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 둘째 날 - 무릎 통증 (D + 1)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새벽 6시에 모닝콜이 오지만, 전날 피곤해서 숙면을 취했는지 5시경에 눈이 떠졌다. 느긋하게 샤워를 한 후에 짐을 꾸린 후 아들을 깨워 자전거 복장을 착용하였다. 아침 일정은 6시 모닝콜을 시작으로 6시 반까지 호텔 로비에 짐을 내려놓은 후 호텔 조식을 하는 순서다. 첫날과 둘째 날은 모두 하워드 호텔에서 머무는데, 대만에서 제법 큰 호텔 체인이라고 한다. 시설도 깔끔했고 무엇보다 조식이 마음에 들었다. 아들과 나는 오늘 점심과 저녁에 나올 대만 특식을 두려워하며 배불리 조식을 흡수하였다. 느긋하게 먹을 시간은 없었지만 다행히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호텔 조식이었기에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조식을 마치고 호텔 앞에 모여 다 같이 준비체조를 한 후 오늘의 일정을 브리핑받았다. 역시나 중국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칠판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코스를 상상해 본다.
오늘의 일정은 신주를 출발하여 대만 중부의 타이청까지 이동하는 98Km의 코스다. 점심을 먹기 전까지는 평지를 달리다 후반부에 경사로를 오르는 코스이다. 아직 타이베이 근교여서인지 날씨가 여전히 흐렸다. 미리 레인부츠와 우비를 착용하고 라이딩을 시작한다. 타이베이를 빠져나와서인지 한적한 시골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어제 출발할 때 정밀하게 안장높이를 조정하지 않은 탓인지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느껴졌다. 오른 다리를 최대한 쓰지 않고 전기를 좀 더 쓰면서 주행을 했지만 한번 시작한 통증은 멈추지 않았다. 무릎을 쓰지 않고 자전거를 탄다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더구나 오전 평지코스에서는 전기자전거가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30Km의 속도를 내려면 다리에 더 많은 힘을 주어야 한다. 최대한 속도를 늦추고 뒤쪽에서 따라가 봤지만 통증은 여전하였다. 통증을 참으며 라이딩을 한 시간 남짓하니 어느덧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재빨리 안장을 1Cm가량 높여 본다. 자전거 피팅을 해봤다면 알겠지만 정밀한 피팅이 필요한 상황에서 안장을 1Cm 조정하는 것은 꽤 큰 조정이다. 오늘의 특별간식으로 대추가 나왔다. 처음 대만 대추를 보고 사과인 줄 알았다. 크기가 작은 사과만 했다. 맛도 사과와 비슷해서 과즙이 많고 달콤했다.
달콤한 쉬는 시간을 마치고 다시 라이딩을 시작하였다. 안장을 조정하니 무릎이 조금 편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통증이 있었다. 통증을 참으며 다시 한 시간을 달렸다. 대만 시골길이 참 멋졌다. 바람이 많은 지역인지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이 돌아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멋진 경치를 감상하며 한 시간 남짓 라이딩을 하니 도교 사원 같은 곳에 도착하였다. 샤론이 열심히 안 되는 영어로 설명을 해주었는데, 대만에는 어부들이 많고 그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사원에 여성 불상을 만든다고 한다. 엄밀히 불교는 아니니 불상은 아닌데, 전문지식이 없는 나에게는 불상과 비슷했다.
멋진 경치감상과 간식을 통한 에너지 충전도 중요했지만 무릎 통증해소가 더 중요했다. 자이언트 스테프 중에는 정비 전문 요원도 있다. 자전거를 끌고 가서 안장 위치를 뒤로 이동시켜 줄 것을 부탁했다. 정밀한 세팅을 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안장을 세팅해 본 경험으로 안장이 너무 앞쪽에 있었다. 안장을 뒤로 보내고 다시 1Cm가량 더 높여본다. 무릎에 무리가 온다면 안장을 다소 높게 하는 것이 방법일 수 있다. 안장조정을 마치고 다시 라이딩을 시작하였다. 무릎이 조금 편해지기는 했지만 통증이 한 번에 사라지지는 않았다. 다시 한참 라이딩을 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다행히 오늘의 점심메뉴는 마라탕이었다. 마라향이 강해 웬만한 다른 향은 잡을 수 있다. 작년까지 싱가포르에 거주하면서 마라를 즐겼기 때문에 마라는 자신 있었다. 하지만 마라마저도 기존에 익숙하던 맛과는 조금 달랐다. 그래도 마라향이 다른 향들을 잡아서 그럭저럭 먹을 수 있었다. 즐길 수는 없지만 배를 채울 수는 있었다. 그나마 음식들이 대부분 해산물이어서 조금씩 시도하면서 먹을 수 있었다.
