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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부터 혼밥까지, 밥에 진심인 민족 이야기

밥심으로 사는 우리, 함께 먹는 밥이 곧 행복이다!

by JOYCOCO

"밥 먹었어?" 이 말 한마디에 대한민국 사람들의 '밥'에 대한 진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안부를 묻는 가장 흔한 인사말이고, 심지어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는 말은 진짜 당장 밥 먹자는 의미가 아니어도 꼭 하는 정겨운 인사말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명절에 오랜만에 만난 친척에게 건네는 첫마디가 되기도 하고, 어색한 직장 동료에게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묻기 전 어색함을 누그러뜨리는 완충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밥은 그저 끼니를 넘어선, 특별한 무언가이다.


밥=쌀? 진정한 쌀 사랑꾼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에게 밥은 곧 쌀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세끼 내내 쌀밥을 든든하게 먹었으니, 자연스럽게 주식과 부식이라는 독특한 밥상이 차려진다. 구수한 된장찌개에 하얀 쌀밥 한 숟갈, 혹은 갖가지 나물과 고추장을 넣어 비빈 비빔밥은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이쯤 되면 '쌀 사랑꾼'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이다! 조선 시대에 우리나라에 표류했던 네덜란드 사람 하멜도 깜짝 놀란다. 한국 사람들이 밥을 어찌나 많이 먹는지 기록에 남겨놨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의 하멜 표류기에는 조선 사람들이 "끼니마다 밥을 솥째로 퍼 먹고도 부족해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한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고된 농사일을 하려면 밥심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침, 점심, 저녁은 기본이고, 농번기에는 중간에 막걸리 한 사발과 함께 먹는 새참에, 밤늦게 출출할 때 먹는 밤참까지! 하루에 여섯 번 밥을 먹기도 했다니, 정말 밥이라면 질리지 않는 민족이었나 보다. 이렇게 쌀을 중심으로 한 식문화는 단순히 우리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것을 넘어, 유사시 국가의 식량안보를 굳건히 하는 기반이 되어왔다. 쌀 자급률을 유지하는 것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밥그릇이 줄어든 웃픈 역사


하지만 밥에 대한 넘치는 사랑도 한때는 '웃픈' 역사를 만든다. 경제 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 정부에서는 쌀 소비가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다. 당시 식량 자급률이 낮아 쌀 수입이 불가피했던 상황이었으니 이해는 가지만, 그래서 세상에나, 밥그릇 사이즈를 확 줄이는 정책까지 펼친다! 당시 '절미운동'의 일환으로 학교에서는 '혼식의 날'을 정해 잡곡밥을 의무적으로 먹게 하거나, 음식점에서는 밥그릇을 작게 만들어 사용하도록 권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쌀 소비량을 줄이려고 면 요리 소비를 장려하고, 밥에는 잡곡을 섞어 먹는 혼식을 권장하는 등 다양한 노력이 펼쳐진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보리밥 먹고 힘내서 경제 개발하자!'는 구호가 나올 법도 했다.


혼밥 시대, 우리의 행복은 안녕한가요?


요즘은 쌀 소비량이 예전 같지 않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70년 136.4kg에서 2022년 56.4kg으로 크게 줄었다고 한다. 서구식 식단이나 간편식, 다양한 외식 메뉴가 넘쳐나면서 쌀밥이 아니어도 맛있는 게 천지니 말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렇게 식문화가 바뀌면서 우리나라의 행복 지수가 슬그머니 내려갔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2024년 3월 발표된 '2024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43개국 중 52위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순위가 소폭 하락하기도 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혼밥 문화의 확산이 지목되고 있다.


'혼밥'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왔을 땐 좀 어색했다. 혼자 밥 먹는 걸 좀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꺼려하는 분위기였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혼자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는다는 것을 쉽게 상상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먼저 혼밥 문화가 퍼지는 걸 보면서 '어휴, 너무 쓸쓸한 문화 아니야?' 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놀랍게도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혼밥 횟수가 일본을 훌쩍 넘어서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주일에 타인과 저녁 식사를 하는 횟수가 평균 1.6회에 불과하다는 보고서 내용도 이를 뒷받침한다.


"언제 가장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사람과 함께 밥을 먹을 때'라고 답한다.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선다. 명절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갈비찜과 잡채를 나누어 먹는 풍경, 퇴근 후 직장 동료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잔 기울이며 고단함을 푸는 시간, 사랑하는 연인과 로맨틱한 저녁 식사를 하는 순간들, 이 모든 것이 바로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다. 특히 한국인에게는 함께 밥을 먹는 것이 단순히 밥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유대감을 쌓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밥상머리에서 오가는 대화 속에서 가족의 정을 느끼고, 친구들과의 우정을 다지고, 동료들과 유대감을 형성한다. 혹시 지금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개인주의가 이런 식문화의 변화에서 온 것은 아닐까? '우리 함께 잘해보자'는 끈끈한 공동체 의식이 바로 밥상머리에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그 가치를 깨닫곤 한다. 문득, 언젠가 지금 내 옆의 소중한 사람과 함께 밥을 먹지 못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전쟁이나 재난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올 수 있는 헤어짐을 말이다.


요즘은 식사 전에 마치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스마트폰을 들고 SNS에 올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을 찍기 전에 음식에 손을 대었다가 와이프에게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내 옆에서 같이 식사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나 음식 자체의 맛과 향에 집중하기보다는, 내가 어떤 음식을 먹는지 온라인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커진 현실이 때로는 슬프게 느껴진다. 모처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만큼은,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식사 자체를 온전히 즐겼으면 좋겠다.


나중으로 미루지 말자. 당장 오늘 저녁은 어떤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밥 한 끼 나누면서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껴보자. 밥상머리에서 함께 나누는 따뜻한 온기로 가득한, 소소한 행복을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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