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설 쓰는 은정원 Aug 22. 2024

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1부 _04

원망이 무슨 말임까?


저녁 장사를 마치고 아주머니들이 퇴근을 한 뒤, 장만승이 식당 뒷방으로 찾아와 등에 지는 커다란 가방 하나와 작은 주머니를 우리 앞에 꺼내 놓았다.


두 시간 후, 어머니와 나는 옌지역에서 출발하는 기차 에 있었다.


좌석으로 가기 전, 어머니와 나는 통로의 세면대에서 손과 얼굴을 씻었다.

장만승이 준 가방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가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낡은 어른 겉옷 하나와 아이 옷 몇 개가 내려다보였다.

얼음강물을 건넌 후 처음 먹었던 하얀 밀가루 빵도 네 개 들어있었다. 그 빵의 이름은 ‘만두’인데, 중국어로는 ‘만토’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백강 만두’는 이렇게 안 생겼는데, 라고 말할 뻔했지만 잘 참았다. 유치원 낮은반 시절 만두를 먹은 기억이 있는데, 아쉽게도 맛은 기억나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는 기차표에 적힌 좌석으로 갔다.

마주 앉는 좌석엔 일행으로 보이는 중년 여자와 젊은 여자가 서로 머리를 기대어 졸고 있었다. 어머니는 기차표와 함께 작은 주머니에 들어있던 전국기차시간표를 들여다보았다.

잠시 후, 객차에 불이 꺼졌다. 사람들은 가장 싼 좌석인 ‘딱딱한 의자(硬座)’에 앉은 채 잠이 들기 시작했다.


복도를 오가는 움직임이 완전히 잦아든 후, 어머니는 나를 조용히 끌어안았다.

심장이 벌컥벌컥 뛰었다. 등에 맞닿아있는 어머니의 심장은 나보다 더 빠르게 고 있었다.


소리 없이 울 수는 있었지만 눈물 없이 울 수는 없어서 나는 곧 어머니에게 들키고 말았다. 어머니는 등 뒤에서 내 얼굴을 보지도 않은 채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쳐 주었다.

어머니의 손이 축축했다. 누구의 눈물 때문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힘주어 나를 바싹 당겨 안았다. 그것은 마치 나는 이제 떨지 않을 테니 너도 그러하라는, 결연한 선언 같았다.



*



다음 날 오후 기차에서 내린 후 버스를 수차례 갈아탔다. 어머니는 계속 목적지를 바꾸었다.

밝고 화려함에 압도되는 큰 도시들과 깨끗하고 소박한 작은 도시들을 어지럽게 지나갔다. 밤에도 쉬지 않고 어디론가 이동했고, 잠도 야간버스에서 잤다.

비포장도로 위를 먼지 나게 달려도 이제 멀미를 하지 않게 되었다.


대륙의 절반은 돌아다닌 기분으로 5일 만에 내린 곳은 지명도 기억이 나지 않는 산둥성(山東省) 한복판의  도시였다. 그 도시에서 내가 아는 곳은, 우리가 머물었던 지저분한 골목길 위의 작고 허름한 방이 전부다.

거기에서의 모든 기억은 흑백이다. 왜 하필이면 거기였는지 나는 한번도 묻지 않았다.


인민학교의 선생님이었던 어머니는 조선족 신분으로 종일토록 중국식당에서 설거지와 허드렛일을 했다.

일을 마치고 식당 근처에 있던 ‘집’으로 돌아오면 시장에서 산 낡은 중국책으로 나를 가르치고, 다음 날 완성할 숙제를 내주곤 했다.


나는 거의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갈 곳도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면 해선 안 될 이야기를 해버릴 것만 같았다. 걸핏하면 요의를 느꼈다. 사람 발소리가 들리면 심장이 머릿속에서 고동쳤다.

주방 입구의 천을 걷어 젖히며 들어서던 공안의 모습이 불시로 떠올랐다.

지금도 조금만 긴장하면 머리에서 북소리가 울리고 온몸의 피가 순식간에 발바닥 밑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든다.


밤이면 꿈속에 얼음강물이 펼쳐졌다.

어머니와 나는 강을 건너고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등 뒤에 서 있는 장면.

군화 발자국 찍히는 소리, 총소리,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가장 견디기 어려울 때는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를 때이다. 아버지 목소리가 선명히 들리는데, 꿈속의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머니와 앞만 보며 강을 건넌다.


이상하리만치, 그곳에서 지낸 기간엔 무얼 어떻게 먹었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단 하나 생각나는 건 어머니가 중국식 고기볶음을 조금 가져왔을 때인데, 기름진 고기를 처음 먹어본 내가 그것을 다 토해버린 장면이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는 말은 나중에 배운 말이지만 정확히 그 말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눈처럼 소복했던 흰밥까지 모두 게워내 버린 게 너무나 아까웠던, 흑백의 기억이다.


물에 담가놓은 무를 씻을 수 있던 옌지의 식당이 그리웠다. 몇 번 되진 않지만 어머니의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시장에 다녀온 적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지난 일.


기차표가 들어있는 작은 가방을 건네며 장만승이 어머니에게 한 말을 자꾸만 곱씹었다.

아즈마이들, 호적에 올리지 못한 조선족 아이, 경황이 없을 때, 미란이, 리진철, 숙식비, 기차표, 신분, 약속, 원망.

이런 단어들이 기억난다.


어머니는 목구멍 안으로 눈물을 삼키며 더듬더듬 말했다.

“원망이 무슨 말임까? 은혜를 잊지 않갔슴다. 자리 잡고 연락 드리갔슴다. 돈도 꼭 보내 드리갔슴다. 우리집 세대주를 만나게 되거든 말 전해 주시라요.”


어머니와 난 사람들이 없을 때도 소곤거리듯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는 습관이 생겼다.

한동안 ‘그곳’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왜 우리와 같이 오지 않았는지, 장만승은 어째서 아버지를 만날 수도 있는 건지, 왜 어머니와 나만 그곳을 떠나온 것인지.

모든 의문을 가슴속에 밀어 넣은 채 하루하루를 겨울 산처럼 넘었다.


어머니와 진지한 대화를 나눈 것은 그 후로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이다.

어머니의 이야기 상대가 되려면 난 더 자라야 했다.

이전 03화 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1부 _0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