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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비 Dec 07. 2021

콩나물밥과 아이의 비밀


어렸을 적 우리 엄마는 저녁마다 솥밥으로 갓 지은 밥을 해주셨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이면 늘 작은 압력솥을 꺼내셨다. 가스불 위에 압력솥이 올려지고 칙칙 소리를 낼 때면 심장이 두근댔다. 행여라도 솥이 터져버릴까 걱정됐다. 소리가 커질때즈음 엄마는 젓가락으로 톡 건드려 작은 틈을 냈다. 그 사이로 한참동안 뜨거운 수증기가 빠져나갔다. 칙칙 소리가 잦아들고 심장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뜨거운 김이 빠졌다고 바로 뚜껑을 여는 것은 아니었다. ‘뜸’ 들이는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고작 몇 분이지만  기다림은 늘 길게 느껴졌다.  수증기와 함께 온 집안에 퍼져나간 구수한 밥 향기 배고픔이 확 밀고 왔다.


  뜸 들이다
  절로 무르익도록 서두르지 않고 한동안 가만히 두다.


솥밥은 여러 가지 밥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폭신폭신한 밥과 바삭바삭한 누룽지, 구수한 누룽지까지.... 쌀로 만든 코스요리를 먹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몇 년 뒤부터 저녁밥상에는 전기밥솥이 해준 밥이 올라왔다. 엄마가 바빠지기도 했고 전기밥솥이 주는 편리함이 컸기 때문이다. 그 덕에 나는 더 이상 솥이 터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요즘 전기밥솥의 성능이 아주 좋다지만 가끔 그 때의 갓 지은 밥이 생각난다. 그럴 때면 싱크대에서 작은 돌솥을 꺼낸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금은 부재료를 넣은 솥밥을 더 많이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야채를 적게 먹는다 싶으면 꼭 '콩나물'을 꺼낸다. 밥이 콩나물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소박하지만 근사한 밥의 변주곡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콩나물밥을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아삭한 콩나물을 즐기고 싶어 밥과 콩나물을 따로 준비한다. 이때, 밥에 콩나물의 향과 맛을 충분히 담길 수 있도록 콩나물 삶은 물로 밥을 짓는다. 양념장도 간장과 참기름, 깨소금만으로 단출하게 만든다. 여기에 꼭 빠지면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계란 프라이다. 살짝 덜 익은 계란 프라이를 콩나물밥에 얹고 먹기 직전 노른자를 톡 깬다. 아이들에게는 버터를 넣어 고소함을 더해주기도 한다.


엄마 고백할 게 있어요


애들도 5살 정도부터 콩나물밥을 곧잘 먹었다. 양념장을 넣어 밥을 슥슥 비비는 것도 재미있어했다. 애들이 좋아하니 한 달에 두세 번은 식탁에 콩나물밥이 올라오곤 했다. 지난주에도 냉장고에서 콩나물을 발견하고는 돌솥을 꺼냈다. 그 모습을 본 아이가 한달음에 주방으로 달려왔다.


"엄마, 오늘 저녁은 뭐예요?"

"오랜만에 콩나물밥을 해 먹으려고"

"아.. 그래요?"


아이의 말에서 뭔가 찜찜함이 느껴졌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저녁을 먹을 때도 아이가 우물쭈물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아이는 곧 숟가락을 내려놓고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엄마, 사실 고백할 게 있어요"

 "그래? 편하게 말해봐"

"전.. 사실.. 콩나물밥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 지금까지 잘 먹어서 엄마가 전혀 몰랐네"

"엄마가 만드니 몇 년간 참았는데 더 이상은 안 되겠어요."


이. 럴. 수. 가. 콩나물밥을 싫어했다니! 아이의 말이 마치 반전 드라마의 결말 같았다. 우리 아이들은 늘 그릇을 싹싹 비워왔었었다. 하지만, 엄마가 수고롭게 준비하니 참고 먹어줬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자주 식탁에 콩나물밥을 올려왔다.


딸아이의 엄마를 생각해주는 마음과 고백을 하는 용기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말해줘서 고맙다고 하니 딸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비밀을 만드는 것보다 엄마한테는 좋고 싫은 것을 솔직히 얘기하고 싶었어요" 설익었다고 생각했던 9살 딸아이의 마음은 꽤 뜸이 잘 들어져 있었다.



 

<콩나물밥 맛있게 만드는 법>


1. 냄비에 넉넉히 물을 붓고 콩나물을 삶아요.

물이 끓을 때 콩나물을 넣고 2~3분 정도 삶아요. 뚜껑을 열어놓거나 닫아놓거나 하나만 해야 콩비린내가 나지 않아요. 소금을 넣으면 심심한 맛을 줄일 수 있어요.


2. 콩나물 삶은 물로 밥을 지어요.

콩나물 삶은 물을 이용하면 밥에 콩나물 향과 맛이 더해져요. 밥을 지을 때 다시마를 넣으면 감칠맛이 풍부해지고 윤기가 생겨요.


3. 밥이 뜸 드는 동안 양념장을 만드세요.

간장, 참기름, 깨소금을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대파, 양파, 고춧가루 등을 취향대로 넣어주세요.


4. 밥이 되면 콩나물과 잘 섞어서 그릇에 담아내세요.

계란 프라이, 버터 등을 넣으면 좀 더 풍부한 콩나물밥을 즐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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