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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Sep 27. 2022

2019.10.03

#장례미사

돌아가신 분은 언제나 일상의 다양한 순간에서 불현듯 생각난다. 특히 나는 엄마가 좋아했던 음식을 먹을 때 항상 엄마가 떠오른다. 오늘은 군밤과 잔치국수를 먹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그런데 엄마를 떠오르게 한 음식이 더욱 영양가 있는 음식이 아니라서 서글펐다.


엄마는 정말 맛있는 음식을 드시면 꼭 다음에 누구와 같이 가야 한다고 이야기하시고는 했다. 그래서 나도 맛있는 것을 먹다가 엄마가 생각나면 포장해갔고 만약 그럴 상황이 안 될 때는 나중에 꼭 같이 갔다. 엄마와 여행하면서 같이 음식을 먹고 함께 보낸 시간이 『엄마 딸 여행』이라는 책으로 묶일 수 있었던 것은 엄마와 쌓은 많은 시간 덕분이다.     


오늘 아침에는 엄마의 장례식을 치렀던 병원에서 다른 분의 장례미사가 있어 다녀왔다. 엄마의 장례미사는 내가 다니는 성당 본당에서 드렸기 때문에 장례식장 안 예식실에서 드리는 장례미사는 처음 참석하는 것이었다. 출관 후 관을 앞에 두고 미사를 드리는 장례미사. 육신의 몸으로 마지막 드리는 미사다. 그래서일까? 예식실에서 장례미사를 드리며 엄마가 매주 가시던 성당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마무리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다. 자주 가던 장소에서 사랑했던 이들과의 고별식.


장례식은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며 치르는 마지막 행사다. 그래서 장례식에서도 그리고 살아계셨을 때도 못해드린 일이나 아쉬운 부분을 떠올렸을 때 더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 같다.     

엄마의 장례식과 장례미사를 생각하면 그저 감사하다. 장례식장에서 보내는 시간도 부모가 자식에게 남기는 정신적 유산, 선물과 같다. 장례미사는 엄마가 본당 신부님을 비롯해 많은 분과 교류하며 사랑을 나누셨고 복을 지으신 것을 고스란히 다 받고 가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더 이상 무언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태에서의 끝과 마무리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에 나조차도 놀라웠다.      


오늘 장례미사에 참석하고 와서인지 김소연 시인의 『한 글자 사전』에 담긴 ‘관’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생각났다.      

처음 들어가 눕지만 영원히 눕는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영원히 혼자가 된다. 가장 차갑지만 어쩌면 가장 따뜻할지도 모르며, 가장 딱딱하지만 어쩌면 아늑할지도 모른다.

-김소연, 『한 글자 사전』, 마음산책, 37쪽     


나이가 들면서는 지인의 장례식에 참석할 때도 있고 내가 많이 좋아하던 분이 돌아가셨다면 조문은 물론 장례예식에도 참석하기도 한다. 그 시간을 통해 상대에 대한 마음도 사랑도 그를 사랑했던 이들과 함께 지켜보고 겪어낼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우리도, 나도 너도 그렇게 죽는다고 깨닫는다.


장례식은 떠나는 사람이 우리에게 각자의 삶에 대한 의미를 남겨주는 장이기도 하다.     

장례미사는 누군가 세상을 떠났기에 드리는 미사지만, 슬픔만 있지는 않다.

그 안의 은총, 죽음 너머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진정으로 인간을 다시 살게 하는 미사이기도 하니까.


엄마를 아끼던 분의 리스가 엄마의 관 위에 놓여있었다.



2019년 4월 26일 세상 하나뿐인 엄마가 돌아가신 뒤

인스타그램에 엄마의 세례명을 딴 #로사리아의선물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란 사랑하는 대상을 불멸화하는 일' 이란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말을 아낍니다.

이제, 세상을 떠난 엄마이지만 엄마와 나눈 시간, 말과 행동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글로 남겨둡니다.


훗날, 엄마를 잃게 될 많은 딸들과도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 10회 브런치북 응모를 위해, 지난 글을 정리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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