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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피 May 08. 2024

Q. 명상을 시작한 후 잡생각이 많아졌고, 우울해요.


Q. 명상을 해서 좋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잡생각이 많아졌고,
그러다 보니 우울하기도 해요.

뭔가 정리가 되지도 않는 기분이 들고...
제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요?



MBSR 명상 과정에는 '6시간의 집중명상'이 1회 포함되어 있습니다. 총 8회기의 프로그램은 매 회차 2시간 반 남짓 진행하지만, 7-8회 차 전후하여 하루는 6시간 내내 명상을 하는 날이니, MBSR 프로그램은 총 9 회차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날에는 MBSR 프로그램에서 배운 바디스캔 명상, 정좌 명상, 걷기 명상, 산 명상 등을 밀도 있게 연습합니다.


살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거나, 스마트폰으로 SNS를 보지 않은 날이 없었기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너무 길어서 지루하지 않을까, 그 지루함을 견딜 수 있을까... 왠지 내가 스마트폰을 보지 못하는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감부터 나만 빼놓고 세상에 좋은 일, 즐거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FOMO까지요. (생각해 보면 미드 연달아 보다 6시간 이상 흘려보낸 적은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집중명상에 참여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갔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집중명상에 참여했던 분들이 나눔 때 공통적으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어떤 분들은 매우 깊은 고요와 평온을 느끼기도 했고, 어떤 분들은 알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어떤 분들은 지루해하며 끝나는 시간만 손꼽기도 했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날의 어떤 순간에는 매우 밀도 있는 몰입감과 고요와 평온, 즐거움을 느꼈고 어떤 순간에는 지루해하기도, 어떤 순간에는 끝나고 먹을 점심밥 생각에 한참을 빠져있기도 했었죠.


그럼에도 전반적인 명상 경험은 좋았습니다만, 그 명상 이후 왠지 모를 혼란과 불안, 우울감을 느꼈습니다. 뭔가가 올라왔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겠고... 그랬거든요. 여하튼 그런 알 수 없는 상태로, 저는 이후에 3번이나 더 다른 기수의 집중명상에 자진하여 참여했습니다.




A.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이유는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대체로는 명상을 시작한 초기에
생각과 감정에 대한 인지력이 좋아지다 보니,
생각이나 감정들이 더 많아졌다고
느낄 수도 있고요.

또는 명상을 하면서
그동안 외면하거나 억압해 두었던
감정들이 개방되며
혼란과 우울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혼자 명상을 하기보다는,
명상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첫 번째 집중명상 이후, 이와 관련하여 명상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결론은 함께 명상을 지속하면서 그 혼란이나 불안이 무엇인지, 어떤 감정이나 생각인지 가만히 지켜보자는 거였죠. 그렇게 명상을 이어나가면서 그동안 제가 인지하지 못한 채 억눌러 왔던 감정이나 생각들이 하나씩 떠오르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추가로, 이 시기에 저는 심리상담도 병행했는데 명상과 상담의 시너지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명상을 하며 떠오르는 어떤 기억이나 생각, 감정들에 대해서 상담을 하며 더 깊이 정리해 볼 수 있었거든요. 돌아보면 조금 가벼운 기억이나 생각, 감정들부터 떠오르기 시작해서 점차 더 무거운 것들이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무거웠다 함은, 제가 애써 기억하거나 생각하기조차 꺼려지는 그런 것들이라고 하면 될까요? 누구에게나 건드리기 싫은, 말하기 힘든 부분들은 있을 텐데 바로 그런 것들은 아주 나중에서야 해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1-2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첫 집중명상이 흙탕물이 든 병을 마구 흔들어 버린 것만 같은 상태를 만들었다면, 그다음에는 더 무겁고 알이 굵은 잔여물들이 떠올라 걸러지고, 그다음에는 더 큰 잔여물들이 떠올라 걸러졌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 후 한참이나 잊고 지내다가, 올 초 5일간의 집중명상에 참여했습니다. 그래도 그 사이 명상을 뜨문뜨문이라도 해온 덕분인지, 그러면서 많은 순간 생각이나 감정들을 그저 억압하지 않고 알아차린 후 해소해서인지... 집중명상이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순간순간 놓쳤던 가벼운 부유물들만 깨끗하게 걸러낸 개운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 명상의 끝에 처음 참여하신 분께서 비슷한 질문을 하시기에, 생각났습니다. 아, 나도 처음에 그랬지, 그랬던 것 같아.


아마도 생각이나 감정을 잘 인지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방식으로 해소하며 살아온 사람보다, 흔히 '좋다'라고 인정될만한 감정들 외의 부끄러움이나 슬픔, 열등감, 분노 등을 마구잡이로 마음과 머리 구석에 처박아둔 채로 살아온 사람들이 훨씬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명상을 시작한 시기에  혼란과 불안, 우울이 함께 찾아오는 게 아닐까요? 혹여 명상이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도, 꾸준히 명상을 이어가 보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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