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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Nov 08. 2020

017

어느 봄날의 마라톤을 위한 운동 여행

경주로 떠난 운동 여행

-경주 벚꽃 마라톤 참가를 위한 봄의 경주 시간     


글로 배운 달리기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연수

이 두 작가의 공통점은 마라톤을 사랑하며, 마라톤을 소재로 글을 쓴 적이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특히 김연수 작가의 책 《지지 않는다는 말》을 좋아한다.      


<봄에 달리기를 하다 보면 수없이 많은 꽃들을 만난다. 그게 경이로워서 힘들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 어떻게 겨우내 헐벗은 흐린 빛으로 서 있던 나무들 몸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빛깔의 꽃들이 터져 날 수 있을까?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세계가 얼마나 시시각각으로 변해 가는지, 그리하여 이 세계가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있는지 알게 된다. 그런 세계 안에서 내가 달린다. 그런 세계 안에서 내가 변하고 있다. 나는 꽃나무처럼 여전히 자라고 있는 셈이다.>

-《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마음의 숲, 2012      


나는 책을 통해 달리기를 배우고, 달리기에 막연한 환상을 품게 되었다. 김연수 작가의 달리기, 마라톤 체험과 사랑을 이 책 한 권에서 고루 느끼며 책을 덮을 땐 좀 뛰어보고 싶어 졌다. 이 글에서 묘사한 마라톤의 매력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서, 별다른 준비 없이 <나이키 우먼스 하프 마라톤>에 신청했었다. 그렇게 나의 인생 첫 마라톤은 하프 마라톤이 되었다. 대회는 5월인데 무려 4개월 전인 1월부터 신청을 받고, 그것도 순식간에 마감되며, 또 5만 원의 참가비가 있다는 것도 그저 신기하고 놀라웠다. 책을 통해 마라톤에 관심 가지게 되니,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기록보다 완주를 목표로, 또 글로 읽은 감정을 직접 체험해보고 싶단 마음에 훈련은 많이 하지 못하고, 실전에서 처음으로 하프 길이를 겨우겨우 뛰었다. 왠지 손이나 몸에 무언가 있으면 불편할 것 같아서, 핸드폰도, 이어폰도 다 짐 가방에 넣어 보관소에 넣고 말이다 (혼자, 첫 출전에, 음악도 없이 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물론 그래서 주변의 소리를 듣고 사람들을 관찰하며 뛸 수 있었지만 힘들었다. 정말!     


마라톤은 아침부터 일정 시간 교통을 통제하고, 차도를 달리는 코스다. 평소에는 차의 세상인 그 길 위를 뛰고 있다는 것도, 또 모두 같은 옷을 입고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너무 힘들어 숨을 고르고 있을 때도, 저 먼 곳에서부터 같은 색 옷을 입고 뛰어오는 이가 있다는 것에 힘이 났고 또 조금 더 힘을 내는 게 가능했다.      


마라톤을 통해 나의 한계를,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노력하는 마음을, 잠깐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가는 경험을 했다.


“파이팅! 이제 거의 다 왔어요!”,

“(배번의 내 이름을 보고) 이지나 파이팅!”,

“조금만 더 가면 돼요. 힘내요!”      


음수대에서 음료를 따라주는 이, 응원하기 위해 악기를 들고 나온 이, 그냥 길을 걷다가 잠시 멈춰 서서 응원하는 이들이 나를 조금 더 뛸 수 있게 했다. 알지도 못하는 타인의 응원을 받을 수 있는 것, 그저 이 길 위에서 달리고 있다는 이유로 응원을 받고 있다는 것은 마라톤이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     

매 km마다 안내판을 보면서는 ‘아니, 아직 2km도 안 됐다고?’, ‘이제 겨우 12km야?’, ‘반 넘었으니 파이팅!’ 뭐 이런 혼잣말을 몇십 번 하고 나니 20km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결승점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땐 그 수를 보며 “조금만 더 가면 돼!”라며 나에게 끊임없이 말했다.      


마라톤을 한 번 뛰어보면 왜 그렇게 사람들이 ‘인생’에 많이 비유하는지 알게 된다. 오롯이 자신의 두 발과 다리를 움직여서 출발선에서 결승선까지 가야 하는 것. 누군가와 같이 달린다고 해도, 그 사람이 나를 데려갈 순 없으니 스스로 걷고, 뛰어야 하는 것. 인생이 그렇듯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것, 시작과 끝을 온전히 같은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뛰는 동안은 함께라는 것 등을 달리며 느낄 수 있다(나의 첫 하프마라톤은 2시간 55분. 완주가 목표였기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이 시간 동안 걷고, 뛴 나를 대견히 생각한다).     


