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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Nov 30. 2020

039

11월, 위령 성월을 마무리하며

특집/참 소중한 당신

로사리아의 선물

엄마의 장례 여정을 통해 돌아본 삶의 의미


이지나(요안나) 여행작가, 「엄마 딸 여행」, 「성당 일기」 저자     


모든 자식이 겪는, 부모의 장례식     


2019년은 저에게 평생 잊지 못할 한 해입니다. 1남 2녀, 엄마와 가장 친한 딸이던 제가 엄마 (우명옥 로사리아)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렸기 때문입니다. 암 선고를 받으시고 1년 7개월, 마지막 한 달은 호스피스 병동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장례 여정이 오직 슬프기만 한 여정이 아니고, 슬픈 너머에 감사와 기쁨이 있음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지나야, 부모의 장례식은 모든 자식이 겪는 일인데, 네가 조금 일찍 겪게 되어서 마음이 아프네. 엄마는 이제 아프지 않은 곳으로 가신 거니까, 또 다른 형태로 만날 수 있을 테니 너무 슬퍼하지만 말렴.”

어떤 말로도 큰 위로가 되지 않던 장례식에서 저는 이 말을 가장 크게 마음에 담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해주는 분이 곁에 계심에도 감사했습니다.      

엄마의 영정 사진 앞에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시는 분, 투병을 거의 알리지 않으셨기에 놀라서 달려와 안타까워하시는 분, 멀리서도 엄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보기 위해 찾아주신 분…

저는 장례를 치르며, 그 며칠은 부모가 자식에게 지상에서의 마지막 선물을 주고 떠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문객을 통해 기억하고, 사람과 사람 속에 생생히 살아있는 한 인간을 마주 보고, 느낄 수 있게 되니까요.      


엄마는 가족은 물론 성당 분들과 주변 분들과 참 따뜻하고 깊은 인간관계를 맺으신 분이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엄마가 준 것, 엄마의 가장 큰 유산은 만나는 이, 가까운 분들을 모두 그저 그 역할로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 진정한 '인간'으로, 사람과 사람의 정을 쌓았던 점이란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동네 특성상 집 주변에 인사할 분들도, 또 도움받는 (주차, 청소, 택배 등등) 분들이 많았는데 그분들에게 늘 마음으로 다가가고, 또 필요한 것을 나눌 줄 아는 '따뜻한 사람' 임은 자식인 우리, 그리고 그 곁에 함께 지낸 수많은 이가 그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죽음 이후 지속하는 관계      


엄마는 평소 ‘~할 걸, 해줄걸’ 등으로 후회하는 일을 만들지 말라고 재차 말씀하셨었습니다. “무언가 나눌 수 있고, 해줄 수 있을 때 기쁘게 하라.”, 하시며 늘 행동으로, 실천하셨던 분이었습니다. 돌아가시기 몇 주 전부터는 거의 말씀을 안/ 못 하셨기에 TV에서 보고 들었던 ‘유언’은 들을 수 없었지만, 평소에 자주 하시던 이 말씀이 곧 엄마의 유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는 주민등록 등본을 떼면 엄마가 나오지 않고, 엄마의 차도 중고차로 정리했습니다. 이제는 직접 보고, 만질 수 없지만, 여전히 저는 엄마의 딸이고, 우리 가족이 그 차를 타고 다닌 기억은 생생하고 그것까지 팔게 된 건 아닙니다. 엄마 휴대전화는 아직 그 번호대로 있는데, 종종 아빠는 그리로 메시지를 보내십니다. 독백이라도, 읽어주는 누군가가 아니 읽는 이보다도 반드시 쓰고 전송하고 싶은 내용의 말과 글도 있는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죽음 후의 삶, 떠난 뒤에도 풍요롭게 이어지는 관계가 있다고 할 때, 그 뜻을 처음에는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미치 앨봄이 모리 교수님과 쌓아가는 그 관계가 저와 엄마에게도 이어짐을 느낍니다. 울 수 있을 때 울고, 울 수 있는 건 건강한 것, 또 울고 나면 개운한 거라고 엄마가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할 일     


11월, 저는 이달을 좋아합니다. 거리에는 온통 노랗고 붉은 단풍과 은행나무의 향연, 그리고 그 한 달 사이에 다 떨어지고 가벼워지니까요. 어쩌면 인생을 1년 12달 중 한 달로 함축할 수 있다면 그것이 십일월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천주교에서는 11월을 위령 성월로 지내니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고, 아직 살아있는 우리는 사랑하는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올해가 가기 전에 전할 수 있으니까요. 최근에는 이 책의 이 문장이 저를 따뜻하게 위로했습니다. 엄마가 이렇게 사셨던 것 같아서 미소 지어졌습니다. 딸에게 엄마는 평생 남아있고, 함께하는 존재이겠지요. 엄마의 선물, 엄마가 남겨준 정신적 유산을 잘 이어나가며 오늘도 하루를 살아갑니다.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다. 내가 남의 말만 듣고 월급 모아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한 것은 몽땅 다 망했지만,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한 작은 선행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남아있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다.’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2019.11 <참 좋은 당신> 특집: 그들이 모르는 단어      

이번 가을, 엄마 돌아가시고 두번째 생신에 맞춰 언니, 남동생과 함께 기부한 서울 숲의 벤치.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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