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몽 같은 대학생활
학교 수업에서 '나의 대학생활'을 하나의 키워드로 함축해 표현하는 시간이 있었다. 뭘 적을지 한참 고민하려고 했는데, 문득 메타몽이 떠올랐다.
메타몽?
메타몽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는 구독자분을 포함한 글을 읽고 계신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고자 한다. 메타몽은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포켓몬 중 하나이다. 어느 포켓몬이든 다들 각자의 특성과 특기를 가지고 있는데, 메타몽의 특성은 말랑말랑한 젤리처럼 자유자재로 몸의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메타몽의 특기는 바로 다른 포켓몬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메타몽은 꼬부기와 마주치면 꼬부기의 형태로 변화할 수 있다. 처음에 대학생활이 메타몽 같다고 느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메타몽의 그 '변신' 특기 때문이었다.
메타몽이 다른 포켓몬을 만나면 변신을 하듯, 나도 대학생활을 하면서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갖게 되는 느낌이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 그리고 내가 소속된 여러 집단에서 나에게 요구되는 모습이 다 제각각 달랐던 것이다. 대학교에서 만나는 과 사람들, 선배와 후배, 그리고 동기들, 동아리 사람들, 교육봉사활동에서 만나는 선생님들과 학생들, 그리고 심지어 같은 기숙사 방에 사는 룸메이트끼리 있을 때의 나의 모습이 모두 제각각 달랐다.
사실 처음엔 내가 속해있는 곳들에서 각각 다른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걸 알게 된 순간은 바로 '시시각각 달라지는 나의 모습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였다. 똑같은 상황이더라도 그 상황이 일어난 집단이 다르고, 또 그 집단 안에서 내가 맡고 있는 지위가 다를 때 그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는 달라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각기 다른 상황과 지위에서 나에게 요구되는 모습이 다르다는 사실, 그리고 그에 맞춰 내가 변화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대학생활을 메타몽으로 비유한 내 쪽지를 보시고,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내 비유를 가지고 한 시간 동안이나 말씀하셨는데, 그만큼 메타몽-으로 비유된, 사회에서 개인에게 요구되는 모습들-을 소재로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신 것 같았다.) 현대사회에 여러 사회의 양상으로부터 나오는 한 개인에게 요구되는 모습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그렇기에 한 개인의 정체성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될 수 있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다,라고.
하지만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마음속에 풀리지 않은 물음표가 있었다. 사회의 모습이 여러 가지이고 그 집단과 내가 그곳에서 맡는 지위가 모두 제각각이고 그에 요구되는 나의 모습이 다 다르다고 해도, 과연 내가 그 집단의 성격과 지위에 맞춰서 행동해야 하는 의무, 그러니까 '당연함' 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훗날 회사에 취직을 하기 위해 내가 그 회사에 얼마나 애정이 있으며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할 열정이 있는지 자기소개서에 녹여내도, 실제로는 그 회사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 모습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꼬부기로 변신한 메타몽을 '진짜 꼬부기'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어찌 되었든 '메타몽은 메타몽이다'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모두 일종의 페르소나, 그러니까 사회적인 가면을 여러 가지 버전으로 갖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면이 늘 진짜 모습을 가리고 있듯이, 진짜 내 모습과 삶은 가면 뒤에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이었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목적지에 맞춰서 맞춤으로 가면을 쓰고, 돌아오면 가면을 벗고 내 본모습으로 돌아와 브런치에 내 생각을 담은 글을 쓰는, 늘 그런 식의 일상.
그렇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어쩔 수 없이' 등의 수식어는 메타몽 앞에 붙이고 싶지 않다. 대학생활을 메타몽에 비유한 이유가 사회적인 필요에 맞춰 변화하는 인간의 모습이 메타몽 같아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메타몽의 특기는 변신이지만, 메타몽은 메타몽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 침대 위에 있는 메타몽인형은 아무 모습으로도 변신하지 않는다! 그 사실 자체가 엄청난 안정감을 준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 그건 내가 소속되어있는 사회를 벗어나서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 안에서도 충분히 내 특기인 '변신' 기술을 마음껏 활용하고, 페르소나를 마음껏 쓰고 다니며 그 모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 모습을 얻는 방법은, 글쎄.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그리고 시간이 짧게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모습을 가면으로 만들어 보여줄 수 있다면, 내가 원래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보여주는 정체성이 하나가 아니더라도, 그 중의 하나를 내 고유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