경주, 벚꽃 그리고 마라톤      


하프 마라톤을 뛰고 난 뒤에 마라톤의 매력은 알게 됐지만 그만큼의 거리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거의 10km 마라톤을 찾았는데, 우연히 경주에서 벚꽃 만개한 시기에 열린다는 <경주 벚꽃 마라톤>을 알게 됐다.


경주와 벚꽃, 그리고 마라톤이라니! 이 마라톤은 보문단지에서 시작해, 보문호수를 한 바퀴 도는 코스가 포함되어 있다. 봄의 한가운데, 벚꽃과 호수라니! 그냥 무조건 가고 싶었다. 경주 벚꽃 마라톤은 풀, 하프, 10km, 5km까지 다양한 거리를 선택해서 달릴 수 있다.      


혼자 버스를 타고 뛰러 갈 용기까진 없어서 작업실 친구들에게 물었고, 그중 C와 함께 오직 마라톤만을 위해 경주로 떠났다. 우리는 무리하지 않고, 그저 벚꽃 경주를 가까이서 느낀다는 심정으로 10km 구간을 선택했다. 이번 경주는 오직 마라톤을 위한 여행이었기 때문에 숙소도 대회가 열리는 보문호수 근처 호텔로 잡았고, 끝나고 난 뒤에 씻고 올 것을 생각해 체크아웃 시간만 확인했다.     


경주 벚꽃 마라톤 D-day!


이 모든 것의 시작이 김연수 작가의 글이었다니 스스로 웃음이 났다. 하루 전 도착해 우리가 묵은 경주 현대호텔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보문호가 보인다. 마라톤 시작점인 보덕동 주민센터 옆 헬기장은 숙소에서 차로 5분 거리. 마라톤을 뛰는 날 아침으로는 방울토마토 몇 개와 바나나 하나를 나눠 먹고 출발 장소까지 이동했다.      


4월의 경주는 생각보다 추웠고, 나도 친구도 모두 마라톤 주최 측에서 준비한 티셔츠만으로는 추워서, 겉옷을 입고 뛰었다.


마라톤은 같이 달리기 시작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속도로 함께 갈 순 없다. 각자 자기의 속도, 자신의 페이스로 가야 한다. 함께 간 친구는 마라톤 생애 첫 출전이었는데, 평소 운동도 꾸준히 했고, 또 마른 몸, 적당한 키가 마라톤에 참 잘 맞을 것 같아서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나는 오히려 키가 크고 덩치가 있어서, 마라톤 기록이 그다지 좋을 순 없는 사람인데 글로 배운 마라톤을 느끼려고, 여행지에서 달려보기 위해 뛰었다.) 친구도 흔쾌히 함께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경주까지 오게 됐다.     


간단히 준비 운동하고, 출발 소리와 함께 풀 코스를 뛰는 이들부터 시간 차이를 두고 출발했다. 생각보다 추운 날씨여서 그랬을까, 시작부터 힘이 들었다.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친구까지 같이 왔는데, 그 친구는 마라톤 첫 출전인데 내가 그 친구보다 더 늦으면 어떻게 하지?’, 뭐 이런저런 생각이 드니 더 힘들게 느껴졌다. 1km마다 있는 표지판이 왜 이리 더디 보이는지. 어느 순간엔 벚꽃과 호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급기야 반쯤 지났을 때 다리에 쥐가 났다. 어쩔 수 없이 걷고, 뛰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분명 다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뛰는 동안에는 혼자 뛰었던 마라톤보다 왠지 힘이 났다. 수많은 사람 중 친구가 있다는 것, ‘같이 이 길을 뛰고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됐다.      


음수대에서 마시는 물 한 잔이 정말 달게 느껴지고, 처음 출발선에 같이 있던 이가 내 주변에 있으면 이름 모르는 사람이지만 왠지 반갑고, 그 사람도 응원하게 된다. 특히 이 경주 벚꽃 마라톤은 일본 요미우리 신문 서부본사에서 주최하기에 일본인 참가자도 많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에는 일본 투숙객도, 일본 여행사나 안내문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경주에는 특정 어느 지역에만 벚나무가 많은 것이 아니라 시내 전체 가로수가 대부분 벚꽃이다. 특히 보문호 주변의 나무도 전부 벚꽃이라 호수에 어우러진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눈이 거의 오지 않는 경주이지만 벚꽃 마라톤을 뛰다 보면, 봄에 내리는 눈을 맞을 수 있다.      


