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유일한 낙이자 삶의 원동력이었을 만큼 너무나 좋았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듣는 목소리는 하루를 견뎌내게 했고, 다음을 위해 잠드는 새벽이 다가오는 깊은 밤중에는 포근한 이불을 덮듯이 너의 목소리에 잠이 스르륵 오기도 했다.
매일 그렇게 전화를 하는데도 우린 대화가 끊기질 않았고 다투거나 서로가 힘들 때조차도 우린 통화로 서로에게 사과를 하거나 응원해 줬다. 안고 싶을 때 마음을 다해 따뜻한 말로 서로를 안아주었고 응원의 말이 필요할 땐 어김없이 기댈 수 있는 쉼을 제공해 주었다.
목소리를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좋은 표현을 모아서 쓰고 싶다. 하지만 음성과 글은 다른 방식이라 눈으로 읽는 글과 귀로 듣는 음성은 같은 언어지만 온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톡으로 대화하는 것보다 전화로 통화하는 걸 더 좋아한다. 만약 만날 수 있다면 눈을 보고 그 사람의 음성을 듣고 살결을 만질 수 있는 게 가장 좋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단연코 음성이 나에겐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 만큼 강렬하다.
그의 말투와 그의 목소리 톤과 그가 말하는 습관들이 나에게 각인되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가 하는 말투를 따라 하고 그의 습관들이 내 입에 붙어버렸다.
아 나 이 사람 엄청 사랑하는가 보다 이런 습관들을 내 곁에 두는 걸 보니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그 사람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다정함은 서로를 위할 때 자연스럽게 나오고 섬세함은 그 사람을 많이 생각하고 나 자신보다 아꼈을 때 표현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에게 물들어 가는 나를 발견했을 때 우린 점점 더 서로를 끌어당겼다. 외모도 점점 닮아가고 음식도 좋아하는 것들이 같아지고 여러 가지 나만이 즐겨 찾던 모든 것들이 우리가되어 함께 하고 있었다.
유난히 많은 전화 통화들 중에서 내가 가장 기억에 남고 잊히지 않는 날들이 있다. 그날들은 내 기억 속에 저장하기엔 어느 순간 메모리가 꽉 차서 오래된 기억부터 지워질 수도 있기에 이렇게라도 기록하고 남기고 싶다.
너의 떨리는 목소리에 내 마음도 떨렸던 그 순간
처음 본 순간들이 너무 선명하게 남아서 그 뒤로 너를 떠올리지 않는 순간들이 없었어.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퇴근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심지어 집에서 자려고 누웠을 때조차 한 순간도 너의 생각이 나지 않는 적이 없었어.
그래서 너에게 빨리 고백하고 싶었어.
어떻게든 다시 만나고 싶었어.
시간이 야속하게도 만나는 걸 어렵게 하더니 우린 전화통화만으로도 벌써 연인처럼 편하고 다정하게 그리고 서로에게 스며들더라 너 역시 나에게 시그널을 계속 보내는 거 같았어.
근데 내가 너무 욕심을 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계속 망설여지더라.
너는 참 좋은 사람이고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서 내가 가지면 너를 오히려 지금보다 안 좋게 만들어 버릴 거 같아서 그게 내가 주저하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였어.
그런데 너의 생각이 계속 나를 흔들어서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는 거야.
지금도 너무 떨리고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솔직하게 다른 건 다 접어두고 오로지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을 다 담아서 표현하고 있어.
그러니 잘 들어줬으면 좋겠어.
