑자기 탁 트인 거대한 호수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지중해를 떠난 이주민들은 넓디넓은 바다를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이 거대한 호수는 이들의 그리움과 아쉬움을 달래주는 자그마한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이 거대한 호수는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찰나의 자유함을 선물해 주고 있다. 모두가 자유롭다. 거추장스러운 옷가지는 모두 벗어던지고 호수 위에서 거침없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 놀고 있었다.



스머프는 만나지 못했지만, 어릴 적 동화 속에서 봤던 스머프의 집은 분명 히트호른이었을 거다. 2,500개의 가옥에 사는 이들은 과연 신에게 선물을 받았을까. 이주민들이 치열하게 일구어 놓은 마을은 이젠 네덜란드의 보석이 되어있었다. 현재 내가 일구어 가고 있는 치열한 삶의 터전은 어떠할까. 열심히 잘 일구어 예쁘게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트호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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