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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 쓰는 은정원 Aug 22. 2024

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1부 _05

이름이 어찌되니?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흑백 도시의 골목집에서 우리는 석 달을 견뎠다.

그러곤 다시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두어 시간 달려 조금 작은 도시인 린화시(林花市)에 도착했다. 버스 종점은 탁 트인 광장 한편에 있었는데, 바로 옆에 기차역이 있었다.


2층 건물인 역사를 중심으로 납작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고, 광장에서 사방으로 시멘트 도로가 길게 뻗어있었다. 새하얀 시멘트 도로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근처 골목들을 뒤져 조선족 식당을 찾아냈고, 내가 된장찌개와 흰밥을 다 먹고도 한참동안 그대로 앉아있어야 할만큼 주인아주머니와 긴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린화, 조선족, 식당일, 사과농장, 싼웬(三園), 시장, 골목 입구, 은행, 전화카드, 야시장.

이런 단어들이 들렸다.


식당을 나서고 갈 길이 바빴다. 우리는 린화시에 속한 외곽지역인 싼웬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싼웬의 시장 입구까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린화시 기차역 광장과는 풍경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버스가 다니는 길은 시멘트 도로였지만 나머지 길은 흙길이었다.


흙길을 보니 백강의 동네 풍경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1년의 절반 가까이 강이 하얗게 얼어있는 곳, 어딘가 약간 비스듬하게 보였던 우리집 지붕.


시선을 이곳저곳으로 빠르게 옮겼다.

늘어서 있는 건물들이며 수레에 실린 과일들, 이름을 모르는 형형색색의 물건들을 흥미로운 듯 기웃거렸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차오르는 아버지 생각을 밀어낼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식당이 늘어선 골목으로 들어서 자그마한 조선족 식당을 찾아냈다. 그러곤 기차역에 있는 ‘린화 조선족 식당’에서처럼 중년 아주머니와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후 ‘라오반’이라고 부르는 남자 사장님이 왔는데 중국인이었다. 조선족 아주머니와는 부부였고 근처에 규모가 있는 중국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결론만 말하면 어머니는 이 작은 조선족 식당에서 일하게 됐다. 주인아주머니가 일단 한 달만 해보자고 한 것을 1년이 넘도록 하였다.


집은 라오반이 아는 사람을 연결해주었는데 내 작은 보폭으로 식당에서 30분 정도 걸렸다.

마을 전체가 비슷한 모양의 단층집이었고, 우리가 살게 될 집은 방과 부엌이 한 칸씩 있고 화장실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좁은 통로 같은 부엌엔 수도와 화로가 있어 음식도 만들고 씻을 수도 있었다.


방은 옌지와 흑백도시에서처럼 바닥이 시멘트여서 신발을 신은 채 들어갔다.

오른편 하단은 낮은 벽장인데 그 위는 평평하고 넓은 나무판이라 신발을 벗고 올라가 둘이 누울 수 있었다. 왼편에는 나무 테이블과 등받이 없는 의자가 세 개나 있었고, 벽에는 옷을 걸어놓을 수 있는 못도 세 군데나 박혀있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주인아주머니가 내 이름을 물어본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름이 어찌 되니?”라는 질문이 들렸을 때 어머니와 난 찰나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왜 그랬는지 내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저는 미란임다. 메이란.”

바로 이어서 어머니가 말했다.

“박미란임다. 퍄오-메이-란.”


“이름 참 곱다야. 어머니랑 똑같이 박씨요?”

그 대답으로 나온 어머니의 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즈마이, 사실은…….”

어머니가 갑자기 울먹였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아 낳고 얼마 아니 되가 아비 되는 사람이 상하이에 갔는데, 연락이 아니 됨다. 혼인도, 아도, 호적에 못 올렸음다.”

“아이고, 여기도 기구하구나야. 사연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되갔소.”

주인아주머니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혀를 끌끌찼다.

     

기구한 사연으로 나는 박미란이 되었다.

‘은주’라는 이름에 우리의 비밀이 모두 들어있기라도 한 듯 나는 순간적으로 ‘미란이’ 속에 숨었다.



훗날 어머니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울먹이며 말했던 내용을 기차 안에서 생각해둔 것이라고 말했다.

옌지에서 1년 이상 머물 예정이던 계획이 틀어지면서 모든 걸 수정해야만 했다고.


그러나 당시에는 나에게 산길을 걸으며 외운 것 중에 ‘1년 후에 아버지가 있는 상하이에 갈 것’이라는 부분만 빼버리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 말을 하는 어머니의 표정이 매우 참담했기에 나는 당분간 너무 많은 질문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었다. 말하지 않은 것을 굳이 캐묻지 않아 준 옌지 식당의 아주머니들처럼 말이다.



*



나는 더 이상 방에서만 지내지 않고 어머니를 따라다녔다. 중국어를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싼웬의 길과 간판들도 익혔다.

매일 어머니를 따라 식당에 가서 주인아주머니가 시키기도 전에 테이블과 양념통을 닦아 놓고, 주방 바닥 대야에 물 담가놓은 무와 감자도 깨끗이 닦고 헹구어 구멍 숭숭한 바구니에 옮겨 놓았다.


나는 늘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식당과 집에서는 물론 어머니가 야시장에서 헝겊 인형이며 팔에 끼는 토시, 베개 위에 얹는 보자기 등을 꼼꼼히 둘러볼 때도, 어느 저녁 전화 가판대에서 번호를 더듬더듬 눌러 처음으로 장만승과 통화를 할 때에도 말이다.

수화기를 든 어머니의 낮은 목소리에서 이런 단어들이 나오고 있었다.

산둥, 린화, 싼웬, 식당, 주인 아즈마이, 라오반, 자전거, 야시장, 베개포, 메이란, 호적, 학교, 옌지. 그리고 세대주.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화 가판대 너머 어딘가에서 경쾌하면서도 처량한 중국 노래가 아련하게 들려오고, 양념 바른 만토를 숯불에 굽는 냄새가 바람에 실려와 내 얼굴을 통과해 지나갔다.

저녁 장터의 희미한 불빛이 아직 군데군데 남아있고, 높은 가로등 불은 길을 따라 듬성듬성 이어져 있었다. 키 큰 나무가 넓게 둘러선 시장 끄트머리의 공터 벤치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수박을 쪼개 먹으며 떠들썩하게 웃고있었다.


여름 저녁이었다.

수박, 웃음, 노래 같은 단어들이 글자나 말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방’이나 ‘식당’이 아닌 ‘중국’에 온 것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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