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 셋째 날 - 본격적인 라이딩 (D + 2)
셋째 날 아침이다. 오늘도 여지없이 6시 모닝콜이 오기 전에 일찌감치 눈이 떠졌다. 아침을 부족하게 먹으면 하루종일 후회가 된다. 호텔 뷔페를 조금이나마 느긋하게 즐기기 위해 일찌감치 짐을 꾸리고 내려갔다. 어제와 같은 하워드 호텔이어서 음식이 먹을만하다. 대만 음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우리가 보통 호텔뷔페에서 만날 수 있는 음식들이었다. 이른 아침이어서 힘들지만 나중을 생각해 최대한 배불리 먹어본다.
대만 중부를 넘어서니 날씨가 좋아진다. 작은 나라 대만에서 매일매일 바뀌는 다양한 기후를 경험하는 것이 흥미롭다. 타이베이가 있는 대만 북부지역은 홍콩과 비슷한 흐리고 비 오는 날씨의 연속이지만 가오슝이 있는 남부지역은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동남아 날씨가 펼쳐진다. 3일 차가 되니 이제 더 이상 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제부터는 햇빛을 걱정해야 한다. 뜨거운 햇살을 막기 위해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두건으로 얼굴을 감싼다. 햇빛에 그을리는 것을 유난히 싫어하는 아들은 두건을 두 개나 착용하여 완벽히 햇빛을 차단한다.
오늘의 코스는 타이청을 출발하여 찌아이(chiayi)까지 97Km의 코스이다. 대부분 평지코스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자전거 라이더에게 평지는 정말 좋다. 하지만 전기자전거에게는 불리하다. 더군다나 무릎에 무리가 온 상태여서 평지코스가 더 부담스럽다. 출발 전에 어제 구매한 파스를 바르고 무릎보호대를 착용한다. 느낌이 나쁘지 않다. 무릎에 확실히 부하가 덜 간다. 안장도 1Cm 더 올린다. 올릴 수 있는 거의 끝까지 올린 것 같다. 안장을 올릴수록 상체가 앞으로 더 굽혀지면서 공격적인 자세로 바뀐다. 속도를 즐기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자세가 좋지만 이러한 자세는 핸들을 잡는 손목에 무리가 올 수 있다. 장거리 라이딩에서는 보통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지는 않지만 무릎에 무리가 온 상태여서 최대한 안장을 올린다. 확실히 무릎이 편하다. 하지만 걱정했던 대로 몇 시간 라이딩을 하자 손목에 무리가 오기 시작한다.
오늘도 아침체조에 이어 파이팅을 외치고 라이딩을 시작한다. 무릎도 편해지고 날씨도 좋아지니 달리는 맛이 난다. 오늘은 완주 인증서에 들어갈 사진을 찍는 날이다. 주최 측에서 마지막날 완주를 기념하면서 메달과 인증서를 준다. 한참을 달려 사진 찍기 좋은 큰 공터에 이르러 사진을 촬영하였다. 인원수가 많다 보니 사진 촬영에 한 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마땅히 햇빛을 피할 장소가 없어 다리 아래서 햇빛을 피하며 순서를 기다렸다. 신기하게도 대만사람들은 뜨거운 햇빛에도 특별히 햇빛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반팔 반바지를 입고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은 날이 지날수록 피부들이 붉어지다가 나중에는 검게 변했다. 많이 고통스러울 것 같은데, 햇빛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저마다 다양한 포즈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단체 사진도 멋지게 촬영하였다. 라이딩이 진행되는 매일 플래카드를 들고 단체사진을 촬영하였다. 오늘은 다들 점프를 하면서 멋진 사진을 남겼다.