그의 떨리는 목소리와 숨을 고르던 긴장되는 숨소리 그리고 나를 향한 진심 어린 말투와 샛별이 깜깜한 밤을 수놓듯 우리의 대화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연결된 것을 느끼고 있었고 그 연결고리를 고민하던 사이에 어느 순간 다리가 놓였다. 우리도 모르게 말이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던 날 너의 위로
그의 고백에 눈물이 나던 나는 고민할 겨를도 없이 그에게 빠져버렸고, 너무나 행복하던 그와의 만남에 계속 눈물이 났다. 그와의 대화가 재미있었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1시간 정도 얘기 했나 싶으면 벌써 3시간이 지나가 있었고, 그도 그렇지만 나 역시도 그렇게 오랫동안 통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느끼지 못했다. 꼭 같이 그 시간에 빠져서 둘만의 세계에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별 얘기를 안 했지만 언제나 웃음이 나왔고, 그렇게 마냥 행복하고 설레고 즐거운 시간들이 많아질수록 나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예전에 했던 지나간 사랑들처럼 지금의 사랑 역시 이렇게 행복하다가 결국은 끝이 나겠지
나는 또 슬픔에 잠겨서 빠져나오기 힘들겠지
그래서 사랑하기 어려웠던 건데
또 그럴까 봐 조심스러웠는데
이 행복이 깨질까 봐 두려워 겁이 나
이제 어쩌지 나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생각들로 점점 내 맘이 행복한데 불안하고 불안하면서도 너무 좋은 아이러니한 감정들로 복잡해져 갔다. 그걸 아는 건지 그 사람은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쁘니야 우리가 참 어렵게 만났는데 나는 이렇게 만난 게 우리에게 운명의 이끌림이 있었다고 생각해
그래서 우리에게 찾아온 지금의 설레는 사랑은 어쩌면 신기루처럼 날아가 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그런 모습의 사랑이 끝난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그 뒤에 알게 되는 여러 가지 감정들과
또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까지도 사랑이라고 생각해.
우린 영원히 행복하게 잘 만날 수도 있지만 때론 어쩔 수 없이 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지금의 불안한 감정은 이상한 건 아니야.
당연히 너무 행복하면 불안해질 수 있어.
근데, 너무 그것에만 몰입해서 지금의 행복을 저버리지 말고 불안한 상황들 불안을 느끼는 여러 요소들을 나랑 같이 얘기하면서 이겨내 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괜찮아진다면 다행이고 만약에 그럼에도 우리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그땐 잘 보내주면 되는 거야.
나는 우리의 만남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렇게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를 위로해 주던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고요하고 평안한 마음을 느꼈고, 그렇게 불안했던 마음은 잠잠해졌다. 꼭 성난 파도가 일렁이던 바다가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해지듯이 말이다.
내가 그를 잊을 수 없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서로에게 기대어 쉴 수 있는 고요한 휴식처가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내 평생 정말 4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적어도 20년간 연애를 했다고 가정하면 그 안에서 이렇게 나와 잘 맞고 나를 잘 이해하고 내가 기댈 수 있게 포근한 안식처가 되어주는 사람이 있었을까? 아니 정말 단연컨대 절대 없었다. 단 한 번도 편안함과 안식을 주고 서로가 힐링이 되는 사람은 그 사람 말고 없었다. 이런 사람을 소울메이트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의 소울메이트이자 연인이었던 그는 내가 언제나 안길 수 있는 따뜻한 품과 포근한 쉼을 주는 존재였다.
지금도 잠을 자기 전 그의 목소리가 없으면 허전하고 뭔가 빼먹은 것처럼 잠이 잘 안 온다. 그래서 내 핸드폰엔 그와 함께했던 아름답던 추억들의 통화가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비밀폴더에 따로 만든 그의 목소리는 헤어질 당시엔 모두 삭제를 했다가 어느 순간 그의 안식처가 그리울 때면 다시 찾게 되어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그의 따뜻했던 나를 너무나 사랑했던 포근한 말투와 단어들이 다시는 들을 수 없기에 더 간절해진 그의 목소리 그래서 지금은 내가 너무 힘들거나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땐 약처럼 복용하듯이 듣고 잠을 청한다. 수면제보다 강력한 그의 목소리는 내게 지금까지 살게 해 주는 원동력이자 약보다 효과가 더 좋은 자장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