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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티 Mar 28. 2020

풍차마을의 환상 자전거길

자전거로 네덜란드 풍차마을을 달리다. 

이른 아침 도착한 로테드담은 한적했다.


아직 가게문은 채 열기도 전이었고 설상가상 예약한 호스텔은 얼리체크인도 되지 않았다. 일단 짐만 맡기고 갈 곳을 찾았다. 예정에 없던 풍차마을 킨더다이크를 가기로 결심하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긴 비행에 씻지도 못하고 몸은 무거웠지만 로테르담의 날씨는 맑았다. 햇빛이 아침부터 내리쬐었다. 선착장까진 그리 멀지 않았다. 백조의 날개처럼 쫙 펼쳐진 에라스무스 다리와 독특한 모양의 빌딩들을 보니 네덜란드에 온 게 실감이 났다. 


일상이 시작되기 전 이른 아침의 로테르담
이른 아침의 호스텔.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다.


로테르담에서 킨더다이크에 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에라스무스 선착장에서 수상보트를 타면 된다. 직행 수상보트를 타면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다. 어쩐지 그날은 직행 수상보트가 제시간에 오지 않았다. 긴 비행에 지쳐 웬만하면 직행을 타고 싶었다. 몇 번의 완행 보트를 보내고도 고집스럽게 직행 보트를 기다렸다. 길지도 않은 선착장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걸었을까. 시간은 이미 한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표정에서 동질의 마음을 읽는다. 아, 드디어 저 멀리서 '202'라는 숫자가 적힌 보트가 다가오고 있다. 지루한 기다림을 금세 잊고 기쁨이 달아오른다. 


동트기 전 에라스무스 다리. 백조의 날개 같다.


네덜란드인들에게 자전거는 삶이다. 


보트에선 자전거를 옆에 낀 수많은 현지인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수상보트는 관광용이기보단 대중교통의 수단이다 보니 현지인들이 정말 많이 타고 있었다. 보트에서 내린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전거 브레이크를 올려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네덜란드인들에게 자전거는 삶이다. 출근길로 향하는 것일까? 학교로 가는 것일까?  오전. 낯선 나라에서 낯선 이들이 일상을 시작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게 신기했다. 점차 도시에 활력이 불기 시작했다. 


드디어 수상보트를 탑니다.


수상보트를 타고 킨더다이크로 향하는 길은 지루하지 않았다. 건축으로 유명한 로테르담의 독특한 건축물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로테르담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면서 창의성을 불어넣었다. 가히 현대건축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완전히 새로 세워지는 것이기에 두려움도 없었다. 각각의 개성과 매력대로 건축물이 하나 둘 세워졌다. 이질적인 것들이 이상하게 균형을 이룬다. 우리에게 익숙한 유니레버 본사를 지나 드디어 킨더다이크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네덜란드는 국토의 1/3이 해수면보다 낮다. 간척지의 물을 빼내 홍수를 막는 데 이 풍차가 큰 역할을 했다. 킨더다이크에는 총 19개의 풍차가 있다. 무려 1,700여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원시적인 풍차이다. 현재는 19개의 풍차 중 1개의 풍차만 관광객에게 개방을 해놓고 있다. 킨더다이크 공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매우 의미 있는 곳이다.



양 옆의 큰 풍차들을 끼고 쭉 뻗은 자전거길을 달렸다


선착장에서 내리자마자 자전거를 빌렸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페달을 한발 한발 굴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천국에 입장하는 기분이었다. 자전거 타기 딱 좋은 날씨가 바로 이런 것일까. 유난히 푸르른 하늘, 유난히 초록 초록한 풀들, 그리고 거대한 풍차들. 양 옆의 큰 풍차들을 끼고 쭉 뻗은 자전거길을 달렸다. 앞만 보며 나아갔다.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눈 앞의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그렇게 한참을 자전거를 타며 풍차마을을 달렸다. 


쫙 펼쳐친 풍차마을의 자전거 길 
자전거 탄 풍경


네덜란드의 유명한 풍차마을은 이 킨더다이크와 잔센스칸스 두 곳이 있다. 두 개의 풍차마을 모두 아름답지만 매력은 다르다. 킨더다이크는 오래된 풍차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보니 풍차의 크기가 매우 크고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다. 원시적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잔센스칸스는 상대적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다 보니 예쁘게 가꿔놓은 느낌이 많이 든다. 좀 더 아기자기하다. 여유가 된다면 각기 다른 매력을 느껴보길 추천한다.



자전거는 어린날의 자유로움과 사방이 확 트인 시야를 선물해줬다.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자전거가 삶이었던 적이 잇었다. 시골에 살아 동네 친구들과 왁자지껄 놀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우리들의 일상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는 것이었다. 보조바퀴를 단 자전거만 타다가 두 발 자전거로 중심을 잡았을 때의 성취감은 아직도 기억난다. 성인용 자전거인 엄마 자전거를 탈 때면 한층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대학에 진학하며 도시로 오고 나선 자전거를 탈 일이 거의 없었다. 


오랜만에 탄 자전거는 '유레카'를 발견한 것처럼 어린날의 자유로움과 사방이 확 트인 시야를 만끽하게 해 줬다. 사방이 막힌 지하철에서는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보게 해줬다. 나는 자전거와 함께 살아가는 네덜란드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서울에 가져오고 싶었다. 한국에 오자마자 '따릉이 정기권'을 끊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날이 좋을 땐 따릉이를 타고 퇴근하는 삶을 한동안 지속했다. 네덜란드에서 가져온 것은 예쁜 쓰레기가 되어버리고 마는 값싼 기념품이 아닌 자전거와 가까워지는 삶이었다. 


가끔 답답할 땐 자전거를 타고 킨더다이크를 달리는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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