풀코스는 경주의 문화유적을 보면서 달리지만, 5km와 10km는 보문 호수, 관광단지 주변을 뛴다. 처음부터 끝까지 벚꽃 구경을 할 수 있다는 뜻. 매년 거의 같은 코스이기에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꽃피는 정도와 나의 달리기 실력에 따라 늘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도 경주 벚꽃 마라톤의 장점이다.      


마라톤은 여느 운동과 다르다. 그저 완주했다는 이유로 환호받을 수도 있다. 기록이 목표가 아니라, 완주가 목표라면 끝까지 달리고 난 뒤의 뿌듯함이 엄청 크다., 친구와 함께 뛸 때는 그 길 위에서 함께 뛰고 있다는 것,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과 믿음에 마음 한편이 든든하다. 다 마라톤이라는 운동이 느낄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달리기는 몸이 좋아야 하는 운동이 아니라, 일단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 시작하면 좋은 운동인 것 같다. 달리면, 일단 기분이 좋아지고, 운동화만 있으면 할 수 있으니 크게 돈도 들지 않는다. 특히 좋은 계절에 멋진 풍경을 옆에 두고 달리면 힘들어도 그렇게 힘들지 않다는 것도 경험할 수 있다.      


마라톤은 한 번, 한 번 뛸 때마다 만족감이 크고, 매번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겨우겨우, 힘들게 뛰었어도 돌아보면 그 힘들던 길 위의 뜀 기억이 다시 달릴 수 있는 힘을 준다. ‘조금만 더’, ‘한 번 만 더’ 힘을 내게 하며 혼자가 아닌 시간을 체험한다.     


경주라는 도시의 매력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

평소 경주를 생각하면 이런 문화유산을 떠올리지만 내가 생각하는 경주는, 단순히 과거를 만나기 위한 여행지가 아니었다. 대릉원 지구에선 능이 가까이 있어 삶과 죽음에 대해, 그 공존에 대해 한 번쯤 깊게 생각할 수 있다. 경주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 어떤 도시도 우리에게 시간의 유한성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보여주지 않지만 경주는 그것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도시일지도 모른다.     


봄날, 봄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는 그때 내 가슴이 이렇게 뛸 수 있고, 또 두 발을 딛고 달릴 수 있음을 느끼러, 감동하러, 경주로 떠나보자.


달리러 가는 여행, 그 시작이 경주 벚꽃 마라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참여한 행사: 경주 벚꽃 마라톤대회

www.cherrymarathon.com     

-추천 시기: 매년 4월 첫 주 토요일. (마라톤 일정은 매년 1월에 공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직접 그곳을 뛰어보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누구나 도전을! 마라톤도 하고, 여행도 하고 싶은 이라면 누구나.      

-책: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나에게 마라톤의 불씨를 틔워준 분은 김연수 작가의

책이었다.

마라톤이 대체 어떤 감정일지 궁금한 사람, 운동을 글로 배우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노래: 윤상 3집 앨범 <Cliche> 속 달리기

윤상 작곡, 박창학 작사의 노래.      

-챙기세요: 4월 초의 경주는 아직 완연한 봄은 아니다. 원래 꽃가루가 날리고, 봄이 깊어지기 위해서 부는 바람은 좀 차갑다. 대회에서 나누어 주는 (집으로 배송되는) 티셔츠가 있지만, 반드시 그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겉옷으로 잠바도 필요했으니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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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마감하고 출간 예정이던 원고는 이런 형태로 국내 여행을 다룬 여행이었다. 2018년이, 저렇게 함께 달리고 같이 여행하는 것이 먼 과거의 일로 느껴진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달리기와 마라톤은 어떻게 변해갈까.


몇몇 사람들과 랜선 독서모임 <#운동을책으로배웠어요> 의 첫 주, 그 첫 번째 책이 김연수 작가의 <지지 않는다는 말>이었기에 이 책을 다시 보며 이 원고를 다시 본다. 글이 나를 달리게 하고, 글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체험을 이 책을 통해 받았다.


코로나로 인해 계약 해지 후 그 원고 중 살릴 수 있는 글, 다시 살펴보며 또 다른 형태로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한다.


달리기, 평생의 취미이고 싶은 맘!

경주는 봄날 벚꽃마라톤 외에도 가을 마라톤도 늘 열리는 곳이었다. 2018년엔 봄에 벚꽃 마라톤 10km, 2019년에는 가을날 작업실 동료 셋과 함께 하프마라톤 도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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