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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티 Jan 28. 2021

화가 베르메르를 따라 델프트를 거닐다.

세상에서 가장 파란 도시, 델프트


델프트. 입안에 사탕을 머금은 듯 달콤한 발음이다. 후르르 굴러가는 발음의 이름을 가진 도시. 델프트. 이 곳을 간 가장 큰 이유가 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평생을 살았던 곳이라서. 헤이그의 마우리츠 미술관에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았었다. 한창 넋이 나갔었다. 영롱한 진주와 생기 있는 입술은 마치 그림 속의 소녀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가 그린 '델프트 풍경'도 압도적이었다. 무역으로 돈을 벌었던 델프트의 전성기 시절이 담긴 작품이다. 마치 그 시대의 한 복판에 내가 서 있는 느낌이었다. 베르메르가 영감을 받았던 곳은 그가 나고 자란 고향. 바로 델프트다.


델프트 풍경, 요하네스 베르메르, 1996(출처 : 위키피디아)
지금의 '델프트 풍경'

델프트는 네덜란드 남서부에 위치한 인구 9만 명의 작은 도시다. 암스테르담에서 약 1시간, 헤이그에서 약 20분 정도의 거리다. 오버 투어리즘으로 인해 늘 붐볐던 암스테르담과 달리 도시 전반이 여유롭고 따뜻했다.

여기도 역시 네덜란드임이 느껴진다. 작은 수로를 따라 가게와 주택들이 옹기종기 늘어져 있었다. 그냥 무작정 수로를 따라 걷다, 마음에 드는 파란 문의 브런치 가게에 들어갔다. 충분한 햇살을 쬐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베르메르는 수로를 따라 산책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실제로 그는 평생 델프트를 떠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부유한 예술가들이 이탈리아와 같은 도시로 유학을 떠났던 것과는 너무 달랐던 삶이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작품은 사후에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수로를 따라 걷다보면 파란 문의 브런치 가게를 만날 수 있다.
한국에 부침개가 있다면 네덜란드엔 '더치식 팬케이크'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파란 도시는 단연 델프트일 것이다. 수로 옆 즐비한 작은 가게들은 영롱한 푸른빛을 띠고 있다. '델프트 도자기'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델프트는 도자기의 본거지는 아니다. 왕성한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네덜란드는 당시 동양의 도자기들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특히 인기가 많았던 중국산 청자는 가격이 상당하여 상류층의 전유물이 됐다. 이후 동양의 청자를 모방한 자체 도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서민들도 집안에 도자기 하나쯤은 사들일 수 있는 있게 되었다. 이때 이탈리아의 도예 장인들이 하나 둘 델프트에 이주해 오기 시작했는데. 델프트의 도자기 산업은 이때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모방으로 만들어진 도자기는 이후 자체적인 기술과 디자인으로 유럽 전역에서 사랑을 받게 된다. '델프트 블루'가 시작된 것이다.


영롱한 푸른빛을 뽐내는 델프트 도자기


그래서일까. 베르메르의 작품에선 유독 푸른색이 많다. 그 유명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푸른색의 터번을 쓰고 있다. '우유 따르는 여인'의 집 한편엔 델프트 타일이 벽에 붙여져 있다. '편지를 읽는 여인'은 푸른색의 잠옷을 입고 있다. 실제로 그는 '청색의 화가'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 어떤 화가도 베르메르만큼 섬세히 청색을 다루지 못한다. '델프트 블루'의 도시에서, '청색의 화가'는 그렇게 성장했고 그림을 그려나갔다. 델프트를 대표하는 마르크트 광장의 한편엔 푸른색의 심장이 있다. 그가 생전에 살았던 자리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대표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와 우유 따르는 여인(1658) / 출처 : 위키피디아


베르메르가 생전에 살았던 자리엔 푸른색의 심장이 놓여있다.


그가 세례를 받았다는 신교회의 종탑으로 올라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맞지 않은 곳 중 하나라, 구시가지가 고스란히 보존됐다. 델프트는 푸른색의 심장을 놓으며 이곳에서 40여 년을 살았던 17세기의 베르메르를 평생 기억하고 있었다. 베르메르는 그의 작품에서 지워지지 않는 델프트를 영원히 그려놓고 있다. 그리고 옛 그대로 보존된 구시가지가 '델프트의 풍경' 작품 그대로 남아있다. 가히 시간을 초월한 서로를 향한 사랑은 푸르르고 강렬했다.


베르메르가 세례를 받은 교회 종탑에선 구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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