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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Dec 01. 2020

040

나의 안부를 묻고, 들어주는 이와 함께 한 1년

작년 12월, 한 심리상담소의 그룹 상담을 하게 되고 개인 상담을 신청해 약 4개월 동안 10번에 걸쳐 만나고, 상담 마친 뒤 두 번의 만남을 가졌다. 지난주에 하루 올해가 가기 전, 선생님을 뵈러 다녀왔다.


상담 가기 전 내가 그곳에 가서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보면, 적어보면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거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중요한 것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이번 달의 큰 일을 치른 뒤에 그 경험에 대해, 그것이 나에게 어떤 것을 남겼는지, 내가 느낀 감정은 무엇인지 •• 등을 묻고, 대답했다.


결혼하지 않았지만 이미 결혼한 사람처럼 가족 안에서 어떤 역할을, 임무를 수행하는 나. 인간 이지나, 둘째 딸 이지나, 여자 이지나, 천주교 신자로의 요안나, 언니의 동생, 동생의 누나, 친구들의 사려 깊은 친구, 늘 배려가 깊은 사람으로의 나.


내가 나를 어떤 한 역할에 가두어 산 것은 아닌지, 왜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열심히 하고 그것에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거나, 삐져있기도 한 지...


긴 시간 동안 감정을 이야기하며 어떤 상황을 설명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보이는 화난 그 순간이 아니라, 그 순간 안에 있는 다른 감정 ㅡ질투, 분노, 억울함, 나만 손해 보는 느낌 등등을 마주할 수 있었다. 외면하지 않고 완벽히 마주 봐줬을 때 보이는 것들이 있었음을, 지난 열두 번의 시간을 통해 알게 됐다.



며칠 전엔 선생님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긴 여정의 상담 과정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분명 1년 전의 나보다 조금 더 나와 친해지고, 나의 마음을 돌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가 어떤 부분에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지, 싸움 이후 결국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싸움을 위한 말다툼이 아니라 더욱 잘 소통하고 잘 지내려는 관계의 노력에 대해서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서로 선택한 사람과의 시간 -
오늘 돌아오는 길에도 그렇고, 보다 용기 내어, 제 마음 안에 먼지 쌓인 곳 또는 후미진 곳-제가 바라봐 주지 않았던 곳들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마주한 시간이었어요.


짧고 굵게, 또 명확하게 생각하고 말해보는 것을 2020년에 배운 것 같아요.


올 한 해, 보통의 저와는 다른 선택을 해보고, 낯선 나를 만나보는 것에 용기와 힘을 내는데 이곳에서의 시간이 큰 도움이었습니다.


용기 낸 1년의 여정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이와의 만남. 내가 낯설어하는 나 여도, 그 점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존재와의 시간에 큰 힘을 받은 것 같다.


심리 상담가와 내담자는 결국 내담자가 스스로, 다시 자신을 찾아오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되는 걸 환영해야 하는 사이인 걸까. 그 사이 서로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 친해지기에 거리를 두어야 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나누는 대화 속에 진정한 용기가 심어진다는 것을 배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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