사진촬영을 마치고 바로 옆에 있는 시장 골목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메뉴는 떡이었다. 내심 우리나라의 떡을 상상하며 오늘은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식당에 앉았다. 하지만 나의 상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쌀이 주 재료라는 것만을 빼면 우리가 먹는 떡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릇에 담겨 나온 떡은 두부와 같은 식감인데 맛은 아주 오묘했다. 그냥 달콤하게 설탕만 넣었으면 좋았을 텐데, 각종 향신료를 위에다 부어서 같이 나왔다. 대만 음식에서 흔하게 나는 향이었는데 한입 베어무니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샤론이 아주 유명한 음식점이라면서 맛이 좋다고 부족하면 더 시키라는데... 참 힘들다. 메뉴에는 돼지피 수프도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선짓국인데 대만사람들은 별미라면서 떡과 선짓국을 맛있게들 먹는다. 선짓국은 도저히 시도해 볼 수 없는 향이 진하게 올라왔다. 사진으로 보면 시도해 볼만도 하지만 막상 향을 맡으면 먹기가 참 힘들다. 우리 음식 같으면 특별히 맛있을 고기가 특히 더 먹기 힘들다. 고기요리에서는 여지없이 잡내가 나거나 잡내를 잡기 위한 오묘한 향이 올라왔다. 오늘 점심도 꽝이었다. 앞으로 대부분의 점심, 저녁이 꽝으로 이어지지만 오늘은 조금 심했다. 같이 식탁에 앉은 대만사람들이 너무 적게 먹는다며 걱정을 해준다. 고맙지만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바나나로 허기를 채워본다.
어차피 먹을 수 없는 음식이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를 둘러본다. 물건이나 먹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좀 있었다. 거리에 알록달록한 등을 매달아서 나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알록달록 꾸며놓은 것이 일본 분위기가 난다. 대만은 중국과 일본을 적당히 섞어놓은 것 같다. 도심에는 일본 음식을 파는 식당도 많았는데, 투어 중에 방문하는 식당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대만 전통 음식을 파는 가게들 뿐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이제 본격적으로 기온이 올라갔다. 외투를 전부 벗어 버리니 이제야 꿈꾸던 라이딩이 시작된다.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나무, 우리나라와 비슷한 듯 다른 이국적인 풍경을 감상하면서 리이딩을 한참 즐기니 어느덧 쉬는 시간이다.
이번 간식은 아이스크림이다. 쉬는 시간을 즐긴 장소는 예전 설탕공장 자리라고 하는데, 지금은 관광지가 되었다. 아이스크림은 평범한 아이스크림이다. 익숙한 맛이다. 하지만 익숙한 맛이 무섭다.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점심을 거의 굶다시피 한 아들은 남은 아이스크림 하나를 더 먹는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힘이 난다. 역시 힘들 때는 당이 들어가야 한다. 힘을 내서 라이딩을 이어간다. 손목에 무리가 오기는 시작했지만, 무릎이 편하니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라이딩에 집중하고 있으면 어느새 서포트카를 운전하는 샤론이 앞에서 자리를 잡고 라이딩하는 모습을 한 명씩 찍어서 추억으로 남겨주었다.
대만에 도착하기 전에 아들이 감기에 걸려서 걱정을 했었다. 다행히 아들은 라이딩 첫날부터 감기증세가 사라졌다. 하지만 아들과 며칠을 같이 붙어있어서인지 3일 차부터 나에게 감기증세가 시작되었다. 콧물이 계속 나오고 기침도 이어졌다. 무릎이 괜찮아지니 이제 감기가 시작된 것이다. 열도 조금 오르기 시작해서 진통제를 하나 먹고 라이딩을 이어갔다. 최상의 컨디션으로도 하루 100Km 라이딩은 체력적으로 버거운데,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로 라이딩을 이어가니 몸에 무리가 온다. 하지만 중도 포기는 없다. 이를 악물고 달린다. 정신이 몽롱하다. 무아지경으로 라이딩을 하다 보니 어느덧 오늘의 마지막 쉬는 시간이다. 아담한 호수가 있는 공원에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호빵과 두유를 간식으로 준비해 줬다. 두유는... 음... 그냥 두유다. 하지만 호빵은 안에 넣은 고기 소를 대만 특유의 향신료로 양념하였다. 아쉽지만 호빵은 한 잎만 베어 물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두유만 마신다. 다행히 두유는 나쁘지 않다.
쉬는 시간을 마치고 짧은 라이딩을 하니 숙소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하워드 호텔이 아니었다. 치아이 메이슨 호텔(Chiayi Maison de Chine hotel)이다. 입구부터 중국분위기가 진하게 풍긴다. 다 같이 체조를 하고 호텔에 체크인을 한다.
오늘 저녁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는 날이다. 어차피 줘도 못 먹기 때문에 차라리 저녁을 안주는 것도 괜찮았다. 구글지도를 검색해 보니 근처에 죄다 중국식당뿐이고 햄버거는 조금 걸어야 했다. 감기기운이 살짝 돌아 그냥 호텔에서 쉬고 싶었다. 비상식량으로 챙겨 온 컵라면으로 대충 저녁을 때우고 진통제를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