점심을 마치고 다시 라이딩을 시작했다. 어느덧 남쪽으로 많이 내려와서인지 날씨가 맑아지고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바람이 많이 불기는 했지만 이제 우비 안쪽에 초경량까지는 필요 없었다.
오후라이딩은 산악지형이다. 전기자전거에게는 오히려 유리한 지형이지만 무릎에 부담이 있어서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최대한 오른 다리에 부담을 줄이면서 천천히 라이딩을 즐겼다. 오늘의 경사로도 만만치 않은 코스였다. 경사로를 마치자 몇몇 라이더가 추가로 전기 자전거를 결심한다. 처음부터 전기를 선택하기를 잘했다. 무릎의 통증만 아니라면 일반 자전거로도 소화해 볼 만한 코스이지만 무릎의 통증이라는 복병이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나온다. 오르막을 끝내자 10Km가량의 꽤 긴 다운힐이 계속되었다. 다운힐에서는 무거운 전기자전거가 잘 달린다. 특별히 페달을 밟지 않아도 되니 무릎에 부담도 없다. 신나게 한 시간 가량 라이딩을 즐기니 어느덧 타이청 시내로 접어들었다. 숙소로 가기 전에 자이언트 자전거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특별히 자이언트 본사의 꽤 높은 직책의 사람이 일행을 반겨주면서 특별 간식을 제공해 주었다.
덕분에 카스테라와 대만식 간식들을 맛볼 수 있었다. 한때 우니라나에서 대만 카스테라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대만 달달구리들이 대부분 일본스타일을 따라가기 때문에 대부분 먹을만 했다. 자전거 방물관은 자이언트의 역사를 잘 보여주었고, 자전거의 원리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어느덧 해가 넘어가고 있었고 바람이 많이 불어 날씨가 다소 쌀쌀해졌다. 날씨가 아주 정직해서 해 뜨면 덥고, 흐리면 추웠다. 자전거 박물관 앞에는 거대한 TSMC 공장도 있었다.
박물관에서 호텔까지는 5Km 남짓이었다. 금세 라이딩을 마치고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은 다 같이 스트레칭을 하고 라이딩을 마쳤다. 오늘 저녁은 호텔 앞에 위치한 대만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한다. 별로 기대되지는 않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식당으로 향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지만 역시나였다. 갖가지 대만 특식을 선보였는데, 대부분 손도 댈 수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자전거는 상당한 칼로리를 소모하는 운동이기에 잘 먹어야 한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음식과 흰밥 한 공기를 뚝딱한 후 먼저 자리를 뜬다. 만찬을 즐기고 있는 대만인들이 부러울 뿐이다. 사진으로 보면 그럴듯해보지만 향기를 맡는 순간... 무엇을 상상하던 그것과는 다른 독특한 맛을 선사한다.
숙소에 돌아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겨 온 컵라면을 아들과 하나씩 먹으니 그나마 살만했다. 호텔이 시내에 있다 보니 숙소 앞에 큰 약국과 다이소, 슈퍼가 있었다. 더 이상 무릎을 그냥 놔두면 안 될 것 같아서 약국을 찾았다. 테이핑을 해보려고 스포츠 테이프를 찾았으나 없었다. 파스와 무릎보호대를 하나 구입했다. 파스를 바른 후 일찌감치 잠을 청했다.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니 밤에 잠은 잘 왔다. 누우면 바로 꿈나라로 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