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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원 Oct 15. 2024

(04) 이제 학교 나오멘?

(단편소설) 열세 살 나의 연못 04




새 학기가 낼모레인데 학교에 급사(잡무원)로 있던 형님이 갑자기 제주시로 이사를 가게 되어, 마침 자리가 빌 참이었다고 다.


급사 형님은 나를 데리고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연장 정리법, 소각장에 불 놓는 법, 숙직실에서 밥 해 먹을 때의 주의사항, 선생들마다의 성정 등을 알려준 후, 연못 가장자리와 담장 사이에서 잠시 멈춰섰다.

그러곤 담장 아래 구석진 곳을 가리키며, 잡초를 베면 그곳에 버리라고 말했다.


“야, 겐디 너 이거 한번 피와볼래?”

(야, 그런데 너 이거 한번 피워볼래?)


형님은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보였다. 마치 나를 어린아이 보듯 하며, 설핏 비웃는 것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담배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선생에게 들켜 혹시라도 급사 일을 못 하게 될까봐 걱정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형님은 ‘농담이었져(농담이었다)’ 하면서 담배에 불을 붙이곤 길게 빨아들였다.


그러곤 멀뚱히 서서 지켜보고 있는 내 곁으로 다가와, 내 입술 사이에 축축하고 매지근한 담배 끝을 갖다 대고서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나는 형님이 한 것처럼 비슷하게, 숨을 들이마시는 시늉을……, 하자마자 속이 획 뒤집어지며 구역질이 우웩우웩 나왔다.

형님은 하하 소리 내어 웃은 후에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학생 때랑 이런 건 해보카허는 생각도 허민 안 된다이. 알아시냐?”

(학생 때는 이런 건 해볼까하는 생각도 하면 안 된다. 응? 알았냐?)


나는 눈물이 드렁드렁 걸려있는 두 눈을 꿈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숙직실로 나를 데리고 온 형님은 짐을 챙기며 양은사발과 헌 냄비, 슬리퍼, 새 칫솔 등을 나에게 쓰라고 준 다음, 내 얼굴을 한번 보고 뭔 말을 할 것처럼 하다가 하지 않고는 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더니 잊어버린 짐이라도 떠올리는 듯 잠시 문 앞에 서 있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곤 벌렸던 입을 음- 소리를 내며 다물더니, “감져. 잘 허라. (간다. 잘 해라.)” 는 인사만 남기고 밖으로 휙 나갔다.

     


나는 매일 동이 틀 무렵 일어나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게 이어진 학교 담장 아래 풀들을 깨끗이 벤 다음, 선생 교무실과 직원 사무실 바닥을 차례로 쓸고 책상 위와 창틀을 깨끗이 빤 걸레로 닦았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공부를 할 땐 교정 곳곳에 심어진 크고 작은 나무에 물도 주고, 부서진 의자와 책상도 고쳤다.

가끔씩 도시락을 못 싸온 선생이 있어 라면을 끓여달라고 하면 숙직실에 사다 둔 ‘롯데 왈순마 라면’을 끓여서 갖다주기도 하고, 교무실과 교실에 놓여있는 재가 수북한 재떨이를 수시로 비움은 물론 연못과 화단 근처에 떨어진 꽁초와 쓰레기들도 부지런히 주워 소각장 안으로 던져 넣었다.



1968년 출시했던 농심(당시 롯데공업주식회사)의 왈순마 라면



첫 번째 일요일엔 나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고 했던 수학 선생의 교실로 가, 요란한 소리를 내는 미닫이문의 도르래와 철사를 종일 연구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소리가 안 나게 고쳐놓았다.


그다음 주엔 대나무를 잘라다 위쪽에 모기장 조각 같은 것을 철사로 동그랗게 묶어 뜰채를 만든 후 연못으로 달려갔다.

그걸로 물 위에 수북이 떠 올라와 있는 이끼들과 물속에 빠져있는 꽁초들을 다 건져낸 후, 근처의 풀들도 싹 베어 담장 구석에 갖다 버렸다.

그래서인지 바람이 제법 선선하게 느껴지며 연못 물도 말가니, 드디어 수면 위로 하늘과 구름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이 연못은 웃뜨르(윗들녘) 마을 한가운데 있는 ‘빌레못(용암이 식어 바위처럼 굳어진 '빌레'에 있는 못)’과는 비교가 안 되게 작아도, 옆에 서 있으면 물속에 하늘과 구름이 너울거리며, 집에 살 때 동생들과 물가에 가 놀았던 일이며 명절날 이모가 한 줌 가득 쥐여줬던 사탕, 동네 아이들이 다 함께 경운기 뒤에 타고 가며 탈탈탈탈 움직일 때마다 몸을 위아래로 털면서 웃었던 일, 친척 집 제삿날 떡을 얻어먹었던 장면 등이 잔물결 위로 아련히 지나가곤 했다.



같은 국민학교를 나온 아이들 중엔 나를 보고 반가워서 달려와 “너 몇 반? 이제 밭에 안 강 학교 나오멘? (너 몇 반이야? 이제 밭에 안 가고 학교 나오니?)” 하는 아이도 있고, 나무에 물을 주고 있을 때 학생들 쉬는 시간이 걸리면 쫓아와서 같이 해주겠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물론, 내 얼굴을 빤히 보고도 본 척도 안 하며 지나가는 아이도 있고, 선생이 자기들한테 시킨 일을 나에게 대신시키려 드는 아이들있었지만, 그런 자잘한 일에 신경 쓸 턱이 없는 나다.


학교에 온 지 한 달쯤 되니, 공부 끝나고 집에 가기 전에 운동장에 남아 나와 말도 하고 철봉에 매달리며 놀다 가는 친구도 몇 명 생겼는데, 그중 하나가 자기는 동생이 없으니 내년에 내가 일학년에 들어오면 자기 교과서를 다 나에게 물려준다고 말하였다.

그 아이가 지금의 강 이장이다.


어느새 학생과 선생들까지 모두 집으로 돌아가면 운동장을 채웠던 떠들썩한 소리도 온데간데 없어지고, 아침에 동이 트던 하늘은 어느덧 석양으로 뒤덮여 운동장 모래들이 주홍빛으로 반짝인다.

그러면 나는 그 빛을 등에 지고 그날 먹을 저녁밥을 골몰하면서, 모래 위를 걸어온 수많은 발자국이 흔적을 남긴 교문 주위 시멘트 바닥을, 모래가 한 톨도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쓸고 또 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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