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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 쓰는 은정원 Aug 22. 2024

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1부 _03

내 딸입니다. 쟝메이란.


어머니의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한 건 얼음이 녹으면서부터다.


멈춰있던 계절이 겨울에서 으득으득 걸어 나와 봄이 되자 강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건 이제 강물 위를 걸을 수 없게 됐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아직 얼음장 같은 물속을 걷고 헤엄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얼어붙은 채 강물 위를 떠다닌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장만승의 작은 식당에 중국 경찰인 공안 둘이 찾아왔다. 평일,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장사 전까지 문을 닫는 시간이었다.

장만승이 중국어로 말했다.

“우리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조선족입니다, 중국인.”


공안 둘은 흉포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식당을 구석구석 살피고 신분증을 검사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까마득히 모르는 채, 식당 안쪽에 있는 주방 구석에 쪼그려 앉아, 어머니가 물에 담가놓은 무를 수세미로 닦고 있었다.


입구에 늘어져 있는 천을 열어젖히며 공안복 차림의 남자 두 명이 주방으로 들어서자,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몸이 저절로 일어섰다.

심장이 날뛰었지만 숨소리조차 뱉지 못했다.

손끝에서는 무를 닦던 찬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 장만승이 공안 둘 사이를 헤집으며 주방으로 들어오더니 얼음처럼 몸이 굳어버린 나를 번쩍 들어 안고서 조선말을 건넸다.

“메이란, 학교 갔다 언제 왔니? 아빠 도와주는 거이니?”


훗날 장만승은, 공안 중에 조선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섞여 있었을지도 몰라 일부러 이름을 부르며 조선말을 한 것이라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장만승은 나를 들춰 안은 채로 공안 둘을 향해 돌아서서 이번엔 중국어로 말했다.

“내 딸입니다. 쟝메이란. 학교 갔다 와서 나를 돕고 있어요.”


주방 너머에 서 있던 어머니가 주방 쪽으로 한발 다가서며 중국어로 말했다.

“메이란이 아까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사장님 못 봤어요?”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아주머니들도 중국어로 한마디씩 거들었다.

“메이란은 학교 갔다 와서 식당 일을 도와줘요.”

“사장님 딸이 아주 착해요.”


공안 둘이 식당 밖으로 나가 더 이상 그들의 모습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자 어머니는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붉게 타오른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맙다고 말하는 어머니를 아주머니들이 일으켜 테이블 앞 의자에 앉혔다.


장만승은 그때까지도 안고 있었던 나를 테이블 옆에 내려놓고, 긴 숨을 휘익 내쉬며 말했다.

여, 물 한 잔 마시자!


어머니는 나를 끌어안고 장만승과 아주머니들에게 고맙다는 말만 반복하며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었다.

아주머니 중 한 명이 테이블에 물 다섯 잔을 내려놓았다. 우린 일제히 컵을 들어 타들어가는 목구멍 안으로 물을 들이부었다.


그때 식당 문이 벌컥 열리며 환하디 환한 빛 사이로 나보다 세 살 많은 사장님의 딸 장미란, 진짜 쟝메이란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사람과 집 문양이 투박하게 잘려 길게 이어지는 붉은 종이를 모두를 향해 촤르르 펼쳐 보이며 메이란은 말했다.


“오늘 지엔즈(剪紙: 종이 자르기) 전통 공예 활동 때문에 좀 늦었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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