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나 신발 가져다도라
(단편소설) 열세 살 나의 연못 06
방과 후 무렵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지내기 시작한 이후 처음 내리는 비였다.
교문 주위의 모래는 쓸어봤자 금방 지저분해질테니 생략하고, 소각장에 불도 꺼져버릴 테니 건너뛰고는, 곧바로 교무실에서 신문을 모아 가지고 숙직실로 와 목각철을 시작했다.
어느덧 작업을 마치고 신문도 끝까지 읽었는데 어쩐일인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숙직자 명단을 보니 체육 선생 순번이었다.
선생이 오면 문을 열어주면 되니 일단 문고리는 걸었다. 그렇지만 등잔불은 꺼도 될지 망설여졌다.
희미한 빛이라도 새어나가지 않으면 운동장이 너무 어두워 연못가 길로 잘못 들어설까봐서였다. 절대 내가 어둠을 무서워하는 어린 아이라서가 아니다.
나는 이불을 펴고 벽에 기대어 앉아 라디오를 켜놓고 깜빡깜빡 졸면서 체육 선생을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라디오에서 지직지직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자정이 지나 방송이 끊어진 것이다.
‘체육 선생은 비도 오고 하니 또 어디 가서 술을 먹으며 숙직 날인 것도 잊어버렸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 라디오를 끄고 등잔불도 끄려는데, 창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야, 뭐햄나! (야, 뭐하니!)”
체육 선생이 아니라 교감 선생의 막내딸 목소리였다.
그때 불현듯, 어머니와 함께 학교에 걸어오던 날 어머니가 신신당부한 말이 떠올랐다.
“밤중에 누게가 문밖에서 불러도 세 번 불르기 전엔 절대로 대답허지 말고, 아명 뭐랜 추그려도 절대 날 밝기 전인 문밖으레 나가민 아니 된다이.”
(밤중에 누가 문밖에서 불러도 세 번 부르기 전엔 절대로 대답하지 말고, 아무리 뭐라고 부추겨도 절대 날 밝기 전엔 문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응?)
동네에 제사지내는 집이 있거나 날씨가 궂은 밤이면 어른들이 흔히 하던 얘기였지만, 오늘밤은 내가 혼자 지켜내야 할 일이라 생각하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잠시 후 아까보다 큰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렸다.
“야, 뭐햄나? (야, 뭐하니?)”
교감 선생의 막내딸 목소리가 틀림없는데도 나는 세 번을 부르기 전엔 대답을 하지 않을 셈으로 어금니를 꽉 다물고 귀만 창밖을 향해 기울였다. 조금 있으니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야, 게! (야, 것참!)”
나는 드디어, 창밖 목소리보다 더 크게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뭐냐?”
교감 선생의 막내딸이 문밖에서 말했다.
“나 신발 가져다도라. (내 신발 가져다주라.)”
나는 오밤중에 뜬금없는 소리에 성질이 나서는 큰소리로 외치듯 말했다.
“무슨 신발 말이냐?”
“나 신발 놔둬덩 어머니 걸로 신엉 나와부난, 너가 나 거 좀 갖다 도라게.”
(내 신발 놓아두고 어머니 걸로 신고 나와버렸어, 네가 내 것 좀 갖다줘라. 응?)
“뭔 헛소리햄나! (뭔 헛소릴하냐!)”
날 놀리는 것 같아 뱃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내일 당장 학교에서 급사(잡무원)를 잘리는 한이 있어도, 내가 네 말을 듣고 이 오밤중에 신발을 가지러 밖에 나가나 봐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소 비장한 마음으로 등잔용 석유를 덜어 입안 가득 머금었다.
그런 다음 성냥을 꺼내 한 손에 들고, 창문을 와락 열어젖히며 상반신을 창밖으로 내미는 동시 성냥불을 착 그어 입 안에 머금었던 석유를 길게 뿌욱 내뿜었다.
일순간 사방천지가 환해지며 창밖과 운동장 구석, 교문 입구까지 훤히 보이는데, 어딜 보아도 목소리의 주인은커녕 고양이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빛이 타올랐던 후라 다음 순간의 암흑은 더욱 짙었고, 언제인지 모르게 비는 그쳐 있었다.
나는 창문을 닫고 벽에 기대어 앉은 채, 귀를 열어놓고 잠이 들었다 깼다 하면서 아침을 맞이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