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모숩진 아니허냐?
(단편소설) 열세 살 나의 연못 07
평소보다 일찍 풀을 다 베고, 교무실 책상도 다 닦은 다음, 비가 지나간 교문 입구를 여러 번 비질한 후, 운동장에 파인 물웅덩이 주변을 삽으로 고르며 선생들과 교감 선생의 막내딸을 기다렸다.
이윽고 교감 선생과 그 딸이 같이 교문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재빨리 달려가 교감 선생의 딸에게 물어봤다.
“너 어젯밤에 신발 찾으래 학교 와났나?”
(너 어젯밤에 신발 찾으러 학교 왔었니?)
교감 선생의 딸은 별소릴 다 듣네, 하는 표정으로 톡 쏘아붙이는 소리를 했다.
“미쳐샤? (미쳤냐?)”
교감 선생과 그 딸에게 간밤에 있었던 얘길 하는 동안 수학 선생도 어느새 곁에 와 서 있었다.
교감 선생의 막내딸은 어젯밤과 똑같은 목소리로 ‘무서워서 더 못 듣겠다’고 말하면서 교실을 향해 달아나 버리고, 교감 선생은 다 들은 후에 차분히 입을 열었다.
“밖에 나가지 아니헌 건 막 잘했져. 겐디 모숩지 안허영 계속 이서지크냐?”
(밖에 나가지 않은 건 아주 잘했다. 그런데 무섭진 않고 계속 있을 수 있겠니?)
내가 다급한 속도로 '계속 있을 수 있다'고 대답하자 교감 선생은 “기여, 기여, 막 애썼져. (그래, 그래, 아주 고생했다.)” 라고 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수학 선생은 삽을 들고 서 있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땅 일교시 끝나는 시간되걸랑 연못 옆드레 나와보라.”
(이따가 일교시 끝나는 시간되면은 연못 옆으로 나와봐라.)
시간 맞춰 연못가에 나가 있으니 수학 선생이 걸어왔다. 선생이 하는 말이.
「일전에 선생 하나가 숙직한 다음 날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다.
집과 동네를 다 찾아도 행방을 알 수 없어, 학생들을 동원해서 근처 사방을 다 뒤졌는데, 몇 시간을 찾고 찾느라 마을 끄트머리의 오름까지 가게 됐다.
그런데 어디서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나 여기 있져. (나 여기 있어.)”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있으니 “여기 이 우에 보라. (여기 이 위쪽을 봐.)” 하는 소리가 들려 하늘을 향해 쳐다보니, 우거진 나무 위에 선생이 걸려있었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어찌어찌 선생을 나무에서 내려 데리고 왔는데, 조금 놀란 듯 멍하긴 했지만, 후에 멀쩡하게 출근도 했다.
그의 말이, 숙직하는 밤에 아는 사람이 밖으로 불러내서 나간 것까진 알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후엔, 어떻게 오름까지 가고 나무 위에 걸려있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까지 말한 수학 선생은 주위를 살핀 후 목소리를 조금 낮추어 이어 말했다.
“그 후제 백일쯤 지난 때에이, 그 선생 아무 이유 어시... 죽었져.”
(그 후에 백일쯤 지난 때에, 그 선생 아무 이유 없이... 죽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잠시 멈칫했지만, 궁금한 것을 선생에게 슬며시 물어봤다.
“선생님이 아는 사람 얘기꽈? 그냥 전해지는 얘기 들은 거우꽈?”
(선생님이 아는 사람 이야기예요? 그냥 전해지는 얘기를 들은 거예요?)
먼 훗날 선생은 나를 만날 때마다 몇 번이나 그때 내 입에서 이런 질문이 나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며 기가 차다는 듯 웃곤 했다.
선생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내게 대답했다.
“아, 그게이. 나도 이 학교 온 후제 숙직 처음허는 날 들은 얘기여. 겐디 니는 이런 소릴 들어도 모숩진 아니 허냐?”
(아, 그게 말이야. 나도 이 학교 온 후에 숙직 처음하는 날 들은 얘기다. 그런데 너는 이런 소릴 들어도 무섭진 않은 거냐?)
나는 무섭다고도 무섭지 않다고도 대답하지 않고, 선생을 보며 멋쩍은 듯 살짝 웃었다.
그러다 문득 담배 같은 건 피울 생각도 하지 말라고 가르쳐준 형님 생각이 나 선생에게 물었다.
“겐디 먼저 이서난 형님이 무사 나신디 이런 말은 안 골아줘신가예?”
(그런데 먼저 있었던 형님은 왜 나한테 이런 말은 안 해줬을까요?)
선생은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다.
“게메이. 니 너무 어려부난, 골으민 막 모수왕 허카부덴 말 못 해신가이?”
(그러게. 너가 너무 어려서, 말하면 너무 무서워 할까봐 말 못 했으려나?)
급사(잡무원) 형님이 몇 번이나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휙 나가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무심코 연못을 바라보니 물속에 들어있는 흰 구름이 바람에 솔솔 날리며 풀어지고 있었다.
나는 바지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어버리고서 웃는 얼굴로 심드렁하게 선생에게 물었다.
“선생님. 집이 잠대영 밭 갈 쇠영 다 있지양?”
(선생님. 집에 쟁기와 밭 가는 소가 다 있지요?)
화재가 바뀌자 선생도 가벼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 무사? (응. 왜?) ”
“밭 어딘지 가르쳐주민예, 이번 일요일날랑 나가 강 선생님네 밭을 갈크메, 선생님이랑 학교에 나왕 수학 문제 풀곡 허십서.”
(밭 어디지 가르쳐 주시면, 이번 일요일날에는 내가 가서 선생님네 밭을 갈테니, 선생님은 학교에 나와서 수학 문제 폴고 계십시오.)
선생은 예상치 못하였을 뿐 아니라 반갑기까지 한 말을 들었는지 안색이 환해졌다.
“기? 경 헐래? (그래? 그렇게 할래?)”
“예. 경 허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이고! 게민 막 고마와. (아이고! 그러면 너무 고마워.)”
수학 선생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아 내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숙직 날도 잊어버리고 안 나타난 체육 선생은 밭 갈아달라고 부탁할 때마다 연못으로, 소각장으로, 작업실로, 귀신같이 잘도 알고 찾아왔으면서, 이번엔 찾아와서 왜 못 왔는지 설명도 안 하고, 멀찍이 서서 내 쪽을 그저 쳐다보기만 할 뿐 손도 안 흔들었다.
‘다시 한번 밭을 갈아달라고 하기만 해봐라, 다신 안 갈아준다.’ 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체육 선생을 먼 곳에서 바라만 볼 뿐 다가가서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 다음주 월요일(24.10.21.)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