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너가 우리 밭 강 갈아도라
(단편소설) 열세 살 나의 연못 05
아침에 학교에 제일 일찍 나오는 사람은 수학 선생이거나 교감 선생이다.
풀을 이미 다 베고 교무실로 와 책상에 물걸레질을 하고 있으면, 수학 선생이 다르륵 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들어와 “벌써 햄시냐? (벌써 하고있니?)” 라고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처음 만난 날 생각엔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사람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학교에서 젤 어진 선생이었다.
그날은 내가 너무 절박해서 문도 요란하게 열어젖히고, 큰 소리로 ‘선생님!’하고 외치는 바람에, 선생도 일부러 ‘뭐냐!’ 하면서 역정을 낸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언제나 수학 선생 책상을 제일 먼저 닦아놓는데 선생이 나를 보며 지긋이 웃는 것을 보면 그것을 아는 눈치다.
그다음으론 “교문 사방이영 판찍허게 잘 쓸어 놓아서라. (교문 사방으로 깨끗하게 잘 쓸어 놓았더라.)” 하면서 교감 선생이 교무실에 들어오고, 잠시 후엔 나와 동갑인 교감 선생의 막내딸이 학생 중에선 젤 먼저 교문 안으로 들어온다.
선생 중에 학교에 제일 늦게 도착하는 사람은 거의 매일 체육 선생이다.
체육 선생은 술을 좋아하고 기분파인데, 내가 화단에 물을 주거나 의자를 고치고 있으면 어느새 으슥하게 다가와서는 주위를 서성이며 담배를 피운다.
할 말이 있으면 담백하게 하면 되는데 굳이 옆에서 연기를 펑펑 피워대며 이렇게 말한다.
“야, 이번 일요일에랑 너가 우리 밭 강 좀 갈아도라. 학교는 나가 나왕 직허크매.”
(야, 이번 일요일에는 너가 우리 밭에 가서 좀 갈아줘라. 학교는 내가 나와서 지킬테니.)
자기가 일요일에 학교에 나와 당번을 설 테니, 나더러 자기네 밭을 대신 갈아달라는 소리다.
잘 갈면 잘 간다고 일요일마다 불려 나갈 게 뻔한데,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가는 건 내 성에 안 차니, 나는 또 하는 수 없이 밭을 잘 갈아 주고 돌아온다.
그러면 체육 선생은 흡족해하며 집으로 가 또 술을 마시고 월요일부터 제일 늦게야 출근을 하는 거다.
얄밉기야 하지만, 내게 찾아온 엄청난 행운 즉, 어리다고 내쳐지지 않고 학교에서 임시 급사(잡무원)로 지낼 수 있는 이 행운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정도 치사함 쯤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에게는 ‘신문’이 있지 않은가! 으하하.
학교는 중앙지와 지방지 총 여섯 종류를 받아 보는데, 아침에 교감 선생이 제일 먼저 읽고 나면 종일 이 선생 저 선생 손에 돌아다니다 방과 후엔 이 책상 저 책상에 아무렇게나 올려져 있다.
그걸 다 모아 숙직실로 가지고 와 바스락한 종이 더미를 신문사별로 일면부터 가지런히 정리해서 위쪽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목각으로 철을 한다.
그러곤 교무실에 가서 탁 걸어 놓는데, 다음날 선생들이 출근하기 전에만 걸어 놓으면 되니, 할 일을 다 해놓고 저녁때 그걸 천천히 읽는 게 내 최고의 낙이다.
신문 속에는 도지사 이름뿐 아니라 우리 동네 대학생이 말했던 ‘세상 돌아가는’ 얘기가 다 들어있었다.
신문을 읽을 때마다 혼자서 빙긋빙긋 웃음이 나곤 했는데, 나중에 집에 갔을 때 동네에서 대학생을 만나게 되면 으쓱하며 나누게 될 이야기들이 점점 늘어갔기 때문이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