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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원 Sep 25. 2024

옆구리에 아카시아가 자란다 01

옆구리에 자라기 시작한 새싹



이 이야기는 허구입니다.






왼쪽 옆구리에서 아카시아가 자라나기 시작한 것은 어린이날이다.

조카들을 데리고 수족관을 구경하고 과일주스를 사 먹고 돈가스를 자르는 내내 그곳이 가려웠다.

옆구리 조금 위쪽 브래지어 선이 지나가는 바로 밑인데, 마침 새것을 착용하고 있어서 가려움이 계속되어도 그러려니 했다.


무언가 손에 만져진 것은 그로부터 약 3주 후인 부처님오신날이다.

거울에 비추어 그곳을 보았다. 무언가 돋아나고 있었다.

사람의 몸에서 나올 수 있을까 싶은, 아주 작은 봄의 새싹 같은 것이 움트고 있었다.

장소만 옆구리가 아니었다면,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말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그러나 장소가 옆구리가 아닌가. 그것도 내 옆구리.

식물이 발아하기에 적당한 장소는 아니다. 옆구리 주인으로선 당황스러움을 넘어 공포심마저 들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전신거울을 측면으로 바라보며 새싹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아주 뿌리째 뽑아버리려고 엄지와 검지에 힘을 잔뜩 주었다.

그러나 손끝에 만져지는 자그마한 새싹은 순간적으로 마음이 약해질 만큼 지극히 보드라웠다.


아무도 없는데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곤 몰래 쓰다듬어 보았다.

아직 돌돌 말려있는 '떡잎'에 불과한 작고 작은 생(生)의 기운이 손끝을 스쳤다.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이미 바닥에 앉아 있는데 다시 한번 주저앉는 기분이 들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이번 생에 저지른 잘못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손끝에 닿는 보드라움에 약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있는 힘을 다해 다시 당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옆구리의 새싹은 외유내강 캐릭터인지, 보드라움이 무색하리만치 단단하게 박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잡았다 놓아도 납작해지기는 커녕 원래 모양 그대로였다.

기억도 없는 전생의 잘못들까지 떠오를 지경이었다. 심장은 아노미 상태였다.


핀셋을 찾아들었다. 소용없었다.

이번엔 눈썹가위. 역시 소용없었다.

문구 가위, 부엌 가위, 카터칼, 과일칼, 순서대로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망한 기분이 본격적으로 들기 시작했다.


이미 예불시간이 지나 있었지만 부처님 앞에 가서 절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 집을 나섰다.

큰스님께서 부처님오신날 특별 법문을 하고 계셨다.


“…… 그렇게 사슴의 왕은 사슴 부족 전체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고, 사람의 왕은 그 이후 사냥을 금지하도록 하여……”

사슴의 왕이 내 옆구리의 새싹을 뜯어먹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문이 끝나고 공양시간이 되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발우에 밥과 채소들을 비비며 옆구리의 새싹까지 비벼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찾는 이가 너무 많아 겨우 시간을 낸 주지스님께서 한참만에 녹차를 우려 내어주셨다.

옆구리의 새싹까지 우려내버리고 싶었다.


대웅전으로 가서 황금빛 부처님을 우러러보다 절을 하기 시작했다.

108번 절을 했지만 옆구리에 자라고 있는 새싹의 존재는 잊혀지지 않았다.

324번 절을 했지만 새싹의 존재감은 더욱 커져갔다.

540번째 절을 하면서 나는 새싹, 그 아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친구들에 의하면 빠른 받아들임은 나의 최대 장점이다.


밤. 다시 거울 앞에 앉아 옆구리를 바라보았다.

옆구리에 자라는 새싹이라니...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손끝으로 건드려보았다.

옆구리에 선연히 존재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싹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실감에 온몸이 전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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