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정도 지나자 제일 큰 잎은 새끼손가락만 해졌고, 작은 잎들까지 모두 일곱 장이 되었다.
지금 거울에 비친 내 몸으로 말하자면, 사람의 옆구리에 길죽한 타원 모양의 연두색 이파리 일곱 장이 가지런히 늘어뜨려져 있는 형상이다.
많이 미화되었지만, 얼추 이런 형상 말이다...
이 아인 식물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전혀 식물적이지 않다.
떡잎 때부터 알아보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라서, 초반엔 잘 때도 왼쪽으로 눕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샤워할 때면 더운물이 안 닿게 조심조심, 비누거품도 안 묻게 조심조심, 반신욕도 꾹꾹 참으며 안 했건만,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곧 알게 되었다.
자면서 나도 모르게 왼쪽으로 돌아누워 깔아뭉게도 아무렇지 않았고, 꽉 조이는 보정속옷 속에 구겨 넣고 있다가 꺼내도 자국도 없이 그대로 되돌아왔다.
거품을 칠하고 더운물 샤워를 해도 풀이 죽기는커녕 오히려 더 싱싱해 보였다.
내 옆구리에서 자라나기로 운명지어진 순간, 이 아이도 식물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나와 연결되어 있지만 내 몸은 아닌 이 아이……
순간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부를 이름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게 ‘아카시아’다.
*
며칠 후 주말, 아침 햇살이 왼쪽 얼굴에 어른거렸다.
희미하게 눈을 뜨니 얼굴 바로 앞에 아카시아가 놓여있었다.
많이 자랐네, 생각하며 눈을 꿈뻑꿈뻑 거렸다.
그렇게 몇 번쯤 바라보다가 고개를 쭉 빼고 다가가 그 위에 얼굴을 올려놓아 보았다.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이파리들이 뺨에 눌렸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꺼끌거리고 맹꽁이 같은 아침의 목소리로 “아카시아야” 라고 불러보았다.
웃음소리가 들렸다. 내가 웃는 소리였다(*10화 작가노트 참고).
그 후부터 아무 대답도 없는 아카시아에게 난 많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왜 하필이면 내 옆구리에서 나왔어?
넌 원래 품종이 뭐니?
왜 갑자기 나에게 찾아왔니?
아카시아라는 이름은 마음에 들어?
아카시아 꽃향기가 어떤지 아니?
내가 다니던 학교 뒤쪽에 아카시아 향기가 참 좋았어. 어떤 애가 알려줘서 그쪽으로 가는 길을 알게 됐는데, 아카시아가 정말 많았어. 그 길 걷는 걸 참 좋아했는데, 거기 안 가본 지가 12년도 넘었네. …… 그 애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어딜 가면 막 300장씩 찍고 그랬어.
……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너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건 너가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니야. 지금 이상한 건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